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부터 틀리는 거 실화임????
지난 71회 시험때 막내아들이 아깝게 탈락했었다. 나는 코로나 걸린 줄도 모르고 골골거리며 같이 시험을 봤고. 아들에게 그때 노력보상!! 은 해줬으니 끝은 봐야지! 실제로 그렇게 약속도 했다.
다시 72회 시험에 응시했다. 난 그때 아깝게 2급이었고, 아들은 2점이 모자라 아예 탈락! 어쨌든 둘 다 아쉬웠던 시험이라 다시 치기로 마음을 먹고 공부를 하려 했으나 말이 쉽지... 아들은 다시 게임의 세계로, 나는 큰 아이와 수시 투어의 세계로 빠졌으니 공부는 개뿔. 일단 응시료가 아까우니, "아들아 일단 가보자고!"
시험 치기 이틀 전, 아들과 긴 대화를 나누었다. 큰 아이 면접 때문에 1박 2일 서울 왕복을 했더니 너무 피곤한데 오자마자 맞닥뜨린 아들의 모습에 힘이 쭈욱 빠졌다. 아들을 방으로 조용히 불렀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들에게 일요일까지 핸드폰 사용중지를 알리며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조절 능력을 잃어버리면 그땐 핸드폰이 너를 조종하게 될 거란 어마무시한 말을 투척해서인지, 스스로도 과하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조용히 핸드폰을 내놓고 머리를 끄덕끄덕한다. 그러더니 한능검 공부를 하겠다며 자기 방으로 향했다. 이번 시험까지 치기로 이미 약속한 바이고 오늘의 일과 지난 한능검 시험에 대한 약속은 엄연히 다른 것임을 누차 강조했다. 요즘 이 녀석도 사춘기 그 시끼가 자주 왔다 갔다 하는 터라 반항이라도 하면 어쩌지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해하는 것 같았다. 일요일까지 자제해 보고 그 이후 어떻게 핸드폰을 사용할지, 몇 시까지 게임을 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서 알려 주기로 했다. 내 긴 토크의 의도는 아들의 한능검공부가 아니었지만, 여하튼 그리 되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한 번 와봤다고 아들도 나도 떨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1번부터 틀려먹었다. 이런... 어디서 저런 무식한... 뭐에 홀렸는지 아주 자신 있게! 지금 봐도 기가 막힌다. 심지어 우리 아들도 고민 없이 맞춘 1번을 나는 틀리고야 말았다. 1번을 틀리면 어떠리. 1점인 것을! 가채점이긴 하지만 나는 2급에서 1급으로 갱신했고, 아들은 69점. 내가 버린 1점이 아들에게 갔더라면.... 아깝게 2급을 따지는 못했지만 3급은 통과했으니 어찌 됐든 소기의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3급, 아니 상급 아들~~~"
가채점일 뿐이지만 어쨌든 기분 좋은 하루였다. 아들도 싱글벙글. 3급이지만 심화이기도 하고, 처음으로 도전해서 성취했다는 기쁨이 제법 있는지 종일 헤헤거리며 다녔다. 나도 덕분에 자격증 하나 더 생겼으니 좋아해야 하는 건지^^;;;;
어젯밤, 수시 실기와 면접을 거의 끝낸 아이가 불안한지 밤에 울면서 전화가 왔다. 떨어지면 어쩌지 걱정하는데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지레 겁내지 말라고 한참 토닥여 주었다. 시작도 안 한 인생출발점에서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는 아이는 얼마나 겁이 날까?
김미경 강사가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주에서 30년 그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엄마랑 아이? 친구지 뭐. 그리고, 아이가 지하 10층에 가 있으면 부모는 지하 11층에서 받쳐주면 되는 거야. 왜? 30년 먼저 살아봤잖아요. 그게 부모의 자존감이지."
아들도 딸들도 지금 자신이 주어진 길을 살아내기 위해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이들의 자존감이 지하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도록, 아이가 이런 일도 저런 일도 다 겪어내고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내 자존감 나이를 먼저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나는 마흔일곱에 한능검 심화 1급 딴 엄마이지 않나! 아이에게 등 떠밀지 않고 항상 함께 고민하고 함께 나아가는 엄마가 되기로 다시 마음가짐을 새로이 했다. 아이의 자존감보다 30년은 앞서가야 아이가 바닥까지 가지 않게 지탱해 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