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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Aug 24. 2022

두유노 철밥통?

공기업 직원들을 바라보는 시선

두유노 김연아? 두유노 손흥민? 두유노 BTS? 두유노 아기 상어? 두유노 오징어 게임?


 두유노 클럽을 아는가?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스포츠 스타부터 문화 콘텐츠들까지 이름만 들어도 국뽕이 차오르는 명예의 전당이다. 예전에는 두유노 김치, 두유노 삼성 정도에서 스포츠 스타가 드문드문 추가되며 아슬아슬하게 국뽕을 충전해 주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의 콘텐츠들이 전 세계적인 히트를 치면서 빠른 속도로 회원이 늘어나고 있다. 덕분에 온 나라에 국뽕이 흘러넘쳐 여기저기 K 열풍이다. 그러나 두유노 클럽이 이렇게 활성화되기 전에는 외국 여행 중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우리가 받는 질문은 따로 있었다.


"Where are you from?"

"I am from Korea."

"North or South?"


 한국에서 살면서 탈북민을 만나는 일도 흔치 않은데, 북한 사람이냐니. 외국 사람들은 우리보다도 북한 사람들을 접하는 일이 많은 걸까? 하지만 이들이 어떤 뉴스로 Korea를 가장 많이 접하는지 알게 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내가 호주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한창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인 히트를 쳤을 때였다. 호주 시내의 쇼핑몰에서 강남스타일 노래가 나오고, 카페에는 강남스타일 샌드위치가 등장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솨량해효 갱낭스톼일!"을 외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를 경계의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즈음 뉴스에서는 연이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소식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North Korea가 흔들어 놓는 평화. 그들에게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얼마나 부강해졌는지보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더 중요한 주제였던 것이다. 실제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에 더 예민한 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나는 요즘도 가끔 호주 사람들에게서 봤던 경계의 시선을 느낀다. 주로 유니폼을 입고 열차에 탑승할 때다. 경광봉을 들고 역무원이 열차에 나타나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역무원을 향한다. 마치 나타나지 말아야 할 것이 나타난 듯 정말 모든 사람들이 쳐다본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평생 지하철을 이용하면서도 직원을 본 적이 없을 테니 신기할 수도 있고, 열차에 뭔가 문제가 생긴 건지 불안한 마음에 쳐다보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입사 초기에는 꿈에 그리던 공기업 직원이 됐다는 자부심에 그런 시선들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우리 직장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알게 되면서 주목받는 것이 점점 부담이 되고 있다. 가끔 인접역에 점심을 먹으러 갈 때도 수 백 개의 눈이 나를 바라본다. 그럴 때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구석에서 공기처럼 서있다가 얌전히 내린다. '지금은 무급 점심시간입니다! 무급이요!'라는 무언의 몸짓이랄까. 


 외국 사람들이 북한의 미사일 소식으로 한국을 접하듯, 일반 시민들에게 지하철은 주로 파업이나 열차 사고로 9시 뉴스에 등장하는 것이 익숙하다. 혹은 큰 규모의 적자가 발생하는데 방만한 경영으로 배짱 장사를 한다거나, 경제가 어려운데 공기업 직원들의 평균 임금만 매년 올란 간다거나. 이런 뉴스만 접하는 시민들에게 우리는 신의 직장에서 철밥통으로 배 채우는 게으른 귀족 노조일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니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거나 지지율이 떨어지면 하나같이 공기업을 때려잡겠다고 외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일 안 하고 노는 놈들 좀 끌어내리라고 열렬히 환호한다.


 그럴 때 나는 정말 억울하다. 실제로 우리가 일하는 현장은 뉴스와는 사뭇 다르다. 사실 우리는 좀 찌질하다.


 여름에 사내 게시판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글은 '사무실이 바깥보다 더 더워요.', 겨울에 사내 게시판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글은 '손가락이 얼어서 타자가 안 쳐져요.'. 공공기관 에너지 이용 합리화라는 미명 아래 본사 직원들의 사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름 실내 온도가 이처럼 뚝뚝 떨어지면 좋을 텐데 말이다.


 내가 입사 후 처음 지급받은 동복 유니폼은 한 달이 안 돼 솜이 송송 빠져나왔다. 게다가 빨면 빨수록 콧물을 닦은 것처럼 소매 부분부터 반질반질거렸다. 바지는 더 가관이었다. 이제는 시중에서 구하기도 힘든 소재로 만든 바지는 다림질 한 번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리미에 철썩 달라붙어 다리미 모양의 플라스틱으로 재탄생했다. 유니폼 상태가 이런 데도 업체를 바꾸지 못했던 것은 그놈의 경영 평가 때문이다. 경영 평가에 들어가는 장애인 기업 계약 실적을 위해 계약 때보다 훨씬 떨어지는 유니폼을 납품해도 계약을 해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안 좋았던 재정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서 사무 용품들의 지급도 한없이 미뤄져 결국 사비로 구입해 써야 했다. 나는 클립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다시는 클립 떨어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 월동 준비하는 다람쥐의 마음으로  대용량 클립 세 통을 샀다. 사무 용품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목장갑이 필요하다는 기술부서에 목장갑을 지급하는 대신 아껴 쓰라는 핀잔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많은 직원들이 분통을 터트렸다.


 뭐니 뭐니 해도 일반 회사원들이 가장 놀랄만한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회식비를 각출한다. 공기업인은 청렴해야 하므로 신입사원까지 정직하게 n 분의 1. 법인카드가 뭐죠? 새로 나온 교통카드인가요?


 밖에서 보는 우리는 갑인 거 같지만, 사실은 철저한 을이다. 빠른 고령화로 무임승차자가 늘어나면서 심화되고 있는 적자 문제는 이제 입이 아프다. 조달청을 통해서만 물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회사보다 비품을 비싸게 살 수밖에 없고, 계약을 할 때도 행정안전부의 권고에 따라 장애인 표준사업장인지, 남녀 고용 평등 우수 기업인지 등에 가점을 줘야 하므로 마냥 싸게 계약을 체결할 수도 없다. 그래도 이런 것은 국민의 세금이 다시 민간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노선이 생겼는데 인원을 뽑지 않고 사실상의 구조조정을 해 놓고선, 신규자가 들어오지 않고 선배들의 연차가 점점 쌓여 평균 임금이 올라간 것을 마치 회사에서 동종 기관보다 과도하게 월급을 많이 주는 것처럼 호도하는 뉴스는 정말 참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평범한 역무원들의 소식이 뉴스에 나올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어느 역무원의 호출 처리 능력이 분당 5회를 갱신했다고 합니다. 어느 기관사가 신호 장애로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안내방송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 공기업 직원이 자녀 학비를 위해 적금을 깼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들은 뉴스에 나올 리가 없으니, 우리는 사람들에게 철밥통으로 배 채우는 등 따시고 배부른 상팔자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사무실마다 근무인원은 점점 줄어들고, 휴가도 순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사용하는 우리는 평범한 K 직장인이다. 딱히 명예랄 것도 특별한 기술이랄 것도 없어서 신입사원이 들어오자마자 은퇴 후를 걱정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다. 물론 특별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정년을 채울 수 있고, 월급이 밀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측면에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신의 직장인 것은 맞다. 아마도 좀 찌질한 신의 직장인 것 같다.


 앞으로도 사람들의 편견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만나는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자고 다짐해 본다. 두유노 클럽에 해가 될까 봐 어글리 코리안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많은 사람들처럼.


 "두유노 철밥통?"이라는 질문의 대답이 "I love 철밥통"이 될 수 있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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