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이후 며칠이 지나 출판사에서 배정된 편집자로부터 첫 메일이 도착했다. 메일 내용은 원고 탈고(원고 쓰기를 마침.)까지 단계를 거쳐 진행이 되며, 열정을 다해줄 것을 주문하는 글이었다. 출판 계약서까지 썼는데 열정은 당연하거니와 도로 물릴 수도 없는 상황이니 의지를 다해야 함은 당연했다.
첫 메일부터 꽤 많은 양의 주문이 있었는데 책제목이나 각 장제목 및 소제목에 대한 리터치, 분량 등 짐작했던 부분들에 대한 피드백도 있었으나 저자 소개, 표지 등 원고를 모두 수정하고 나서 작성해도 될 것만 같았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전달받아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출간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던 나로서는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도 했고, 내 글쓰기가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됐으니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출간을 준비하며 내가 가장 염려했던 부분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제목 등을 수정하거나 표지 등을 고르는 데는 조금만 집중해도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으나 분량을 늘려야 하는 출판사의 주문이 다소 어렵게 느껴졌다. 카카오 브런치에 브런치북 연재를 하며 30화까지 꾸역꾸역 간신히 만들어낸 찝찝한 기억 덕분이었으리라. 물론 브런치북에도 담지 못했던 에피소드 1~2개가 있긴 했지만 그것으로는 분량을 채우 턱없이 부족했다. 과연 괜찮은 내용을 담은 추가 분량을 내가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게 첫 메일을 받고 원고 수정에 들어가게 됐다.
'막상 하면 하면 다 하지 뭐.'라며 호기롭게 출발했던 자신감이 조금 가라앉았다. 작업을 시작해 보니 일과 원고 수정을 동시에 병행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편집자로부터 첫 메일을 받게 된 그 시점, 회사는 내년도 업무계획 준비로 한창 바쁜 시기였다. 근무 시간 이후 잔업을 하고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원고를 수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루에 2/3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고 집에서 다시 원고 수정 하는 작업은 생각 이상으로 곤욕스러웠다.
가족 모두 잠든 시간, 혹시나 아이가 깰까 구석 드레스룸에 자리를 잡고 딸아이 책상 하나 펼쳐놓고 졸린 눈 비벼가며 작업하는 자신이 참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허리는 아프고 눈알은 빠질 것 같고 매번 그렇게만 작업을 할 수 없어 나중에는 난생처음 스터디카페라는 곳을 방문해 정기권을 끊어 마음 편히 작업을 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인간은 역시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동물이다.
책을 출간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느낀 바가 하나 있다. 바로 글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 블로그나 온라인 플랫폼에 글을 쓸 때는 상대적으로 독자에 대한 큰 배려 없이 글을 전개하곤 했다. 문맥을 고려할 필요도 없고, 오탈자가 있어도 그냥 간단한 맞춤법 검사로 넘어가고 팩트 체크를 여러 번 할 필요도 없었다. 하나, 책을 만들기 위한 글쓰기는 차원이 달랐다.
결국에는 판매를 위한 글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보다 정교한 작업이 필요했다. 오탈자, 띄어쓰기 검사 등의 맞춤법 오류 검사는 물론이거니와 내가 작성한 글이 정말 사실인지 재확인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했다. 세상만사 쉬울 일이 어딨겠냐만 글이라는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도 절대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출판사 편집자는 이 일을 업으로 할 텐데 새삼 대단해 보였다.
그렇게 요청한 부분을 반영하고 제목이나 소제목에도 변화를 주는 등 요청 사항을 모두 반영한 것만 같은 첫 번째 숙제를 편집자에게 제출하게 됐다. 일주일 만에 녹초가 된 느낌이랄까? 근데 이 작업을 몇 번이나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길이 캄캄했다. 과연 나는 작가라 불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게 가당키나 할까?라는 말을 되뇌며 돌아올 편집자의 다음 피드백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