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둘이서
여행 중에는 글도 쓰지 않고
그냥 여행에 충실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여유로운 여행에선
글도 쓰고 생각도 하고
그럴 수 있겠지만
애초에 아직까지 나에게 여행이란
여러 곳을 보면서 다니는 행군과도 같은 여행이었다
특히 여러 곳을 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와의 여행은 언제나 그래 왔다
덕분에 나도 많은 것을 경험하고 보고 듣는
그런 여행이 되어왔다
이제 마흔 중반을 넘기면서
처음으로 다리가 아프고
노안이 오는 듯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쉬는 여행이 좋겠구나
느끼게 되는 터닝포인트 같은 여행이 되었고
앞으로는 그런 편안한 여행을 기대하게 된다
지난 일주일간
부산, 대전, 서울을 다녀왔다
3년 만의 외출이었다
아이가 그토록 가보고 싶다는 곳과
엄마로서 추천하고 싶은 장소 몇 곳을 정하고
여행을 시작했다
롯데월드 이케아 송정 죽도공원 용궁사 아쿠아리움 해운대
국립중앙과학관 성심당 교보문고 영풍문고 롯데백화점
현대미술관 뮤지컬 공연(빨래) 마로니에 공원
서울대 청와대 남산타워 종로 인사동
부산은 거의 30년 만에 가본 곳이었고
대전도 7년 만에
서울은 3년 만이었다
코로나로 제주 토박이인 나로서는 타지 가는 것이 대단한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는데,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직장인으로서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해서 다녀오려니 최근 3년은 더욱 다니기 힘들었었다. 이번에 역시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떠나기 전날까지도 가네 못 가네 하다가 들뜨고 설레 하는 아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용기를 내고 큰맘 먹고 함께 떠났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비상약도 챙기고 숙박도 하루하루 전날 정하면서 다녔는데 계획 없이 다니는 것도 묘한 재미가 있었다. 어렵지 않게 숙소도 상황에 맞게 그날 일정에 따라 정했고 내려오는 비행기표도 오기 전날 티켓팅을 했다. 전날 예약하면 비쌀 것 같았는데 비쌀 것도 감안하고 전날 다니면서 예약하기로 한 것이었는데 의외로 하루하루 싸게 숙박을 했다. 대신 전날이나 당일 예약으로 환불이 안 되는 조건이긴 했는데 이런 경우는 당연히 환불이 불가여야 한다고 생각을 했던 터였다.
중간에 한 번은 아이랑 크게 싸웠다.
서울에 도착한 날 비가 내렸는데, 나는 다리도 아프고 지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누워 있는 엄마 모습에 다니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지 아이가 짜증을 좀 내기 시작했다. 그 짜증을 받아주지 못하고 같이 화를 내었다. 아이가 자기 생각만 하는 것 같아 아이에게 예의를 가르쳐줘야겠다 싶어서 숙박한 호텔에서 언성을 높였는데 아이가 수긍하지 않았고 말하다 보니 아이에게 '엄마는 이번 여행에서부터 이런 여행이 아니라 쉬는 여행이 좋다'는 말을 이상하게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로 표현이 되어버렸던 것 같다. 다 기억은 안 나지만 어쨌거나 결론은 이런 식으로 짜증을 내면 여행하지 않고 집으로 가자면서 극단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아이는 속상해서 엉엉 울었고 잠시 후 대화로 풀어 좀 해결을 해서 다시 광화문 교보문고로 가긴 했지만 여전히 아이의 체력을 따라가는 건 표현을 끝까지 못했지만 솔직히 힘들었다. 힘들어질 때는 점점 내가 말이 없어진다.
그리고 일주일간 열심히 다니고 무사히 별일 없이 즐겁게 집으로 돌아왔다. 난 집으로 오는 길 매우 행복했다. 아이는 너무 아쉬워했다. 바람 한 점이 없어 비행기도 흔들림 없이 순항했고 착륙도 정말 부드러웠다. 왜 나이가 들면 집이 더 좋아지는 걸까? 혼자 생각해봤다. 20대, 30대까지만 해도 화려한 도시가 좋고 다니는 게 좋고 신났는데... 마흔 중반이 되는 요즘은 특히 이번 여행을 통해서는 한적한 곳에서 앉아 풍경을 보고 사색하거나 글을 읽거나 조용히 앉아 뭔가 하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가끔 또 여행을 떠나고 싶겠지? 물론!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이 들지는 않지만, 다시 일상에 있다 보면 어디론가 가고 싶은 곳이 생겨나기도 할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정말이지 터닝 포인트였다. 시력이 0.7 정도로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닌데 노안이 오고 있는지 이번 여행에서 안경을 끼고 가까이 있는 글자를 보니 잘 보이지 않아서 안경도 위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보게 되고, 옆으로 메는 보조 가방을 들지 않으니 신용카드도 두 번 잃어버려서 분실 신고를 했다. 자동 이체되는 것이 있었던지로 새로 발급받아서 이곳저곳 전화할 생각 하니 까마득했다. 하나는 재발급을 바로 신청했고 하나는 분실신고만 했는데.. 아뿔싸 결국 두 장 모두 하나는 캐리어 안 바지 주머니에 하나는 기념품을 산 비닐봉지 안에서 나왔다. 사실 분실 신고하니까 바로 기억이 났다.
이렇게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실수도 했다. 아마 3년 동안 어디를 다녀본 경험이 없어 "여행의 감"을 잃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많은 일이 있었던 여행을 하나씩 생각날 때마다 풀어보려고 한다. 직장일로 한 달 살기가 되지는 않지만 용기를 내고 일주일만이라도 다녀올 수 있었음에 긍정적인 마음으로 감사해해 본다. 다닐 수 있을 때 다닐 수 있다는 것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 대단한 일이 될 수 있음을 느꼈다. 마스크를 벗을 날이 지금으로선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또 집에만 있을 수 없으니, 인간도 본능적으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자유롭고 싶은 동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