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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Aug 11. 2022

나그네 외투의 단추 하나

아직도 어려운 장애인 승객 응대

"티켓이 안 나와요."


 역무실에 어린아이가 혼자 들어와 말했다. 나는 어린이 승차권을 말하는지 알고 발매기 열쇠를 챙기며 되물었다.


"돈은 나왔어요?"


 아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장애인 복지 카드를 조심스럽게 보여줬다. 그제서야 나는 아이가 말하는 것이 무임승차권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새 무임승차권을 받아 든 아이는 역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굳은 표정의 여성이 들어왔다.


"저희 애한테 뭐 물어보셨어요?"


 내가 뭔가 실수를 해서 따지러 들어온 걸까? 싸늘한 표정의 아이 어머니 앞에서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린이 승차권인 줄 알고, 돈 나왔냐고 물어봤는데요······."


그제서야 여성은 환하게 웃었다.


"아, 그러셨구나. 애가 뭘 물어봤다기에 제가 알려주려고 여쭤본 거예요. 수고하세요."


 역무실을 나서면서 아이 어머니는 아이에게 이런 경우 어떻게 말하면 더 좋을지를 차분하게 알려줬다. 아마 아이 어머니가 화가 났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오해였을 것이다. 역무실에 있으면 장애인 고객을 자주 접하는데 나는 그들에 대해 잘 모르기에 오해를 살 때가 많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인 줄 지레짐작해 괜히 주눅 들었던 것이다.


 내가 갓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된 신입일 때의 일이다. 한 남성 고객이 혼자 역무실에 들어와 장애인 복지카드를 보여주면서 무임승차권 2장을 달라고 했다.


"왜 2장이 필요하세요?"


 남성 고객은 보호자가 있으니까 달라고 하지 왜 달라고 하겠냐며 화를 냈다. 선배들의 만류로 남성 고객은 지하철 직원들이 제일 불친절하다는 말을 남기고 역무실을 나섰다. 중증 이상의 장애인의 경우 보호자 1인까지 무임승차권을 사용할 수 있다.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한다는 게 '왜 2장이 필요하세요?'라고 질문해 버린 것이다.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당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나였다면 '보호자분 같이 오셨어요?' 정도로 물어봤을 것이다. 그 편이 상대방이 받아들이기에 훨씬 부드럽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물론 그 질문 한마디가 그렇게 화를 낼 일이었는지를 따진다면 나도 조금은 억울하다. 하지만 그 남성 고객은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이런저런 불편함을 겪어오다가 그날 나의 질문에 참았던 울분이 터졌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호되게 혼이 난 뒤로 장애인 고객을 응대할 때는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못해 최대한 말을 아끼게 된다. 나는 평소에 그들이 겪는 편견과 차별을 잘 모르기에, 나의 말에 어떤 편견이 담겨 있을지, 어떤 차별을 상기시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단절이 모여 차별의 벽이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종종 나의 방어막을 뚫고 무지한 나를 일깨워주시는 장애인 승객들을 만나기도 한다. 가끔씩 콜센터에서 시각 장애인 승객이 곧 도착하니 안내를 부탁한다는 전화가 온다. 처음 그런 전화를 받은 나는 호기롭게 승강장에 내려가 시각 장애인 승객을 맞이했다. 하지만 나의 의욕과는 달리 앞이 안 보이는 분에게 어떻게 길을 설명해야 할지, 어떤 속도로 걸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 댔다. 이런 나를 눈치채셨는지 그 고객은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괜찮으시면 제가 어깨나 팔을 잡아도 될까요?"


 나는 팔을 내어드렸다. 모든 것을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자 안내가 한결 쉬워졌다. 내 팔을 잡은 손이 나를 놓치지 않는지를 살피면서 적절한 속도도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출구에 도착했다. 그 고객 덕분에 시각 장애인을 응대하는 법을 조금은 배운 것이다.


"영희 누나 보고 놀랬어. 근데 난 그럴 수 있죠. 다운증후군을 처음 보는데 그럴 수 있죠, 놀랠 수 있죠! 그게 잘못되었다면 미안해요. 그런 장애가 있는 사람을 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 집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게 맞는지 몰랐다고요. 그래서 그랬어요. 다시는 그럴 일 없어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운증후군 영희를 보고 놀라는 모습을 보인 정준이 동생 영옥에서 사과하는 대사다. 나에게서 차별을 느꼈음을 토로하는 장애인 승객을 만난다면 나는 '죄송합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솔직한 마음은 드라마 속 정준과 같다. 그렇다고 나의 무지함이 떳떳하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내가 무지하게 답답하다.


 그나마 나와 같은 무지한 자들에게 최근 장애인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서 말한 '우리들의 블루스'의 다운증후군 영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우영우가 그들이다. 학교나 집에서 배운 적 없는 것을 드라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나마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반길만한 일이다. 내가 시각 장애인 고객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조화로운 공존에 대해 고민하고 배워 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 편의 드라마가 장애인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모두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따뜻한 햇살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듯 작은 변화로부터 나와 같은 나그네들의 무지와 편견을 하나하나 풀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점심시간을 앞두고 시각 장애인 승객을 안내해달라는 콜센터의 전화가 또 왔다. 이번에는 먼저 내 팔을 내어드리고 천천히 걸음을 맞췄다. 택시를 탈 수 있는 곳까지 도착한 고객은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서비스를 했을 뿐인데 이렇게 감사하게 생각해 주시니 이미 점심을 먹은 듯 배가 불러왔다. 볼록 튀어나온 뱃살이 나그네 외투의 단추 하나를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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