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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Apr 25. 2024

『용의 나라 고려』미리보기


     

전자책 『용의 나라 고려』

-- 고려 설화에 역사를 곁들여 재구성    

      

목차

1. 작제건 생부를 찾아

2. 용들의 전쟁

3. 산신이 점지한 서희

4. 요괴사냥꾼 강감찬

5. () 감찰관 이영간


1. 작제건 생부를 찾아

=기획의도 - 고려 태조 왕건이 당나라 왕족의 후손이라는 <<고려사>>의 설화가 몹시 거슬려,

작제건의 생부를 새롭게 추정해 봄.     

역사적 근거 -

왕건 출생 877년.

장보고 귀국 828년.

당시에는 해적선이 출몰하던 시기라 그나마 안전한 패강진 포구로 들어왔을 것이라 추정하면,

‘장보고가 당나라 복색을 하고 송악에 들어왔다’는 가설이 생김.

<<고려사>>는 조선 초에 편찬했기 때문에 고려왕조를 폄하하기 위해 ‘당나라 왕족’이라는 설화를 수록했을 거라 추정.          

**********    

 

신라 흥덕왕 11년 (836년)

여섯 살의 은 어머니 진의에게 물었다.

“어머니, 어찌 제게는 아버지가 없습니까?”

“네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시다. 곧 우리 모자를 데리러 오실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건의 부친은 오지 않았다. 다만, 왕의 부음만 들려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 해에 흥덕왕이 서거하고 희강왕이 등극했다.)     

다음해, 신라 희강왕 2년 (837년)

외조부 보육이 건을 불렀다.

“너희 모자, 이제는 생부에게 가자꾸나. 너희 모자를 데리러 배가 올 것이다.”

보육은 모자와 함께 포구로 나갔다.

하지만 어제 도착해 있어야 할 배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보육은 막 도착하는 상선에 다가갔다. 배꾼들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사색이 된 보육은 모자를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건을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

건은 어머니 진의에게 물었다.

“어머니, 어찌 아버지께 가지 않는 것입니까?

“네 부친에 대해서는 묻지도 알지도 말거라. 네 부친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너와 나 우리 가문은 살아남지 못 한다.”

건은 어머니의 두려워하는 표정을 보고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건을 바라보는 외조부 보육의 눈빛도 탐탁지 않아 보였다.     

그러던 얼마 후 외조부는 다시 건을 불렀다.

“네 부친에게서 곧 소식이 올 것이다. 너희 모자에게 금으로 된 수레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금수레는 오지 않았다.

포구에 배가 들어올 때마다 소식을 접하던 외조부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갔다. 외조부는 다시 건을 멀리했다. 그리고 큰 딸 보의의 아들 현을 아꼈다.

건은 서운했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 것에 더욱 좌절했다.     

10년 후, 문성왕 8년 (846년)

강보육의 집에서는 혼례식이 거행되고 있다. 보의의 아들 현의 혼례식이었다.

진의의 아들 건은 자기보다 두 살 어린 사촌아우가 먼저 혼인을 하는 것에 서운함을 느꼈다. 게다가 구경하는 사람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새신랑의 참 늠름하군요.”

“명망 있는 가문의 장자로 태어났으니, 그 부친의 후원을 입고 외조부의 가업을 이어받겠지?”

강보육은 외손주 현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외조부를 보는 건은 자꾸만 뒤로 숨었다. 아버지가 없는 건은 이어 받을 가업도 성씨도 없었다.     

진의의 아들 건은 홀로 다락으로 숨어들었다.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의 눈을 피해 자주 숨어들던 곳이었다. 다락 구석에 앉으니 혼인 잔치의 왁자함도 들리지 않고 아늑했다.

그런 건의 눈에 낡은 상자 하나가 띄었다. 상자 안에는 낡은 활과 화살집이 들어있었다.

“이것은 나의 아버지가 두고 가신 것이 분명하다.”

건은 떨리는 손으로 활을 집었다. 활줄을 걸려고 활대를 구부렸지만 어찌나 팽팽한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건은 활대 한 쪽을 바닥에 고정시키고 두 손으로 매달려 활대를 겨우 구부렸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여 겨우 줄을 걸 수 있었다.

