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명을 어깨에 지고 달리는 남자
어느 기관사의 푸념
벨소리와 함께 그의 이름이 핸드폰 화면에 떴다. 그의 이름에는 바를 정(正) 자가 들어간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그 이름을 남자는 바꾸고 싶어 했다. 이름 따라 인생도 따라간다고 정직하게 살았는데 손해 보는 일만 늘어난다고 불만이었다. 그는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다가 가끔 눈탱이도 맞는 평범한 남자다.
"맥주 한잔 할까?"
그는 오늘도 승객의 민원에 경위서를 작성하고 쓰린 속을 맥주로 달래고 싶은 지하철 기관사다.
기관사인 그의 등 뒤에는 매일 수 천명의 승객이 있다. 그는 수천 명의 승객이 탑승한 열차를 홀로 끌고 간다. 그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책임감을 혼자 어깨에 짊어지고 일하느라 그는 늘 어깨 통증에 시달린다. 어찌 된 일인지 어깨에 시뻘건 부황 자국이 늘어날수록 근육통은 마음의 통증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최근 들어 그는 가끔 답답한 가슴 통증을 느낀다. 운전실의 어둠에 질식할 것 만 같은 기분이라고 한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데, 지하철 근무자들 중에는 유독 기관사들에게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젊은 나이임에도 공황장애로 열차에서 내리는 동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도 곧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까 봐 조바심이 난다.
매일 같은 선로를 달리는 지하철은 매일 똑같이 평화로워 보인다. 가끔 그런 점이 그를 권태롭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운전실에서 보는 선로는 거기가 거기라, 자신이 어디쯤을 달리고 있는지 눈으로는 알기가 어렵다. 이른 새벽 출근이나, 운행 시간에 쫓겨 급하게 점심을 먹는 날이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선로의 지루함에 남자는 졸음이 온다. 운전실에서 어떠한 전자기기도 사용할 수 없는 그는 졸음을 쫓기 위해 사탕을 먹기도 하고, 뺨을 때리기도 한다. 어느 날은 열차 운행을 마친 그의 뺨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거울을 본 남자는 졸음과 싸운 흔적이 멋쩍어 허허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권태로움과 싸우는 그를 알 길이 없기에 지하철은 매일 똑같이 평화로워 보였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면 가슴이 아파오고, 정신을 놓으면 졸음이 밀려오는 아이러니와 그는 매일 싸우고 있는데 말이다.
홀로 일하는 그에게 다른 이들과의 접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같이 주로 좋은 않은 소식과 함께 이어진다. 모두들 마음이 급한 출퇴근 시간, 그도 저 멀리서 달려오는 마지막 승객까지 모두 태우고 싶지만 한 역에서의 몇 초가 쌓이고 쌓이면 몇 분의 연착이 되고 만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승객들은 자신의 팔과 다리가 희생되는 줄 모르고 출입문을 일단 붙잡고 본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지하철의 문은 단단하게 닫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공기압을 이용한다. 그래서 가벼운 엘리베이터 문처럼 생각한 승객이 열차의 문에 끼이면 의외의 통증에 화들짝 놀라 민원을 접수하곤 한다. 아무리 승강장에 대기하고 있는 승객만을 취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달려와 문에 손을 끼우는 승객의 안전까지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지만, 승객의 민원 앞에 기관사는 무기력하다. 어제 부황을 뜬 어깨가 또다시 아파온다.
그런 그에게 최근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겼다. 운전실에 CCTV가 설치되냐 마냐는 오래 끌어온 난제다. 철도안전법에 따라 운전실에는 CCTV가 설치돼야 하지만, 운행정보기록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경우는 예외로 두는 시행령에 따라 아직까지 CCTV가 설치된 운전실은 없었다. 운행정보기록장치는 비행기의 블랙박스처럼 어떤 고장이 언제 발생했는지, 기관사가 어떤 조작을 했는지가 자세히 기록된다. 국토교통부는 여기에 추가로 CCTV까지 설치하려고 최근 시행령 개정에 나서고 있다. 곧 CCTV가 설치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CCTV가 설치된다면 사고 시 남자의 행동 하나하나가 처벌의 대상이 될 것이다. 지적환호를 했는지, 반응속도는 어떠했는지, 매뉴얼에 없는 불필요한 행동은 없었는지, 매뉴얼의 순서에 맞게 빠짐없이 조치했는지. CCTV 아래에서의 모든 것이 처벌의 대상이기에 그는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검열하게 될 것이다. 운전실 내에서 배변을 처리해야하는 자신의 모습이 찍히는 굴욕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대장마저 검열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급해도 운전실을 떠날 수 없는 기관사들이 운전실에서 급한 용변을 처리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말이다. 돈을 들여 시설과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보다, 사고로 당황한 사람의 실수를 찾고 처벌하는 것은 훨씬 쉬운 일이다. 과연 CCTV가 설치된다고 그의 권태로움을 막을 수 있을까? 가슴통증만 악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운전 중 핸드폰을 보다가 승객들에게 사진을 찍힌 기관사, 졸다가 역을 무정차 통과한 기관사들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일부의 실수로 모두를 옥죄기 위해 감시하는 것만이 해결책일까? 모든 문제를 처벌로 해결하려는 세태를 원망하며, 그는 마지막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래도 좋은 것도 많아. 오늘같이 민원 들어오면 힘들지만, 그래도 좋은 것도 많아."
아쉬운 소리 실컷 들어줬더니 이제 와서 영양가 없는 말을 한다. 한참 동안 푸념만 늘어놓은 것을 알긴 아나보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면 꼭 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그를 위해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도 버스처럼 라디오라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조용해라. 버스 기사님들도 다 고충이 있다."
"그렇지?"
그는 멋쩍게 허허 웃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하철에는 버스처럼 라디오도,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도 없다는 것을 안다. 어두운 터널을 달려가는 그에게는 거친 쇠바퀴의 마찰음만이 있을 뿐이다. 이제는 그를 감시하는 CCTV 아래에서 수천 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달려야 할 날이 머지않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