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2022년│Episode 83│2022.04.28
지난주 목요일. 미술학원에 처음 갔다. 그리고 꽤나 만족스러웠다. 즐거웠다.
겨우 한 번의 수업을 마치고 참으로 부푼 마음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적어놓았다. 지난주의 나는 참 즐거웠던 것 같다. 두 시간 꽉 찬 선긋기마저 충분히 즐거웠고, 오늘의 미술학원이 내일의 내 하루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꽤나 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오늘 미술학원에 갈 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 기뻤다. 지난주에 했던 선긋기를 오늘 두 시간 내내 한다고 해도 재미있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손 풀기로 시작한 선긋기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분명 지난주에는 아무렇지 않게 했던 것이 오늘은 잘 안됐다. 예를 들면 연필 잡기라던가, 손목을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들 말이다.
갑자기 초조해졌다. 두 번만에 엄청나게 발전한 나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난주보다는 잘해야 하지 않나. 그것도 아니라면 지난주만큼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연필을 처음 잡았던 지난 수업보다 더 힘들었다. 생각 없이 잘 되던 것이 안되기 시작하니 나 혼자 당황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번 그런 것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하니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오늘은 명암 상자를 그려서 채워보았는데 특히 힘을 빼고 거의 긋지 않듯 긋는 선은 전혀 안됐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게다가 선이 꼬이기 시작했다. 양쪽 끝으로 갈수록 선이 겹치지 않고 얇아지고, 중간 배 부분만 원하는 굵기로 선을 그어야 겹치는 부분이 겹치지 않고 잘 덮인다고 하는데 나는 계속 양쪽 끝의 선이 찍히거나 말렸다. 이렇게 되니 명암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덧대는 부분만 진해졌다.
선생님께서 다시 선 연습만 몇 개 더 해보자고 하셨다. 너무 천천히 잘하려고 할 수도록 잘 안된다고. 선을 잘 긋겠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리듬을 탄다는 생각으로 가볍하게 하면 잘 될 때도 있다고 했다. 다시 흰 종이를 마주하니 내가 아무래도 잘 따라갔구나 싶어 잠시 작아졌다. 그렇지만 마치 바이킹을 타는 것처럼 리듬감 있게 선을 긋기 시작하니 금세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손에서 힘을 빼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막막했던 마음은 없어지고 흰 종이는 가득 찼다. 그리고 다시 명암 상자를 채우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는 훨씬 편안해졌다. 잘하는 것은 여전히 아니지만 아까만큼 어색하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았다.
지난 시간에 비해 꽤 많이 헤맨 터라 오늘의 목표의 절반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연필 잡는 법은 그래도 익숙해진 것 같다며 큰 발전이라고 따뜻하게 응원해주셨다. 나 역시 처음 잘 안돼서 불안하고 힘들었던 마음이 많이 사라져 좋았다.
돌아보니 아무래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컸던 것 같다. 겨우 두 번째 시간인데 말이다. 미술학원을 처음 등록했을 때의 나의 마음을 보면 분명 나는 미술을 배워본 적이 없고 타고난 그림 실력도 없으니 차근차근 배워나갈 것을 다짐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첫 수업에 내가 어쩌면 발견하지 못한 엄청난 재능을 갖고 있고, 그 재능을 얼른 꽃 피울 것이라고 꿈꿨나 보다. 모든 것에 단계가 있고, 쏟아야 할 시간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놓고 기대만 했다니. 그래서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머리로 선을 그었던 것 같다. 부끄럽다.
게다가 잘 배워서 60살 넘어까지 그림을 꾸준히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속도와 마음이라면 60살은커녕 6개월도 안되어 늘지 않는 실력에 지쳐 그만둘 것 같다. 미술학원을 등록한 그 첫 마음을 잊지 않고 그냥 즐겁게. 그리고 그냥 꾸준하게 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