“이런 활을 쓰신 분이라면 힘이 장사셨을 거야.”

하며 뿌듯해 하는데 활에 새겨진 글자가 눈에 띄었다.

武寧軍小將

“무령군소장이면 당나라의 관직이 아닌가? 나의 부친은 분명 당나라에 있을 것이다. 부친의 존재가 드러나면 우리가 위태롭게 된다는 것은 필시 당나라 황제의 정적이기 때문 일 것이다. 사내로 태어났으면 죽더라도 부친의 얼굴은 한 번 보아야 할 것 아닌가?”     

건은 혼례식의 왁자한 연회소리를 뒤로 하고 포구로 향했다.

패강포구(황해북도 금천군 덕산리 소재지 북쪽에 있는 포구)에서 당나라로 가는 배편을 구했다. 하지만, 상선에는 이미 짐과 사람이 한도가 넘어 더 이상 태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건은 출항준비가 한창인 상선을 지켜만 보아야 했다.  (본문에서 계속됩니다)

.

2. 용들의 전쟁

고려건국 설화에 등장하는 용들의 활약상


3. 산신이 점지한 서희

고려사 > 권94 > 열전 권제7

서필(徐弼)의 아버지 서신일(徐神逸)은 시골에 살았는데, 사슴이 도망하여 〈그에게〉 의탁하므로 서신일이 화살을 뽑고 숨겨주었더니, 사냥꾼이 추격해 왔으나 잡지 못하고 돌아갔다.

꿈에 신인이 나타나 감사하며 말하기를, “사슴은 바로 내 아들입니다. 그대 덕분에 죽지 않았으니, 공의 자손으로 하여금 대대로 고관대작이 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서신일은 나이 80에 서필을 낳았고, 서필·서희(徐熙)·서눌이 과연 이어서 재상이 되었다.  <<고려사>> 열전     

                                        

서희의 외가 어르신 중에 용이 구름에 걸려 추락하다 바다의 신의 도움을 받아 용궁으로 간 태몽을 꾼 사람이 있다. <인터넷 위키백과>


..... 서희 가문에 대한 설화를 재구성.


.

4. 요괴 사냥꾼 강감찬                    

한 신하가 밤중에 시흥군으로 들어오다가 큰 별이 인가(人家)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 관리를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더니, 마침 그 집의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 사람이 바로 강감찬이었다. 송나라에서 온 사신이 그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절을 올리며 말하기를, “문곡성(文曲星)이 보이지 않은지 오래되었는데,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고려사>>          

********          


낙성대          


944년, 고려 정종 때였다.

사천대(司天臺)에 근무하던 사천공봉 최지몽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옅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보름달이 하얀 너울을 쓴 것 같았다. 어슴푸레한 밤하늘을 오르는 용 한 마리가 있었다.

 최지몽은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밤하늘을 올려다 모았다. 은빛 비늘을 빛내며 구름을 뚫고 오르는 용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런데 용이 무언가에 부딪치기라도 했는지 몸을 비틀며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승천하던 용이 추락하다니, 장차 고려에 환란이 닥칠 것인가?”

최지몽은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큰일이다.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일곱 개의 별이 점점 희미해 져 가는구나. 장차 고구려에 변고가 생길 모양이다.”

최지몽은 사천대 관리들과 함께 목욕재계를 하고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4년 후 어느 밤, 밤하늘을 살피던 최지몽은 깜짝 놀랐다.

북두칠성의 네 번째의 별이 유난히 깜빡이더니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다행이구나. 하늘에서 고려를 지켜낼 인재를 보내 주셨도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도다.”          

     


지네신랑을 퇴치한 강감찬          


12년 후, 열두 살의 은천은 광에서 잠을 깼다. 광문을 밀어도 꿈쩍도 않는다.

“문 열어요, 여기 사람 있어요.”

문을 두드리니 아버지 강궁진의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얌전히 있거라.”

“아버지, 보옥 누이 혼인잔치에 가야 합니다. 잔치에 가려고 비단옷도 장만 했다고요.”

“혼인잔치에 네 녀석이 나타나면 보옥이 얼마나 놀라겠느냐?”

