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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기 May 03. 2022

충분히 마음에 드는 일요일

기록하는 2022년│Episode 86│2022.05.01

어제 늦게 잠들었는데도 생각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역시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없는 날에는 일어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우리 부부의 휴일 소울 푸드, 마제소바를 먹기 위해 경복궁으로 향한다. 


#1. 쉬는 날이면 종종 <칸다소바 경복궁점>에 간다. 이곳에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추억이 쌓이고 쌓여서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도 왔다. 그리고 늘 그렇듯 맛있다.

주말에는 오히려 경복궁역 근처에 주차하기가 편하다. 길가에 모두 주차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차도 잘했겠다. 나온 김에 도심 구경이나 잔뜩 하기로 한다. 


#2. 평소 가보고 싶던 카페로 향한다. 가는 길에 예전에 구 남친과(현 남편) 함께 에어비앤비를 했던 곳을 지난다. 이곳에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결혼사진도 이곳에서 찍었다. 에어비앤비를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결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만큼 애증의 동네다. 그런데 그 집의 주인이 바뀌셨는지 아예 새 집이 되었다. 낯설다. 언젠가 다시 꼭 이곳에 와서 살고 싶었는데 그 사이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나와 더 멀어진 기분이다.


카페 <궤도>에 도착했다. 카페에는 달이 크게 떠 있었다. 

아메리카노는 조금 가벼워서 조금 아쉬웠고, 디저트류인 소르베는 맛있었다. 과연 앉을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갔는데 일찍 움직여서인지 평일만큼 한가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3. 커피를 다 마시고 따릉이를 타고 동대문까지 다녀오기로 한다. 남편이 축구화를 구경하고 싶다고 한다. 따릉이는 맨날 타는데도 이곳에서는 처음 탄다. 집 근처와는 다른 느낌이다.

날씨가 좋다. 청계천을 따라 신나게 페달을 밝는다. 하늘도 예쁘고, 나무도 푸르다. 영원이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이곳도 어느 순간 변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들이 없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은 새로운 건물들로 채워지고 있다.


동대문에 도착해 남편은 실컷 축구화 구경을 한다. 사실 내가 봤을 땐 큰 차이를 모르겠다. 다 똑같이 생겼다. 그거나 그거나 다 같은 거 아닌가 싶은데 남편은 꽤 신이 나서는 열심히 신어 본다. 그리고는 나에게 각각의 축구화를 설명한다. 


#4. 축구화 구경을 마치고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커피 한 잔을 더 먹기로 한다. 대림상가 3층에 위치한 <킨더프레스에스프레소바>에 간다. 지난 <무슈부부커피스탠드> 에서 레몬 로마노를 마신 이후로 에스프레소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곳 역시 괜찮다. 꽤나 귀엽다.


#5. 온 김에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도 구경했다. 학생 때 이곳에서 공모전 준비를 하며 이주 넘게 이곳으로 출퇴근하던 때가 있다. 그때와 비교하면 참 많이 변했다. 사라질 것들과 있던 것들을 몇 개 담는다.


#6. 실컷 콧바람을 잔뜩 쐬고 집에 돌아와서 밥을 한다. 오랜만에 먹는 집밥이다. 어제 사다 놓은 양념게장을 꺼내고 회사에서 선물로 받은 김까지 뜯어놓고 보니 꽤 풍성하다. 배불리 집밥을 먹고 남편과 함께 밤 산책까지 완료했다.


새로운 것, 멋진 것들과 잔뜩 함께 한 주말이다. 가득 채워져야 언젠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메말라있던 내가 요즘에는 조금씩 채워지고 있는 것 같다. 좋은 것들을 잔뜩 볼 때면 그런 엄청난 것들을 만들어내는 누군가에 대해 질투도 나고, 나의 부족함에 조급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보다 더 크게는 아직도 이렇게 볼 것이 많고, 또 이렇게 멋진 것들이 많다는 것이 좋다. 아. 충분히 마음에 드는 일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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