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숨은 K-Pop 명곡 II, 백예순

이대로가 좋을 뿐야, 김수철(feat. 신해철) - 2002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10월 말,
그리워지는 것들!

요즘 불평이 더 늘었다.


나이가 들면 밴댕이 속알딱지처럼 쪼꼬만 했던 내 아량과 그릇도 좀 넓어지고 또 커질 거란 생각은 그저 혼자만의 착각이자 바램이었던 것 같다.


불과 뭐 이리 덥냐고 난리 브루스를 칠 땐 또 언제고, 때 늦은 장마와도 같이 황금 휴일 내내 내리던 비에도 인상을 팍팍 찌푸리더니, 어느새 영하로 까지 뚝딱 떨어진 기온엔 두꺼운 외투를 꺼내며 속으로 나도 모르게 거친 비속어가 튀어나왔다.


'아놔, 미친 날씨, 진짜!'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4일 오후 01_48_51.png


어쩌면 날씨 때문 만은 아닐 테다. 그냥 내 인생의 수많은 생채기들이 하나둘씩 모여 이젠 걷잡을 수 없이 진격의 거인 마냥 커져버린, 정체를 알 수 없는 불만 덩어리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다.


이럴 땐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라보자. 언젠가부터 틀어져 버린 시계 초침을 제대로 맞추는 것도 좋다. 여름 내내 아무 데나 던져두었던 반팔 티셔츠를 정리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잊고 살고 있었던 시간에 대한 정체성을 상기시켜 보자.


'오늘이 며칠이었더라?'

'무슨 요일이지?'

'지금이 10월 말이라고??'


사실 이 계절이 올 때면, 창문틈 사이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한참 동안 묵혀두어 잊고 살았던 시간의 서랍들이 하나둘씩 스르르 열리기 시작하고 꼬깃꼬깃 접어놓았던 그리움의 조각들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된다.


이런 기억과 추억 소환의 마법들은 음악을 통해서 단단하고 또 묵직하게 전달되기도 하는데, 무심코 길을 걷다 듣게 된 첫 음에, 우리 모두는 어느새 그때 그 시절, 어느 익숙한 풍경 속 사물 하나하나가 떠올라 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리만큼 가을의 노래는 과거형으로만 들리는 것만 같다.


가을에 떠나버린,
그리운 그 이름!


e4512c4683654a0a9357eec4bebb6c06.jpg
uzn21IeDLOV0RRUUG-C80L2r4yPg5_APozKjDCBpteJ9-V4z5_WLE1FSPBzO61nVqF5Ob1-8cNoTRATvCrkJ3A.png
img.png
20131021000113_0.jpg
좌측부터 시계 방향으로 신해철(10/27), 김성재(11/20), 김현식, 유재하(11/1)


그리고, 흐느적거리는 멜로디의 물결 마디마디를 따라 나의 머릿속을 서서히 채우고 마는 그리운 그 이름들.


유재하, 김현식, 김성재 그리고 신해철.


유독 이 계절에 많이 하늘로 떠나버린 K-Pop 레전드들이 남긴 그 멜로디가 10월의 바람을 타고 오면, 희미했던 그 얼굴들은 조금씩 선명해지고, 손에 닿을 듯한 저 너머에서 담백히 우리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왜 그렇게 서둘러야 했는지... 조금만 우리 곁에 더 있어줄 수는 없었는지...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 중년이라 불려도 아무렇지 않은 요즘, 부쩍 늘어난 주름사이로 느끼는 10월의 그리움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 일이 아니라, 어쩌면 그 빈자리를 예쁘게 정리하는 일에 가깝다.


그들의 자리만큼은 정성껏 남겨 두는 것.

요즘같이 잠시 잊고 살았던 그 자리를 지나칠 때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기, 있었구나!


104130_1_f.jpg
104130_1_b.jpg
2002년에 발매된 김수철의 Pops & Rock의 앨범 표지


오늘 소개할 백예순번째 숨은 명곡은 2002년에 발매된 김수철의 'Pops & Rock' 앨범에 실린 김수철 작사/작곡/편곡, 신해철이 노래의 '이대로가 좋을 뿐야'라는 곡으로 정규 음반으로는 '팔만대장경' 이후 5년 만이자, 가요 독집 음반으로는 12년 만의 앨범이다.


https://brunch.co.kr/@bynue/197


'Pops & Rock' 앨범은 김수철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해도 될 '기타를 메고 껑충껑충 뛰는' 사진이 앨범 전면에 실려있어, 그의 기분 좋은 장난스러움이 앨범 속 노래를 듣지 않아도 고스란히 느껴져 흐뭇하기만 하다.


이 앨범은 박미경, 신해철, 장혜진, 이상은 등 본 숨은 명곡에서도 단골로 등장한 여러 후배 뮤지션들의 참여로 다양한 음악적 협업을 시도한 음반이기도 한데, 그중에서도 피하려 해도 내 눈에 띄는 한 사람, 바로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신해철'이 내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마왕, 신해철


오늘은 유독 그가 그립다.


https://brunch.co.kr/@bynue/84

https://brunch.co.kr/@bynue/156


하지만, 먹먹해 왔던 그 가슴은 단언컨대 이 노래의 Play 버튼을 누르고 나면 180도 달라질 것이다.


특별히 설명할 것도 없이 처음부터 가슴을 통렬히 자극하는 기타 리프, 드럼 베이스와 하이헷 연주에 세상 차분하고 조숙한 그 어떤 이라도 어깨와 머리를 흥겨운 리듬에 맞춰 흔들게 되는 마법을 경험할 테니!


그리고 이어지는 거장의 묵직한 기타 솔로와 베이스,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오고야 마는 익숙한 마왕, 그대의 목소리! 진심의 미간은 찌푸려지고, 거장 김수철과 신해철이 선사하는 찐 K-Rock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이 노래가 정말 대단한 이유는, 김수철이 그토록 염원하던 국악의 요소들이 군데군데 녹아들어 가 있어서, 자세히 귀 기울여 들어보다 보면 노래 중 어느 부분에서는 마치 오래전 민요나 타령에서 나올법한 멜로디와 구성들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원래 Rock과의 한 몸이었던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고 이질적이지 않아서 그의 천재성에 다시 한번 감탄의 긴 탄식을 내뱉지 않을 수 없다.


가끔은 지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어느 순간,

나와 함께 평생을 함께 의지하며 살아왔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이 계절에 많이 힘들고 지치는 우리들에게 툭 던지는 마왕의 한 마디,


서로 그리워하는데
뭐가 필요해?




이대로가 좋을 뿐야

김수철(feat. 신해철), Pops & Rock - 2002


작사 : 김수철

작곡 : 김수철

편곡 : 김수철

노래 : 신해철


그대와 함께 있는 지금의 이대로가

난 그저 좋아. 좋아하고 있을 뿐이야.

이유는 없어. 사랑하고 있을 뿐이야.


사랑하는데 뭐가 필요해. 마음만 있으면 돼.

단지 그대가 언제나 내 곁에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서로 사랑하는 마음 그게 전부야.

차도 집도 필요 없어. 오직 그대와


나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면 돼

서로 그리워하는데 뭐가 필요해

사랑을 너무나 어렵게 생각하지 마


보고 싶어 안달이나. 그대 원해도

기다림이 필요 없는 확실한 사랑.


같이 있는 것만이라도 나는 좋아

아무것도 필요 없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우리 사랑 이대로가 좋을 뿐이야.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8LSZlnthlqo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숨은 K-Pop 명곡 II, 백쉰아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