강궁진은 돌아서며 혼잣말을 했다.

“내 자식이지만, 어지간히 못 생겼어야 데리고 가지.”

하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맛있는 음식이나 넣어 주시오.”

강궁진은 안타까워하는 부인에게 미안한 듯 당부하고는 대문을 나섰다.

아버지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은천은 어머니를 불러댔다.

“어머니, 내보내 주세요. 보옥 누이 혼례식에 가고 싶다는데, 못 생겼다고 자식을 이리 가두다니요? 이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게 왜 보옥에게 장가 갈 거라고 온 동네 떠들어 댄 게야? 네가 혼인잔치에서 소란을 떨까봐 그런 것이 아니냐? 아버지는 네가 못생겨서 혼인잔치에 안 데려 간 것이 아니란다.”

은천의 어머니는 아들을 광에 가둔 남편의 처사가 못 마땅했지만, 평소 은천이 일으킨 말썽을 생각하면 이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로서는 마음이 아팠지만, 단단히 마음먹기로 했다.

“어머니, 말썽 피지 않겠습니다. 먼발치에서 보옥이 누나 한 번만 보게 해 주십시오. 내보내 주시지 않으면 곡기를 끊겠습니다.”

“한 끼 굶는다고 어찌 되기야 하랴마는, 네가 굶는다면 이 어미도 함께 굶으마.”

은천은 더 이상 어머니를 설득할 수 없어 물러서야 했다. 마침 찬모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찬모는 ‘노비안검법’ 시행 때에 양인의 신분을 찾았지만 딱히 갈 곳이 없어 강궁진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찬모는 잔칫집 음식 장만을 도와주고 오는 길이었다.

“수고했네, 잔치 준비는 잘 되었던가?”

어머니가 찬모에게 물었다.

“잔칫상은 과하지 않게 차리면서도 격조가 있는 것이 그 댁 어른들의 검박한 성품을 보는 듯 했습니다. 다만, 초례상에 닭을 올리지 않는 것이 이상하긴 하였습니다.”

찬모의 대답에 은천이 귀를 광문에 바싹 붙였다.

“신랑이 어렸을 때 수탉에게 쪼인 적이 있어 그랬다 합니다.”

은천은 찬모의 말을 되새겼다.

“신랑이 닭을 무서워하여 초례상에 올리지 말라고 했겠다?”

은천은 창고 안을 둘러보았다. 도끼나 톱은 보이지 않고 벽에 북이 걸려 있고 오동나무 상자가 쌓여 있었다. 은천은 오동나무 상자를 하나 내려놓고 새끼줄을 풀어 지푸라기를 뭉쳐 올려놓았다. 벽에 걸린 북채를 내려 오동나무 상자에 대고 비비기 시작했다. 북채 끝이 닳을 만큼 비비니 연기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지푸라기에 불씨가 옮겨 붙자 은천이 입김을 불어댔다. 광문 틈으로 연기를 내보내며 은천이 소리쳤다.

“불이야! 불이 났어요.”

하니 하인들이 달려 와 광문을 열었다. 그 순간 튀어나간 은천이 대문 밖으로 내달렸다.

은천이 보옥의 집으로 들어가니 신랑 신부가 합환주를 마시고 있었다. 신랑이 표주박을 받아 들고 입으로 가져가는 동안, 맑은 청주에 반사 된 햇빛이 신랑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 순간 은천은 보았다. 신랑의 얼굴 속에 지네의 모습이 감추어져 있는 것을. 은천은 술잔을 내려놓는 신랑에게 달려들어 냅따 떠밀었다. 넘어진 신랑의 가슴을 타고 앉아 마구 때렸다.

사람들이 놀라 은천을 떼어냈다.

“저 놈은 인간이 아니라 지네가 둔갑한 요괴라고요.”

은천이 버둥거리며 외쳤다.

당황한 보옥의 아버지가 허둥대며 신랑을 일으켰다.

“다친 데는 없는가? 미안 하네. 벗의 아들이라 허물없이 대했더니 이리 철없는 장난을 치고 말았네.”

“저를 이 댁 사위로 반기지 않는 사람이 있군요. 제가 이 댁에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하고 신랑은 말을 부르더니 올라탔다.

