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2022년│Episode 71│2022.04.14
후배가 퇴사한다. 후배의 퇴사 소식을 들었을 때 특별히 해줄 것은 없어서 그냥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후배가 퇴사하는 날이다. 여전히 아쉽고, 여전히 실감 나지는 않지만 어쨌든 마지막 퇴근길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대신 오늘도 역시나 근사한 저녁을 먹을 거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얼마 전에 회사 근처에 오픈한 이자카야를 가보기로 한다. 난 이자카야가 좋다. 그 규모가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 여러 가지 음식들을 조금씩 시켜놓고 맥주 한 잔 또는 하이볼 한 잔 시켜놓고 오랜 시간 이야기하는 게 좋다. 특유의 나긋나긋한 분위기와 바에 앉는 것도 좋다. 그런데 회사 근처에는 그럴듯한 이자카야가 없었다. 아 물론 음식이 맛있는 곳도 있고 인기가 많은 곳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회사 근처라 그런지 어딜 가도 사람이 꽉꽉 차 있어 회식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회사 근처 이자카야에 늘 목말랐다. 그런데 얼마 전 회사 근처에 이자카야가 새로 생긴 것을 알게 됐다. 바 테이블만 운영하는 비교적 작은 규모였다. 후기가 별로 없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안 가볼 이유가 없다.
퇴근 무렵 갑자기 바빠져 기다리는 후배를 두고 칼퇴를 하지 못했고, 퇴근도 도망치듯 했다. 급한 마음은 가게에 도착해 음식이 나올 때까지 계속됐다. 챙기지 못한 정신 때문에 가게 내부와 외부 사진을 찍지 못했다.
우선 기린 맥주 한 병과 메이커스마크로 만든 하이볼을 한 잔 시켰다. 술알못인 나는 위스키 종류를 선택하면 하이볼로 만들어주신다는 사장님의 설명에 당황했다. 적당히 부드럽고 무난할 것 같은 위스키를 선택했다.
달고 새콤한 하이볼만 먹다가 단 맛없이 위스키 향 가득한 하이볼이 처음엔 어색했다. 그런데 이내 곧 깔끔해서 음식의 맛을 해치지 않는 하이볼 맛에 흠뻑 빠졌다.
가장 기본인 것 같은 사시미 2인을 시켰다. 참치와 도미, 연어, 아귀 간, 고등어, 단새우, 찜 전복으로 구성되어있었다. 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회의 양이 적어 별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해산물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편이라 이곳의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야끼토리도 주문했다. 시중에 있는 굽기만 하면 되는 닭꼬치 재료가 아닌, 계약된 양계장에서 원재료를 받아 직접 손질한다고 한다. 꽤 맛있었다. 게다가 숯이 아주 좋았다. 발갛게 달아오른 숯에서 정성스럽게 하나씩 구워 주셨다. 꼬치 하나마다 숯불향이 가득히 베었다.
그다음은 야끼 오니기리다. 명란을 넣은 주먹밥을 숯불에 구워 육수에 말아먹는다. 기본적으로는 우동 육수와 비슷한 육수를 쓰신다고 하셨는데, 우동도 시키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닭 육수로 바꿔주셨다. 명랑의 짭조름함과 육수의 고소함, 그리고 불에 그을린 주먹밥의 꼬들 거리는 바삭함이 잘 어울렸다.
마지막으로는 우동을 주문했다. 날이 추워 뜨끈한 국물이 당겼기 때문이다. 우동 역시 훌륭했다. 국물의 맛도 깊었고, 면뿐만 아니라 어묵과 곤약, 그리고 도가니로 추정되는 내용물도 훌륭했다. 이미 충분히 맛있는 음식들도 배를 채웠지만, 우동으로 마지막 마무리를 깔끔하게 했다.
약소하지만 둘만의 퇴사 파티도 신나게 했다. 미련 가득 담아 후배의 퇴사를 축하했다.
밥을 먹는 동안 몹시 따뜻했다. 시원한 물을 먹고 싶은지, 따뜻한 물을 먹고 싶은지 물었던 사장님의 첫인사처럼 식사 시간 내내 충분한 챙김을 받았다. 단순히 똑같은 것을 두 번씩 물어봐도 친절히 말씀해주셨다거나, 같은 육수 대신 하나는 닭 육수로 바꿔서 다양한 맛을 볼 수 있게 해 주셨던 배려 때문만은 아니다. 그냥 모든 순간과 모든 음식에 사장님의 정성이 담겨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개업한 지 얼마 안 되었고, 손님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식기 선정부터 재료 손질, 음식 조리와 서빙까지 모든 과정에 사장님의 정성이 가득 차다 못해 흘러넘쳤다. 사장님이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고, 이곳을 사랑하는지가 음식을 통해 느껴졌다. 그런 정성 가득한 식당을 간다는 것은 그냥 맛있는 밥을 먹는 것 그 이상이다. 후배의 퇴사로 인해 마음이 허한 나를 채워주고, 새로운 도전을 할 후배의 등을 두들겨주는 것이다. 정성스러운 식당에 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한 끼의 짧은 식사였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각자 힘을 내서 각자의 길을 열심히 갈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씩 만나 또 근사한 저녁을 함께 할 것이다.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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