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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Oct 24. 2022

사라진 양심우산

좋은 서비스가 사라지는 과정

 딸랑. 역무실 문에 달린 종이 울리면서 당황한 표정의 고객이 들어왔다.


"갑자기 비가 와서 그러는데 혹시 우산 빌릴 수 있을까요?"


 일기예보에 없던 비가 갑작스럽게 내리던 날 우산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려야 했던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산을 빌려주는 것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호의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물에서 건져주는 것처럼 감사한 일이다. 오죽하면 비 오는 날 같이 우산을 쓰면서 사랑이 싹트는 장면이 잊을만하면 드라마에 등장할까.


 지하철에는 이런 경우에 대비해 우산을 무상으로 빌려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그렇다. 과거형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역마다 ○○은행이나 △△병원이 새겨진 튼튼한 양심우산이 있었다. 지하철에 수익 한 푼 안 되는 제도지만 시민들은 비를 피할 수 있어서 좋았고 우산을 후원해 주는 기업들은 홍보를 할 수 있어 좋았다. 나도 지인들에게 역무원만 아는 꿀팁 인척 소개해 주던 만족스러운 서비스였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더 이상 우산 대여 서비스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남는 우산이 하나도 없나요? 뭐 덮어쓸 거라도 없을까요?"

"죄송합니다."

"왜 없어진 거예요?"


 고객님, 거기에는 슬픈 전설이 있답니다. 들어보시겠어요?


 약 25년을 이어오던 양심우산 서비스는 어느 날 갑자기 폐지되고 말았다. 지하철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업무를 줄이기 위한 꼼수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정권에 따라 바뀌는 사장이 변덕을 부린 걸까?" 이 글은 사라진 양심우산에 얽힌 슬픈 이야기다.



 양심우산 서비스는  도입 초기만 해도 돈은 들지 않으면서 만족도는 높은 획기적인 제도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한때 관공서, 사기업을 가리지 않고 비슷한 우산 대여 제도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우리 지하철에서도 이에 질세라 양심우산 서비스를 개시했다. 후원 기업의 명칭과 '양심우산'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진 우산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튼튼했다. 그렇게 대여될 날을 기다리는 늠름한 우산들이 역무실 우산 통을 가득 채웠다. 드디어 예고에 없던 비가 쏟아지는 날, 역무원들은 우산 통을 역무실 앞에 가져다 놓고 개인정보 수집 동의서와 대여증을 준비했다. 한 명 한 명 우산을 받아 드는 고객들의 얼굴에는 흡족한 미소와 안도가 보였다. 나날이 우산을 대여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우리의 양심우산들이 고객 만족을 위해 충실히 일해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출장나간 양심우산들이 돌아오지를 않았다. 우산 통은 나날이 빈자리가 늘어났다. 그 자리를 채워줄 신입 양심우산들은 금방 들어오지 않았다. 일 년에 몇 번 각 역의 대여 실적에 따라 배분될 뿐 부족하다고 요청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산을 후원해 주는 기업들이 있긴 했지만 후원이 넉넉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부족한 우산은 짝퉁 양심우산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비 오는 날 열차 안에서 주인을 잃었거나 버려진 유실물 우산들이었다. 그런 우산의 상태가 좋을 리가 없었다. 우산 통의 늠름했던 우산들은 나날이 볼품 없어졌다. 우산을 빌리려던 고객들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흡족한 미소를 찾아볼 수 없었다. 황당한 표정의 고객들 입에서는 "다른 건 없어요?" 하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음을 안내하면 마뜩잖은 표정으로 우산을 들고 역무실을 나갔다. 그런 유실물마저도 없는 역에서는 재고 없음 안내문을 붙이고 사과하기 바빴다.


 무너져가는 양심우산 서비스를 회사에서 가만히 손 놓고 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서비스를 시작할 때부터 수기로 작성하던 관리 대장을 전산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변화를 꾀했다. 역에서 대여자의 인적 사항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반납 예정일 안내 문자가 전송됐다. 반납도 고객이 원하는 역 어디에서나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반복해서 대여만 하고 반납하지 않는 사람들을 추려 대여 금지 리스트도 관리했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들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양심우산의 수는 크게 늘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유야무야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양심우산 서비스 폐지를 건의하는 공문이 올라왔다. 공문에는 서비스 현황에 대한 분석 보고서도 있었다. 나는 보고서의 내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양심 우산의 회수율은 고작 22%였다. 반납되는 우산이 적다는 것은 알았지만 22%라니. 충격적인 수치였다. 너무 낮은 회수율 때문에 항상 재고가 부족했고 그 자리를 메꾸는 유실물 우산으로 인해 서비스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까다로워진 청탁금지법과 기부금품법 때문에 기업의 우산 후원을 받기도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지하철에서도 우산 대여 서비스들이 비슷한 이유로 대부분 중단된 상태였다.


 결국 양심우산 서비스는 폐지되고 말았다. 남아있는 양심우산을 대여하면서 역무원들은 말했다. "이제 안 돌려주셔도 됩니다." 제대로 돌려받은 적도 없지만 이제는 돌려받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모든 양심우산이 떠나가고 서비스는 중단됐다. 일거리가 하나 줄어든 역무원들이 쾌재를 불렀을까? 아니다. 25년간 지속된 서비스가 중단됐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비가 쏟아지면 우산 통을 준비하는 대신 서둘러 서비스 폐지 안내문을 붙였다. 우산을 빌리러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이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몇 번을 뒤돌아 보며 역무실 구석구석 우산의 흔적을 찾았다. 가끔은 역무원 개인의 우산이라도 달라거나 우산 살 돈을 요구 받기도 했다. 폐지된 지 일 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찾는 사람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고있다.


 폐지되기에는 참 아까운 제도였다. 차라리 이름에 양심을 떼고 '빌린 우산', '내 우산 아님', '곧 반납 예정'이라고 큼직하게 적어뒀다면 우산을 계속 쓰기가 부끄러워서라도 돌려주지 않았을까? 혹은 단돈 오백 원의 보증금이라도 받았다면 회수율이 22%보다는 높았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서비스들이 이용객들의 비양심적인 행태에 시달리고 있다. 물품 보관함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은 보관함 안에 버려지는 쓰레기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고, 다자녀 가정에 주어지는 할인 혜택은 부정승차의 온상이 되고 있다. 수요가 많은 제도도 이용하는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원활하게 운영될 수 없다. 앞으로 또 어떤 서비스가 사라지게 될지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양심에 달렸는지도 모르겠다.


 딸랑. 역무실 문의 종이 울린다. 나는 또 양심우산의 슬픈 이야기를 전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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