보옥의 아버지가 말고삐를 붙잡았다.

“여보게, 철없는 동네 아이 장난질일세. 이리 떠나면 안 되네.”

“장인어른, 사위가 처가에 9년을 살아야 하는 것이 고려의 풍속이긴 하나, 일이 이리 된 이상 제가 마음 편히 지낼 수는 없을 듯합니다. 보옥낭자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따를지 말지 보옥낭자가 택하게 하십시오.”

하니 모두의 눈이 보옥에게 향했다. 보옥은 신랑이 혼자 떠날까 애태우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보옥 누나, 저 자를 따라가면 안 돼!”

은천이 소리치자 강궁진이 입을 막았다.

보옥의 아버지는 가마를 꺼내오게 하여 보옥을 태워 보냈다. 보옥의 어머니는 딸의 이름을 부르며 가마를 쫓아가다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강궁진은 보옥의 부모에게 면목이 없었다. 은천의 뒷목을 잡아끌고 대문을 나섰다.

“아비 이름에 먹칠을 하다못해 아예 똥통에 빠뜨리는구나. 꼴도 보기 싫다. 집에는 들어 올 생각도 하지 마라.”     

은천은 잔치음식 한 점 못 얻어먹고 쫓겨났다.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신랑의 뒤를 쫓았다. 지네신랑이 내뿜는 요사스러운 기운이 관악산 쪽으로 감지되었다.(본문에서 계속....)



5. (龍) 감찰관 이영간               


박연 윗못의 가운데에는 반반한 바위가 있는데, 문종이 그 위에 올라가자, 갑자기 비바람이 사납게 일어나 바위가 뒤흔들려서, 문종이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이때 이영간이 용의 죄를 일일이 꾸짖는 글을 지어 연못에 던졌더니 용이 즉시 그 등을 드러내었고, 이를 곤장으로 때리니 윗못의 물이 모두 붉게 변하였다.  <<고려사>>          

**********     


수상한 너구리와 청의동자     


고려 10대 정종 초기.

담양 연동사 객방에 공부하는 소년이 있었다. 이제 열여섯 살 된 이영간이었다. 한량들과 어울리며 주점에 드나들다가 부친에게 붙잡혀 산사로 쫓겨 온 것이었다.

어느 날 영간은 책을 읽다가 봄볕에 노곤하여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꿈에 주점에서 심부름 하던 여종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는 순간, 귀에 불이 번쩍하여 눈을 떴다.

상좌승이 영간의 귓볼을 잡아 비틀고 있었다.

“아 아~”

“네 놈 짓이지? 술이 익을 만하면 자꾸 없어지는 게 네놈이 훔쳐 먹은 것이지? 그래서 이렇게 대낮에도 널브러져 있는 게지?”

“무슨 말이에요? 다시 술을 입에 대면 아버지가 다리를 부러뜨린다고 하셨는데 술을 훔쳐 먹다니요?”

영간의 호소에도 상좌승은 꼬집은 귀를 놓지 않았다.

“주지 스님께 말씀 드려서 네 놈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말테다.”

“글쎄요, 술 못 마시게 절에 맡겼는데 절간에 술이 있다는 걸 아버지가 아시면 서로 안 좋을 걸요.”

영간의 말에 상좌승은 귀를 놓아주었다.

“정황증거는 있으나 혐의를 입증할 수 없으니 이번만은 용서해 준다. 다음에 현장검거 되면 네 부친에게 보내기 전에 미리 다리를 분질러 주마.”

하며 손을 털고는 상좌승이 떠나갔다.

귀가 얼얼한 영간은 약이 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술맛을 보기나 하고 꼬집혔으면 덜 억울했을 텐데 말이다.

“자기들이 몰래 먹고 나한테 덤터기 씌우는 거 아냐? 이 술 도둑놈을 내 손으로 잡고야 말리라.”

영간은 술독창고를 지키기 시작했다. 이틀 밤을 새웠지만 창고 앞에는 그림자도 어른거리지 않았다. 사흘 째 밤에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단지 뚜껑 달싹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드디어 도둑놈이 왔겠다.’

