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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와하나 Nov 16. 2022

아주 잠깐 지옥에 다녀왔습니다.

  이주일 전쯤 일 겁니다. 저녁을 먹다 무심결에 만진 목이 부어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부어 있는 게 아닌 동그랗게 한 부분만 부풀어 올라 있었습니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암일까 봐요.


23살 되던 해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어머니도 암으로 돌아가셨죠. 제가 암일까 극도로 걱정한 이유입니다. 2년 전 건강검진 차 대장내시경을 받았을 때, 3개의 용종이 나와 제거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의사가 빨리 와서 다행이라는 말도 있었고요.



병원 검사를 받으니 침샘염과 임파선염이라고 하더군요. 검사를 받고는 한동안은 안심했습니다. 약도 꼬박 먹었고요.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가라앉기는커녕 쇄골이 있는 부분에도 몽우리가 만져졌습니다. 다시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작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오진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과 두려움 때문에요.


그런데 아주 웃기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암 이어도 내일 카페 문은 열어야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동네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한 발자국씩 다가와도 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내가 너무 한심 한 겁니다. 딱히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냥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겠다는 내가 한심해졌습니다. 그렇게 걱정 가득 지옥 같은 일주일이 더 지나갔습니다.



2주 정도 지나기 시작할 때쯤 다행히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암일까 하는 걱정은 덜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주는 약도 꼬박꼬박 먹고, 각종 비타민이나 몸에 좋다는 즙도 챙겨 먹으며 일찍 잠에 든 보람이 있었습니다. 아마 쉬지 않고 일은 하는데, 밥을 잘 챙겨 먹지 않아 몸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 며칠은 진지하게 만약 죽을병에 걸린다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고 싶었던 여행을 훌쩍 떠나야 할까, 죽고 나면 남은 재산은 사회에 환원해야 할까, 유서라도 미리 써두어야 하나, 아참 영정사진은 아직 없는데... 하는 생각들 말이죠.


정말 웃기지 않나요? 당장 죽을병에 걸려도 일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다니... 이번 일을 계기로 저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구나 하며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어찌 되었든 이번 해프닝은 나름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인생에 고민을 하게 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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