드디어 첫 출근, 아무 일도 없었다

by 자향자

2013년 5월 2일 8시 30분. 그날 박성수는 청사 정문 앞에 서있었다. 양복은 면접 때 아버지에게 빌려 입었던 그 낡디 낡은 그 양복이었다. 그나마 구두 하나는 새로 샀다. 쿠팡에서 파는 싸구려 29,900원짜리 레자 구두 하나. 밑창은 얇아 아스팔트 열기가 바로 발바닥까지 올라오는 느낌이다.



청사 정문 유리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 '이제 진짜 공무원이다.'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채 차리지 못한 채로 청사 내 인사과란 곳에서 임용장을 받았다. (알고 보니 국장실이었다.)



A4 사이즈의 한 장이 성수의 두 손에 쥐어졌다. 대한민국 어쩌고, 박성수를 9급 공무원으로 임용한다, 어쩌고. 성수는 두 손으로 받아 들고 눈으로 스윽 한 번 읽어 내려갔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노란빛 두꺼운 종이 한 장을 받기 위해 나는 5년이란 시간을 갈아 넣었던 걸까.



이런 생각을 할 찰나, 선임으로 보이는 담당자가 무심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


"주민복지과로 배치됩니다. 3층이에요."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


성수는 어설프게 웃음을 지었다. 사실 뭐라고 답해야 할지도 몰랐다. 과 서무를 따라 생애 처음으로 배치받은 주민복지과. 책상 열여섯 개 남짓이 배치된 사무실이었다.



백색의 형광등,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 공기. 내키진 않았지만, 위에서 내려준 오더이니 별 왕도는 없다.



성수가 들어서자 몇몇이 힐끗 들여다본다. 수십 명의 직원 중 성수를 대놓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모니터를 보거나, 전화를 받거나,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솔직히 그들도 무척이나 궁금하겠지. 바쁜 척하는 거야.' 싶었다.



스치듯 그들과의 인연을 보내고 파티션이 쳐진 과장실로 들어간다. 주민복지과 과장. 50대 초반, 배는 약간 나왔고, 목소리는 호랑이 같이 매우 크다.



"어, 왔어요? 박성수 씨 맞지? 어서 와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여기 앉아요. 옆에 이 주임이 잘 알려줄 거야."



이 주임은 40대 중반로 보였다. 성수와 눈을 한 번 스윽 마주치고는 다시 책상 앞에 놓인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반갑습니다."

"네."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는 그의 어이없는 인사. 그와의 첫인사는 정말로 그게 끝이었다.



오전 내내 성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일이 주어지지 않았다. 초짜인 성수에게 무얼 시킬 수 있단 말인가. 이 주임은 자기 업무가 바빴고, 팀장은 자기 자리에 앉아 계속 무언가를 사부작 댔으며, 나머지 직원들은 자신의 일을 하느라 성수를 신경 쓸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성수는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 바탕화면을 봤다. 파란 하늘의 사진이었다. 전임자가 설정해 놓은 것 같았다.


'대체 뭘 하면 되는 거지.'


솔직히 묻고 싶었다. 주변은 너무나 바쁘게 돌아갔다. 이 주임은 전화 중이고 다른 직원들도 바빠 보이고 아직 사회 경험은 없다만 팀장에게 무언가를 묻기엔 도가 지나친 것 같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성수는 졸음이 밀려왔다.



오전 11시 30분이 됐다. 드디어 찾아온 점심시간. 그날의 점심은 청사 내 위치한 구내식당이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제가 사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군대에서 배식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식판을 들고 반찬을 하나씩 집어낸다.



이미 배식받은 선임을 따라 성수는 쪼르르 달려가 식판을 들고 어디 앉을지 몰라 잠깐 멈칫 한다. 다들 각자의 자리가 있어 보인다. 이 주임이 지나가다 말한다.


"거기 앉으면 돼요. 아무 데나."


성수는 가장 불편한 중앙에 자리 잡는다. 누구의 배려도 없다. 다행히 메뉴는 성수가 가장 좋아하는 된장찌개와 제육볶음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4,000원에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이것도 복지의 일종인 건가. 큰 감흥은 없었다.



근처 저가 커피 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오후 시간을 보낸다. 시간은 오후 2시. 이 주임이 처음으로 내게 업무를 준다.


"이 서류들 날짜 순으로 정리해서 바인더에 꽂아요."


먼지가 수북이 쌓인 민원서류 뭉치였다. 두께는 족히 손가락 두 마디는 돼 보인다.


"네."


성수는 서류를 받아 하나씩 펼쳤다. 날짜를 확인하고, 순서를 맞추고, 바인더에 꽂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주 단순한 일이었다. 1시간 내외면 끝날 거 같아 보였다. 그때, 이 주임이 흘끗 성수를 보고 지나갔다.


"빠르네."


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성수는 그냥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성수가 알고 있는 직장인의 퇴근 시간은 오후 6시다. 그리고 시간은 이미 오후 6시를 조금 지났다.



다만 성수는 칼같이 일어서지 못했다.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6시 10분이 되자 팀장이 일어났고, 6시 20분 즈음 두 명이 더 일어났다. 그리고 40대 중반의 우중해보이는 이 주임은 6시 40분이 돼서야 일어났다.



눈칫밥이 있는 성수는 그 타이밍에 맞춰 일어났다. 청사를 나서자 5월 저녁, 봄바람이 불었다. 살짝 더운 공기를 날려버릴 것 같은 살랑한 봄바람. 그렇게 인생 첫 번째 정규직으로써의 첫날이 끝났다.



특별한 일은 전혀 없었다. 혼날 일도 없없고, 당연히 누군가에게 칭찬받을 일도 없었다. 누군가와 친해진다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앉아 있다가 밥만 먹고 돌아온 느낌이다.



성수는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며 혼자 곱씹었다.


'내일도 이러면 되는 건가. 이런 게 공무원인 건가. 좋네.'


아마 그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마는 통상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무려 10년이란 세월 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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