영간은 살금살금 창고로 들어가 도둑놈의 머리에 자루를 덮씌웠다. 그리고 발길질을 하니 짐승의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자루를 들여다보니 너구리였다.

“이런 도둑괭이 녀석 때문에 내가 도둑 누명을 썼겠다. 수염에 술이 묻었으니 냄새가 사라지기 전에 상좌승에게 보여야겠다.”

하며 자루 입구를 묶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지. 파리 한 마리 못 죽이는 스님들에게 데려가 봐야 훈방으로 끝날 테니, 즉결처분해야겠어.”

하며 자루를 둘러메고 산으로 향했다.

그러자 자루 안의 너구리가 영간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이봐 인간, 나를 놓아주면 평생에 쓰일 신기한 술법이 적힌 책을 줄게.”

영간이 놀라 자루를 놓쳤다.

“말도 하는 걸 보니 요매가 분명하구나. 요매는 경을 읽어 퇴치한다던데, 스님들에게 데려가야겠다.”

영간은 이제 자루를 질질 끌고 다시 절로 향했다.

돌에 걸릴 때마다 너구리가 아프다고 소리쳤다.

“시끄러! 너 때문에 꼬집힌 내 귀때기가 얼만데?”

버럭 소리치는 영간의 앞에 웬 청의동자가 나타났다.

“내가 기르던 애묘라오. 이 책과 바꾸는 게 어떻겠소?”

하며 청의동자가 책을 펼쳐 보이니 선녀 같은 여인이 그려져 있었다. 여인이 금방이라도 달려 나올 듯 영간을 향해 웃고 있었다.

영간이 저도 모르게 책을 받아드는 동안 청의동자는 자루를 들고 도망쳤다.     

영간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림 속 여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가 싶더니 책 밖으로 손을 내미는 게 아닌가?

영간은 저도 모르게 손을 잡았다. 여인의 당기는 힘이 어찌나 센지 영간은 책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었다. 그림 안으로 영간의 얼굴이 들어가니 그곳은 예쁘게 꾸며진 방이었다. 영간이 한 발을 그림 안으로 들여놓자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탁자 아래에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구미호다!’

영간이 멈칫하여 발을 뒤로 빼려했다.

그러자 여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여우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강한 힘으로 영간을 잡아당겼다. 영간은 끌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여우의 힘을 당할 수가 없었다. 영간이 한 손으로 소나무 가지를 붙잡아 버티자 여우의 팔이 길어지더니 소나무 가지를 뚝 부러뜨리는 것이었다.

영간이 훅 딸려가는 순간, 종소리가 댕~ 하고 울렸다. 책이 탁 덮이며 바닥에 떨어지고 영간이 풀려났다.

“새벽예불 종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때가 있다니.”

영간은 발로 책을 콱콱 밟으려다가 다시 책장을 들추어 보았다. 책장 어디에도 그림은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도깨비놀음에 속은 영간은 허탈하여 주저앉았다. 일어날 힘도 없어 누가 와서 업어갔으면 싶었다.

“용케 살아있네.”

청의동자가 또 바람처럼 나타났다.

영간이 벌떡 일어나 동자의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 나를 죽이려 했더냐?”

“미안하게 되었네. 내 친구를 구하려고 급하게 들고 나온 책이 ‘요괴 퇴치법’ 책이지 뭔가? 학당 교재라 살상능력은 없는 구미호라네. 독 없는 물뱀이라고나 할까. 자네는 배우지 않고도 구미호를 퇴치했으니 대단하구먼.”

“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야?”

“자네의 재능을 칭찬하는 소리야.”

“병 주고 약 주는 놈에게는 똑 같이 돌려주어야지.”

영간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압축된 공기주머니에 부딪힌 것처럼 영간이 튕겨났다.

청의동자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말했듯이 그 책은 학당 교재라 돌려받았으면 하네.”

“그 도둑괭이 데려와. 그러면 돌려줄지 말지 고민해 보마.”

영간은 책을 옷 속에 넣고 단단히 여몄다.

청의동자는 일이 귀찮게 되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바둑을 한 판 두어서 이기는 쪽이 그 책을 갖기로.”

..........


뒷이야기는 아래 주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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