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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Sep 05. 2022

이모님은 환경사가 되었다

제 이름을 찾은 여성 노동자들

 내가 갓 입사했을 때만 해도 역의 모든 직원들은 환경미화원분들을 이모님 또는 여사님이라고 불렀다. 이모님들의 나이는 대게 정말 이모뻘이거나 엄마뻘이었기에 나도 별다른 고민 없이 이모님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간혹 젊은 분들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 호칭에 대해 딴지를 거는 이는 없었다. 나도 이모님이라는 호칭이 그리 싫지 않았다. 환경미화원 이모님들에게는 정말 이모 같은 정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막 발령을 받고 차량 기지에 있는 사무실에 교육을 받으러 다닐 때였다. 차량 기지가 있는 종착역에 도착하면 열차를 청소하는 이모님들이 계셨다. 종착역 이모님들은 나와 동기들을 보시고는 "처음 보는 얼굴이네. 신입사원이에요?" 하며 익숙하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곧이어 나에게 "아이고, 이 친구는 우리 두나(가명) 닮았네. 작은 두나라고 불러야겠다." 하고 즉석 해서 별명을 지어 주셨다. 두나는 내가 발령받은 호선에서 오래 일하고 있던 선배의 이름이었다. 이모님들이 이렇게 반기시는 걸 보면 두나 선배도 이모님들께 제법 싹싹하게 대했던 것 같다. 종착역 이모님들은 나를 볼 때마다 "아이고, 우리 작은 두나 왔어요?" 하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잊을만하면 들어오는 열차를 청소하느라 고단 했을 텐데도 항상 활짝 웃으시며 먼저 아는 체를 해주셨고, 가끔씩 유니폼 주머니 깊숙이 간식거리를 찔러 넣어 주셨다. 그렇게 살갑게 맞아 주시니 나도 종착역에 갈 때마다 이모님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다. 근무시간 중에 얼마 안 되는 웃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4년을 근무하고 내가 다른 호선으로 이동하면서 더 이상 종착역 이모님들을 만날 수 없게 됐다. 이모님들은 아직도 작은 두나를 기억하고 계실까? 아직도 활짝 웃으시면서 열차를 청소하고 계실까?


 이모님들에게는 이모 같은 정다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떨 때는 엄마처럼 요리를 해주시기도 했다. 미화원 대기실에서는 항상 음식 냄새가 풍겼는데, 갓 지은 고소한 밥 냄새도 나고 달큰한 김치찌개 냄새도 났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식당에서 밥을 사 먹는데, 유독 이모님들은 아직도 직접 요리를 해서 드신다. 덕분에 나는 주변 식당이 문을 닫는 명절에도 굶지 않고 이모님들이 주시는 양푼이 비빔밥과 탕국을 맛볼 수 있었다. 이모님들은 역무실에 자주 떡이나 과일을 나눠 주시기도 했다. 물론 역무원들이 홀랑 받아먹기만 하고 입을 닦는 건 아니다. 요즘에는 많이 사라졌지만 명절이면 직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이모님들을 위한 작은 선물을 사기도 하고, 역무실에 간식거리가 들어오면 으레 이모님들과 함께 나눴다. 연초에 이모님들의 연말정산은 역무원들의 차지였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사용법을 헤매실 때는 젊은 역무원들이 도와드리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정말 이모 같았던 이모님들이 이제는 '환경사'라는 정식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얼마 전 협력업체의 계약직에서 자회사의 정규직이 되면서부터다. 회사에서 환경사라는 호칭을 사용하라는 지시를 내림으로써 이모님은 공식적으로 환경사님이 되었다. 이제 공기업 자회사의 어엿한 정규직 직원이니 정당한 호칭으로 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청에 하청에 하청을 주면서 줄었던 급여도 정규직이 되면서 제 자리를 찾았고, 복지도 한층 나아졌다고 한다. 당장 유니폼부터가 전보다 질이 좋아진 게 눈에 보인다. 하지만 벌써부터 심야반 환경사님들을 시작으로, 각 역의 인원을 한 명 한 명 줄이는 걸 보니 정규직 환경사님들의 근무환경도 마냥 꽃길일 것 같지만은 않아 씁쓸하다.


 사실 환경사님이라는 호칭에는 이모님만큼의 따스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 또한 환경사님에게 더 이상 작은 두나가 아닌 대리님이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직장동료에게 아저씨, 아가씨로 부르지 않는 세상에서 이모님만은 이모님으로 남아 달라고 떼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모님이라는 호칭이 주는 다정함과 친근함은 사라졌지만, 한층 더 전문적인 느낌이 드는 환경사라는 호칭도 나는 마음에 든다. 이제는 엄마 같은 푸근함으로, 이모 같은 다정함으로 인식되지 말고 어엿한 직장인으로 평가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직장에서조차 엄마로, 이모로 존재했던 여성 노동자들이 이제는 이모가 아닌 진정한 환경사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직도 "아이고, 작은 두나 왔네." 라는 따뜻한 목소리가 귀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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