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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Aug 02. 2022

엘리베이터는 검은 연기를 뿜어냈다

역무원에게 가해지는 폭력

 코로나19가 한창 맹위를 떨치다 잠시 주춤할 즈음이었다. 줄어들었던 수송인원이 다시 회복되고 있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 뉴스에서는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거리두기로 입은 자영업자들의 피해와 직장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가리고 있던 좌절과 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럴 때 이상한 사람들 많이 온다. 몸조심해라."


 경험에서 나온 선배의 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역무원들이 당하는 폭행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그즈음 정말 하루가 멀다 하게 폭행사고가 보고됐다. 얼마 안 있어 친했던 후배가 폭행당했다는 보고서가 올라왔다. 교통카드를 찍지 않고 게이트를 통과하려던 고객이 제지하는 후배의 목을 졸랐다고 한다. 단순 폭행도 아니고 목을 졸랐다니. 얼마나 공포스럽고 수치스러웠을까.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면 당하지 않았을 사고가 유니폼을 입으면 그렇게 쉽게 일어난다. 그 사건이 있은지 몇 달 뒤 만난 후배는 뜻밖의 말을 했다. 폭행보다도 그 이후가 더 괴롭다고. 잊을만하면 경찰서에, 법원에 불려 다니는 게 더 힘들었다고 한다. 폭행은 한순간인데, 처벌이 내려지기까지 피해자로 살아야 한다고. 고소만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도대체 끝나지가 않는다고.


 얼마 안 있어 나에게도 선배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하루는 한 민원인이 역무실에 헐레벌떡 들어왔다. 검은 모자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 연기가 난다고 했다. 현장에 급히 달려갔지만 연기는커녕, 단순한 고장도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지금은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눈여겨보겠다는 안내를 받은 남자는 순순히 역무실을 나갔다. 그렇게 연기 나는 엘리베이터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날 출근했더니 인수인계부에 빨간 별표가 크게 그려져 있었다. 조용히 물러간 줄 알았던 남자는 그날 야간 근무조에 전화로 한참 동안 욕을 퍼부었던 것이다. 우리 조가 자신을 무시하는 듯이 쳐다봤고, 동료라고 숨겨주지 말라며 개아기 소아기를 찾았다고 한다. 그리곤 자신의 재방문 날짜를 예고해 뒀다.


 예고한 그날 정말로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다시 찾아왔다. 남자는 역무실 한켠에 가방을 내려놓더니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우리의 해명은 안중에도 없었다. 알고 있다. 어떤 해명도 어차피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부터 엘리베이터에 연기 따위는 없었다. 그냥 누군가에게 욕을 하고 시비를 걸고 싶었을 뿐이고, 그게 유니폼을 입고 있는 우리라는 것을. 욕은 점점 더 거칠어져 갔다. 개아기, 소아기에서 시작된 욕은 생사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민원인의 눈에 서린 살기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단순히 화가 난 사람의 눈 빛이 아니었다. 물어뜯을 것을 발견한 희열로 번뜩이는 짐승의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가방 속에서 흉기를 꺼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런 공포감을 느꼈다.


 노련한 상사는 CCTV를 벗어나지 않는 각도에서 적당히 받아치며 싸움을 피했다. 간혹 목소리는 커졌지만 맞대응하지는 않았다. 나는 핸드폰으로 영상 녹화를 하면서, 언제라도 경찰에 전화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민원인은, 깽값 물어줄 테니 한판 붙자는 미끼가 우리에게 통하지 않자 밤길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역무실을 나섰다.


 역무실은 다시 평화를 되찾은 것처럼 보였지만 물어 뜯겨 상처 난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응급처치도 받지 못한 마음을 숨긴 채 마지막 열차가 갈 때까지 승객들을 응대해야 했다. 그날 밤, 꿈속에서 역은 불길에 휩싸였고 역무실은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검은 연기를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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