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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Aug 14. 2022

지하철 괴담

직원들만 아는 오싹한 지하철 이야기

늦은 밤 주박지의 그녀


 모든 열차가 차량기지에 있으면 차량기지 반대편 역의 첫차 도착시간이 너무 늦어지기에, 중간중간 주박지를 마련하고 열차를 정차시켜 놓는다. 그래서 기관사들은 야심한 시각에 마지막 열차를 주박지에 정차시키고 침실로 가기 위해  홀로 깜깜한 터널을 지나야 한다. 그런데 유독 그 주박지를 이용한 기관사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유독 음습한 기운이 느껴진다던 주박지는, 어느새 터널에서 누군가 자신을 쫓아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주박지의 침실에서 자꾸만 가위를 눌린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기관사가 터널에서 여성의 형태를 보고 혼비백산하는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그날 이후로 그 여성에 대한 목격담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는 상황에 이르자 회사는 주박지를 다른 역으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기관사들이 목격했던 그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지금 지하철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 조심하라. 어둠 속의 그녀와 눈이 마주칠지도 모른다.




공동묘지 옆의 지하철


 차량기지 가까이에 있는 어느 한적한 역은 바로 옆에 공동묘지가 붙어있다. 차라리 승객이 많으면 덜 무서울 텐데, 승객이 없는 밤 시간이면 한기가 돌아 손끝에서부터 닭살이 돋는다고 한다. 그 역에서는 아무도 없는데 갑자기 게이트에서 카드를 찍는 소리가 종종 들린다. 탑승자도 없는데 에스컬레이터가 혼자서 움직이는 것은 예삿일이다. 그러다 음산한 밤, 인기척도 없이 역무실 문이 갑자기 벌컥 열리면


"오셨습니까?"


하고 역무원들은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고 한다. 귀신 한 명까지도 친절하게 모시는 선배 역무원들의 직업정신은 참으로 투철하다.




공포의 화장실


 신입 때 내게 일을 가르쳐주던 선배가 직접 겪은 일이다. 모든 열차의 운행이 끝난 역은 셔터를 내리고, 잔류 승객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이때 화장실도 칸칸마다 문을 열어 확인해야 하는데, 그날은 화장실 한 칸의 문이 잠겨 있었다고 한다. 수차례 노크를 하고 한참을 기다려도 인기척이 없자, 이상한 낌새를 차린 선배는 공구를 가져와 강제로 문을 열었다. 화장실 문이 열리자, 그곳에는 목을 맨 사람이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된 채로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나는 화장실을 확인할 때마다 그 얘기가 떠올라서 기분이 오싹했다. 간혹 핸드 드라이어가 갑자기 작동하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 나오곤 한다. 하지만 이것이 그냥 괴담으로 취급할 일은 아니라는 것은 몇 년 후 내가 근무하던 역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고서야 알게 됐다.


 오랜 경력이 있는 과장님이 근무하고 있을 때였는데, 초저녁부터 화장실 변기칸에 들어간 남자가 늦은 밤이 되도록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하게 생각한 과장님은 몇 번이나 화장실을 순찰하면서 변기칸 안에 남자와 대화를 시도했고, 결국 남자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몸이 좋지 않다는 남루한 차림의 그는 노숙인으로 보였다. 과장님은 여기 계시지 말고 119를 불러줄 테니 병원을 가시라고 설득했지만 어쩐지 남자는 한사코 거절했다고 한다. 그렇게 화장실에서 나간 줄 알았던 남자는, 막차가 가고 잔류 승객을 확인할 때 변기칸 안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응급조치를 하고 구급차를 불렀지만 남자는 결국 살아나지 못했다. 과장님은 그 충격으로 일주일간 휴가를 쓰셨다.


 도시의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지하철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람의 생과 사도 가로지르는 것 같다. 죽음을 목격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PSD가 생기기 전까지 선배 기관사들과 역무원들은 더 많은 죽음을 목격해야 했다. 방금 전까지 숨 쉬고 있었던 이의 채 식지 않은 체온을 느끼면서 열차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살점을 하나하나 치워야 했던 선배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PSD 설치와 함께 전설의 고향에 나올법한 이야기가 됐다. 이것이 괴담으로 들리는 이유는 어쩌면 내겐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아는 안일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내가 근무하는 역에서 누군가가 위기 상황을 맞이한다면 나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가까운 119와 병원의 전화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해야겠다. 더 이상의 괴담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지금 지하철 문에 기대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 조심하라. 선로에 폰 빠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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