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남이 May 21. 2024

거지같았던 5년 간의 백수생활

2012년 겨울, 수도권에 있는 한 대학교를 졸업하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부동산’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편입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대학교를 한번 옮겼는데, 결론적으로는 남들과 별다를 것 없는 그저 그런 토익 점수에 컴퓨터활용능력 등 기타 쓸모없는(?) 자격증 몇 개를 취득하면서 대학교 생활을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수도권 지잡대에 그것도 문과. 특별할 것 없는 그저 그런 스펙. 도피처를 찾기 위해서였을까요? 저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하나 없이 덜컥 부동산 대학원 진학까지 해버렸습니다. 도피성이라고 하죠?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부모님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았습니다. 바보 천치 맞습니다.)


물론 ‘부동산’이라는 학문에 전혀 관심이 없던 저는 1학기 만에 아버지께 덜컥 관둔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해버립니다. ‘자식놈’ 맞죠? 그럼 대학원 중퇴를 하고 무엇을 했느냐. 처음에는 부동산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공부가 너무 어려워서 한 달 만에 포기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일반 사기업 취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공공기관 인턴도 아주 잠깐 하긴 했지만, 그저 그렇게 세월아 내월아 하다 보니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한편, 제게는 연년생의 남동생 1명이 있습니다. 저는 이 친구를 ‘타고 나지는 않았지만 꾸준한 노력 형 인간으로 목표한 바를 달성해내는 사람’이라고 동생을 표현합니다.


이 녀석은 저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는지는 몰라도 학창시절 굉장히 열심히 공부했었고, 결론적으로 교차 지원을 통해 서울 내 소재의 대학교 한 곳에 입학해서 졸업 전 내로라하는 공기업에까지 취업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쯤 드는 생각은 어떠실까요? ‘형은 그동안 뭐했어요?’ / ‘비교됐겠다 ㅉㅉ’ / ‘안쓰럽다’ 정도가 떠오르실 거 같은데요. 오. 정답입니다. 정말 비참했어요. 제게 하나뿐인 동생의 합격 소식을 들었는데 정말 기쁜 것 맞는데 한편으로는 저도 모르게 ‘비교’를 하게 되더라고요.


자존감이 굉장히 낮아지는 그 처절한 기분. 그 느낌 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동생이 취업해서 정말 자랑스러운데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 불안한 기분 말입니다. 그렇게 동생이 먼저 취업을 하게 되고 저 또한 3년의 사기업 준비를 뒤로하고 이번에는 스펙 따위 필요 없는 기약 없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게 됩니다.


아마 그 시기가 제 인생에서 가장 자존감이 낮았던 시기이면서 동시에 가장 열정적으로 공부를 했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진짜 속된 말로 각 잡고 인생 걸었던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세수도 안 하고 공부하고 싶은 자리에 앉으려고 도서관 자리 예약 걸어놓고 공부의 ‘공’자도 모르던 녀석이 하루 10시간 이상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가당키나 하겠습니다. 진짜 엉덩이가 간지러워 죽겠더라고요.


그런데도 정말 다행히 수험기간에는 그 좋아하는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고, 매일 10시간 이상의 공부 루틴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오전에는 동영상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이론서 보고 문제집 풀고를 정말 질리도록 한 것 같아요.


저는 이 공무원에 들어오기 위해 총 3번의 시험을 치렀습니다. 2013년 첫해에는 수험기간이 3개월이 채 안 된 시점에 치른지라 당연히 탈락했고요, 2014년 둘째 해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불합격의 쓴잔을 마시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열정을 뽑아냈던 2015년의 시험에서도 그냥 망해버립니다. 가채점을 해보니 진짜 합격권에는 얼토당토 안 하는 점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행정직 수험생이라면 국가직, 지방직, 서울시 이렇게 총 3번의 시험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3번의 기회 그냥 싹 다 망했습니다. 못난 자식 뒷바라지해주는 부모님께 정말 죄송했었고, ‘공부 머리는 진짜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옛말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요. 가채점이 후 저는 자포자기 하고 다음 해 시험을 조금이라도 일찍 준비하기 위해 수험서 전부 사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던 형과 얘기 하다가 형이 그런 말을 합니다. “오늘 1차 합격 발표 날인데 너 결과 확인해봤어?” “아뇨, 어차피 제 점수는 합격권도 아닌데 뭘 확인해요. 형. 마음 아파요.” 하면서 뭔가 아차 싶더라고요. 그 길로 집에 가서 바로 확인해봤습니다. 결과는 과연 어땠을까요?


‘육남이. 1차 합격’ 우주의 모든 기운이 제게 집중해주는 그날의 느낌 잊을 수 없습니다. 취업에 성공하신 분이라면 다들 아실 것 같습니다. 타이밍이 정말 절묘했던 이유가 있는데, 제가 합격을 확인했던 그 날이 바로 서류를 제출하는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 만약 제가 그 형의 말을 듣고 “에이, 나 어차피 안 돼.” 이러고 결과물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의 저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를 뒤로하고 저는 서류심사와 적성검사 그리고 면접을 거치면서 최종 합격에 이르게 됩니다. 정말 신기하죠? 사람 일이라는 게 정말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생은 망했습니다.”라고 말할 뻔했습니다. 그렇게 또다시 새로운 인생이 제 앞에 펼쳐지는 순간이 다가옵니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