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히오스섬의 학살, 외젠들라크루아
원래 4.3. 으로 글을 쓰고 싶었던 그림이었습니다.
외젠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년 4월 26일 ~ 1863년 8월 13일)가 그린 ‘히오스섬의 학살(The Massacre at Chios, Scènes des massacres de Scio,1823) 입니다.
루브르에서 보고 온 그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리크루아가 프랑스 혁명을 더할 나의 없이 벅차게 그려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앞에서서 들라크루아를 다 이해해버렸고.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나칠뻔했던 이 그림에서 무심히 지나치려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그림의 우측 하단에 묘사된 죽은 어미의 젖을 찾는 아이였습니다.
강요배 화백이 그려낸 제주4.3.의 그림과 오버랩되었습니다.
글을 쓰려고 찾아보니, 식민지였던 그리스의 독립전쟁을 진압하고자 오스만투르크 군대가 잔혹하게 섬의 민중들을 학살했던 역사를 다룬 그림이었습니다. 사실 같은 민족끼리가 아니었으니, 제주 4.3.을 이야기하기에는 적절해보이지 않아 킵해 놓긴 했는데 그 장면이 계속 기억에 맴돌았습니다.
학살이라는 것이 민족 따지고 국가 따지고 해서 어떤 정당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평화롭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이들이 하루 아침에 집이 불타고 피붙이를 눈 앞에서 잃고 혹은 참혹하게 내가 죽는 것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아 당연한 것인데 말입니다.
낭만주의의 대표주자였던 들라크루아의 작품인만큼 이 그림 하나가(라 표현하기에 죄송하지만) 유럽인들의 김정을 자극하게 됩니다. 결국 그리스 독립에 대한 유럽의 지원을 이끌어 내게 되고 그리스의 독립으로 이어지게 된 거죠.
어찌 보면 사진 하나가, 그림 하나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니 예술이 더 이상 유희로서의 소모가 아님은 분명할 것입니다.
아마 제가 그림으로, 영화로 글을 쓰는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단상에 올라 주먹을 하늘로 향해 날리면서 외치지 않아도 세상은 이렇게도 바뀔 수 있으니까요.
괴테콜비츠의 판화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케빈카터의 사진, 그리고 현기영의 순이삼촌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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