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2022년│Episode 72│2022.04.15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얼마 전 매운 닭발을 먹고 이틀을 고생했다. 당분간 매운 것은 안 먹겠다고 다짐했는데 오랜만에 매운 낙지볶음 어떠냐는 친구의 말에 침 흘리며 1초 만에 승낙했다. 내 건강을 위해 매운 것을 멀리하겠다는 내 이성적 판단이 매운 것을 떠올리자마자 군침이 도는 반사신경에 밀린 것이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매운 것을 떠올리자마자 카톡에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를 남발하고 있었다.
퇴근하자마자 버스를 타고 광화문으로 달린다. 오늘은 <서린 낙지>에 갈 것이다. 7시쯤 도착하니 역시나 사람이 많다. 구석에 겨우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한다. 친구한테 조개탕을 시켜도 되냐고 물었다. 친구는 뭘 그런 걸 묻고 시키냐고 무조건 시키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난다. 광화문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여기에서 회식을 하는데 눈치 없이 조개탕 시켜도 되냐고 물었다가 당시 차장님한테 크게 혼났다. 그 뒤로 누군가 나한테 원하는 메뉴를 물어보기 전까지는 시켜주는 대로 조용히 먹고 있다. 그런 것으로 그렇게까지 크게 혼나야 됐었나 싶지만, 한 편으로는 그 덕분에 그 뒤로는 눈치 없다는 소리는 덜 듣고 있다. 어쨌든 친구의 허락 덕분에 낙지볶음, 베이컨 소시지 구이, 조개탕을 시켰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낙지볶음이 나왔다. 양념만 맛보면 뒤집어지게 매운데, 또 의외로 낙지 자체는 먹을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한 두 개 집어 먹었을 때 기준이다. 지난번엔 낙지볶음과 공깃밥만 시켜서 소스에 밥을 비벼먹었는데 먹고 나서 꽤 고생했다. 그래서 이번엔 베이컨 소시지 구이를 함께 시켰다.
소시지와 베이컨을 좋아하지 않은 터라 별 관심은 없었는데, 이 메뉴가 생각보다 더 별미였다. 콩나물과 김치 위에 낙지를 넣고 볶아 먹으니 낙지의 매운맛이 조금 덜 하다. 조금 더 인간답게 먹을 수 있다.
애증의 조개탕도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뽀얗고 시원한 것이 참 좋았다.
낙지볶음을 다 먹고 볶음밥까지 알차게 비벼 먹었다.
밥을 먹는 동안 친구와 요즘 근황을 이야기한다. 같은 회사를 오래 다니고 있는 나도, 얼마 전 이직한 친구도 각자의 고충이 있다. 자꾸 목소리가 커진다. 회사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별 수 없다. 그냥 매운 것 먹고 땀 쫙 빼고 스트레스도 함께 날려 보낼 뿐이다. 낙지볶음의 양념이 매콤한 것이 연신 습습하하, 숨이 차다. 몸에 열이 오르고 뜨끈해지는 것 같더니 정수리부터 땀이 나기 시작한다. 안 그랬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매운 것을 먹으면 나도 모르게 땀이 난다. 매운 것을 먹으면서 땀을 흘리는 것이 괜히 창피한 것 같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는 시원하다. 한바탕 땀을 쏟고 나면 개운하다. 가슴속에 무엇인가 막 쌓여있는 것 같을 때 매운 것을 먹으면 쑥 내려가는 것 같다. 맛있게 먹고, 즐거운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스트레스는 매운 것으로 날려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