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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Dec 09. 2022

마스크의 결백

맨몸으로 감당하는 치안과 안전

 한숨이 난다. 또 마스크가 문제다. 그놈의 마스크. 고객을 응대하면서 마스크를 끼는 건 예의가 없는 거라며 민원이 들어오는 통에 황사가 몰려와도 감기에 걸려도 업무 중에는 쓸 수 없었던 것이 마스크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유행에 힘입어 이제는 누구도 마스크 없이 외출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코로나19가 높여 놓은 마스크의 권위, 이제는 그 권위 좀 내려놓으라는 의견과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실내에서 마스크를 더 착용하든 벗든 방역 전문가도 의료진도 아닌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한숨이 나는 이유는 예외사항 때문이다. 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을 해지하자는 주장 뒤에는 대중교통에서만은 마스크 착용을 유지하자는 사족이 간간이 붙는다. 그 말은 역무원인 나에게 마스크 단속이 늘어날 테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는 의미로 들린다. 모든 국민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던 초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났던 마스크 관련 난동들이 또 생기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지금도 마스크 단속을 요구하는 민원은 꾸준히 들어오고 있지만 초기 단속은 얻어맞으러 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살벌했다. 마스크 의무 착용 해지에 대중교통이 제외된다면 외출할 때 마스크 챙기는 것을 깜빡했거나, 대중교통에서는 여전히 착용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마스크 없이 지하철을 타는 경우가 늘어날게 불 보듯 뻔하다. 또 얼마나 많은 갈등이 벌어질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을 하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던 그때, 마침 관제 직통전화가 울린다.


"2022 열차 3호 차에 마스크 안 쓰는 고객이 있어서 싸움이 났다고 합니다. 출동 바랍니다."


 쓸데없는 걱정이 화를 불러온 걸까, 엉뚱한 생각하지 말고 일이나 하라는 뜻일까? 부역장님은 경광봉을, 나는 비상용 마스크를 한 장을 챙겼다. 열차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 마스크를 잃어버린 한 승객의 안타까운 해프닝이며, 비상용 스크가 이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해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승강장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우리가 열차에 타자 승객들 모두 눈 빛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피신해서 휑한 가운데 중년 남성 둘이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한 분은 마스크를 벗은 채 자꾸 기침을 했고, 다른 한 분은 그를 타박하고 있었다. 마스크남과 타박남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너 나 할 것 없이 더 큰 목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고 했다. 싸움이 끝날 것 같지 않자 부역장님은 두 남성을 열차에서 하차시켰다.


 말려줄 사람이 생긴 탓일까. 열차에서 내린 두 남자의 입씨름은 더욱 거칠어져 당장이라도 몸싸움으로 번질 기세였다. 그 와중에도 마스크남은 연신 기침을 하면서 마스크를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입으로 거친 욕설과 기침을 내뱉는데 바쁠 뿐 입을 가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이 답답한 타박남은 흥분을 가라앉히질 못했다. 열변을 토하던 타박남은 얼굴 맞았다며 우리에게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하지만 역무원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찰을 불러드리는 것 밖에.


"경찰 불러 드릴까요?"


 경찰 얘기가 나오자 싸움의 기세는 다소 누그러졌다.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결국 부역장님의 중재로 승강장 끝과 끝으로 가서 각자 다른 열차를 타기로 했다. 끝까지 마스크를 벗은 채 욕을 하던 마스크남은 열차가 도착하자 그제야 마스크를 썼다. 다음 열차로 타박남까지 우리 역을 떠나고서야 우리는 역무실에 돌아갈 수 있었다.


 한바탕 실랑이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내 손에는 여전히 비상용 마스크가 들려있었다. 물끄러미 마스크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 하얀 표면이 마치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듯했다. 마스크에는 죄가 없었다. 오히려 한 장의 마스크는 보호장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죄가 있다면 열차 안의 싸움을 말리러 가면서 달랑 마스크 한 장 밖에 들고나갈 게 없는 현실이야말로 유죄일 것이다. 오죽 기댈 데가 없으면 마스크 한 장에 기대는 것일까.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지되든 유지되든 상관없이 나는 지금처럼 난동을 맨몸으로 저지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역에 근무하는 인원 두 명, 아무런 권한도 보호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단 두 명이서 열차와 역사의 안전과 치안을 담당해야 한다. 최근 역무원의 안전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 지급받은 물품은 전자 호루라기와 경광봉에 들어가는 건전지가 전부다. 작동이 되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 저사양의 보디 캠은 개인의 핸드폰이 대신하고 있다. 역무원은 호루라기와 경광봉으로 열차 안의 싸움도 말리고 난동도 잠재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열차나 역사에서의 퇴거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역무원의 권한은 일반 시민과 다를 바가 없다. 문제가 생기면 경찰에 신고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행기에서는 승객이 난동을 부리면 진압할 수 있도록 테이저건이 있고 착륙 시까지 포박할 수 있다. 경찰을 폭행하면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아도 현행범으로 즉시 체포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철도안전법이 있다. 철도안전법 79조 1항, 폭행ㆍ협박으로 철도종사자의 직무집행을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철도종사자의 직무집행이 방해당하는 그 당시, 그 현장에서 철도종사자가 받을 수 있는 법적인 보호도 장비도 없다. 폭행이나 협박을 당한 후 고소하는 수밖에.


 내가 걱정할 것은 마스크를 벗느냐 쓰느냐가 아니었다. 마스크가 어떻게 되든 역무원인 나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현장에서 폭언이나 폭행을 당하는 역무원들은 많다. 욕을 먹어도 되는 사람, 맞아도 되는 사람, 욕먹고 맞는 것이 월급에 포함된 사람은 없다. 요즘 감정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인식도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누구도 일터에서 폭언, 폭행을 걱정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더 이상 마스크 한 장에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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