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표정이 훤히 드러나면 입을 수 있는 매력 디버프
금융권 금수저와 정해인
논지 전개를 위해 실제로 있었던 상황들을 부분 언급한다.
전여친 미주(가명)와 같은 모임에 3대 500은 치게 생긴, 초면에 내게 호의적인 고마운 형님이 있었다. 첫 모임인데 여자들이 다 먼저 가서 두 테이블 다 죽어가는 상황이라, 내가 분위기 살려보려고 영화관에서 연락처를 주고받은 사람과 조만간 만날 썰을 풀었다. 이분이 내게 "멘트를 잘 날려서 성사된 거라 생각하죠? 그런 것도 있는데, 잘생겨서 그래요"라고 했다. 나중에 갠톡을 주시더니 소개팅을 주선해 주겠다고 했다. 언제 한번은 미주도 있는 자리에서 내게 만화에 나올 너드남이라고 했다.
나중에 다같이 만났을 때, 이 형님이 미주가 주선해준 소개팅에서 에프터로 이어지지 않은 얘기를 했다. 파하고 나서 미주가 "승현(가명)님은 말이나 행동이 여성스러워. 그 언니와 이어지지 않은 이유일 걸"이라고 했다. 당시 난 3대 500은 칠 걸걸한 남자가 무슨 여자같다는 건지 이해를 못했다.
그런데 내가 미주와 헤어지고 한참 후에 승현 형님이 블로그에 "예전에 사귀던 여자에게 표정에서 감정이 너무 투명하게 보여서 되려 불편하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회고한 걸 봤다. 그제야 미주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미주가 내게는 얼굴만 봐선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종종 말했다. 얘가 까다로운 면도 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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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표정 이슈는 '외고 남자 기피' '외상금' 현상과 닿아 있다고 느낀 일화가 있었다. 별로 안 친한 남자 셋이 모인 적이 있는데, 기훈(가명)이가 내게 어떤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호진(가명)이가 그 질문이 나를 곤란하게 할 거라 생각했는지 본인이 가로막고 그 문답을 무마하려 했다. 그래서 나는 호진이가 배려심이 과한 친구인가 싶었다. 이따가 내가 호진이에게 "예전에 우리가 ~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호진이는 이 언급 자체가 나에게 별로 좋은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또 그 말을 무마하려 했다.
시간이 좀 흘러서 또 호진이와 다른 멤버 몇명과 만난 적 있는데, 내가 곧 ooooo를 할 것임을 밝혔다. 그러자 호진이는 그 ooooo를 아니꼬워하는 특유의 표정을 또 역력히 드러내며, 그럴 수 있다느니 존중을 한다느니 하는 끝맺음을 했다.
그리고 각각의 대목마다 호진이 특유의 떨떠름해하고 눈치 보는 듯한 표정이 있었다. 최근 들어 든 생각이지만 나는 저게 무슨 배려가 아니라, 자기가 모멸감 감수성이 너무 투철하니까 다른 사람의 곤란함까지 지레 예단하고 반감을 제대로 숨기지도 드러내지도 못하는 '메이저 외고 일부 남자들 계집애같다'의 전형이라 본다. 도덕적으로 비난할 특성은 당연히 아니지만 안좋은 인상을 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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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역력히 드러나는 걸 여자들이 안좋아하는 이유는 그게 '약한 지위'의 증거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사가 부하를 헤아릴지언정 눈치는 보지 마라는 말이 있다(사실은 만화 <블리치> 대사다..). 남 눈치를 살필 때 으레 나오는 표정을 자주 짓는 사람은 리더-즉 <알파메일>과 거리가 멀다.
다만 웃을 만 한 상황에서 환하게 웃는다거나 자신감 있는 미소를 보인다거나 하는 표정은 오히려 매력포인트가 된다. 내 주변에 그런 친구가 있다. 또한 정해인 류의 '천진난만해 보이면서도 믿는 구석이 있는 해맑은 미소년' 류와 '금융권 종사 금수저 특유의 여유만만하고 은근 깔보는 표정'을 좋아하는 여자들이 꽤 많다.
은근히 마이너스 요소가 되는 표정을 더 소개하자면 대표적으로 '골똘히 숙고하는 듯한 인상 쓰는 표정'이 있다. 진짜 샤프하게 잘생길 게 아니면 캐퍼시티 높아 보이는 남자에 끌리는 여자들이 생각보다 많음을 최근에 알았다. 그리고 만만해 보이지 않기 위해 찌푸리는 '센 척 하는' 인상들도 당연히 안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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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쭉 정리한 걸 보면 지으면 안되는 표정이 너무 많다고 느낄 법도 하다. 사람이 불편한 타인들과 있을 때 방어적인 마음이 조금은 들게 마련이고, 이너 서클에 들어가기 위해 "나는 너에게 호의적이고 니가 하는 말을 이해한다"라는 표정을 지어야 하는 순간이 많다. 한국사회에서 저런 표정 한 번 안 짓고 살려면 진짜 강하거나, 아예 사회생활을 포기한 세월이 길었거나, 독보적인 강점이 있어서 굳이 남 비위를 맞춰주지 않아도 이너서클에 낄 수 있어야 한다.
이직이 잘 일어나지 않고 비-능력주의적인 업계에 종사하면 인상이 더러워지는 원인이, 일이 잘되는 것보다 내부 피어 프레져의 표적이 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공무원 사회에서는 알약을 못먹어서 가루약을 먹는 것만으로도 직장 동료들 입방아에 오를까봐 전전긍긍해야 한다. 실제로 가루약 먹는 걸로 뒷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그런 것까지 획일화된 기준에 맞출지를 고민할 정도로 피어 프레져가 강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