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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쌤 Mar 01. 2024

7,000원의 행복

정말 무섭게 상승하는 물가 속에서 밖에서 무언가를 먹는 것이 이제는 만원 한 장으로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좋아하는 패스트푸드를 먹으러 가도 세트메뉴를 시키면 거의 만원이 다되거나 넘는 것들도 있다. 얼마 전 자고 일어나면 물가가 오르는 듯 한 고물가 시대에 조금은 색다른 경험을 했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점심을 먹으러 나가게 되었다.

재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식사도 혼자 하실 때가 많으신 아버지가 요즘 들어 부쩍 몸무게 걱정을 하셨던 것이 생각이 나서 같이 식사를 하러 나섰다.


식성이 좋아 아무거나 잘 드시는 아버지는 웬만한 음식들을 다 잘 드신다. 심지어는 햄버거도 거리낌 없이 맛있게 드신다. 보통 같이 식사를 하러 나가면 내가 원하는 거 아무거나 먹으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오늘따라 한식뷔페를 가자고 하셨다. 저번에 다른 분이랑 간 적이 있다고.


"아버지, 한식 뷔페 가봐야 먹을 거 별로 없어요? 요즘 물가도 비싸고 해서 가격도 예전 같지 않을 거고"


아버지는 별말 않으시고 그냥 걸으셨다. 원래 고집이 좀 있으신 편이셔서 그냥 아버지를 따라갔다.

건물 2층에 있는 제법 규모가 큰 한식 뷔페였고 1시가 넘었는데도 안에 사람이 꽤 있었다. 선불제여서 먼저 두 사람분을 카드로 계산했는데...  


'어!!!    이게 뭐야!   


금액이 14,000원이었다. 일인당 7,000원이라고....  요즘 백반도 8,000이 넘는데...'


계산을 하고 약간은 얼떨떨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따라 식판을 들고 열심히 밥과 반찬들을 담았다.

솔직히 몇 가지 반찬이 더 있었지만 고기를 많이 담으려고 안 담았다. 그리고 좀 있다가 잔치국수도 가지고 와서 먹었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며 정신없이 먹다 보니 정말 배가 터질 것 같았다. 식사 후에 커피와 매실차도 한잔 마셨다. 라면도 끓여 먹을 수 있고 계란 프라이도 해 먹을 수 있었지만 귀찮아서 그냥 생략하고 기본 반찬으로만 먹었다.

정신없이 식사를 하고  배가 부르게 되니까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1시 30분인데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어떤 분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지 유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7,000원의 행복을 찾은 사람들...



- 근처 병원직원들 인듯한 분들 4분이 앉아 담소를 나누며 밝은 표정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를 하고 다시 힘을 얻어 오후 근무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환자복을 입은 어르신과 딸로 보이는 중년 여성분이 식사를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식사를 앞에 두었지만 오랜만의 만남이 더 좋지 않았을까!!


- 외국인을 포함해 작업복을 입은 건장한 남성 4명이 고봉밥이랑 산더미 같은 반찬을 쌓아 놓고 급히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 허기! 생존!  밥심으로 일해야 하니까!!


- 관계를 잘 모르겠지만 남녀 한 쌍이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무슨 관계일까 궁금했지만 물어볼수도 없고....


- 혼자 와서 식사를 하는 분들도 여러분 보였다. 근처 스터디 카페에서 온듯한 학생은 책을 보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종종 혼자 식사를 하러 가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공간이 넓어 눈치 안보고 편안하게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 할머니 한 분이 손자 두 명을 데리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꼬맹이들은 뭘 먹나 싶어 유심이 보았는데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것이 없는지 조금씩만 담아와서 할머니의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육아에 많이 힘들실텐데 많이 드세요. 어머니 생각이 났다!


-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식사를 하고 난 후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벽면에 붙어있는 긴 의자에 누워 쪽잠을 주무시는 분도 계셨다. 구석이고 해서 주인장도 손님들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식사 후 잠깐의 잠이 또 하루를 움직여줄 힘을 주지 않을까 한다!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도 시킬 겸 아버지와 같이 좀 더 멀리 돌아서 집까지 걸어갔다. 아버지가 왜 여기로 식사를 하러 오자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가성비 좋은 식사를 한 것도 좋았지만 집밥 같은 밥을 마음껏 편안하게 아버지와 같이 먹으면서 여유 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너무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 이런 기분은 나만이 아니라 오늘 한식 뷔페에 식사를 했던 그 모든 사람들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쾌적한 공간에서 가성비 좋은 음식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먹을 수 있고, 여럿이 왔을 때는 여유롭게 담소를 나누며, 혼자 왔을 때도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편안함.

날씨가 따듯해지면 근처 산에 아버지와 같이 등산을 갔다 오면서 한 번 7,000원의 행복을 경험해 보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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