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깊어가고 채소는...

주말농장 이야기

by 하민영

이번 주도 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를 달려갔다. 몇 주째 구름 낀 하늘이다. 달리는 길가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며 가을 정취를 더하고 있다. 봄에는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연두색 수채화로 물들였던 산이 무성한 초록이 우거진 여름을 지났다. 멀리 보이는 산은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휴대폰 사진에서 구글이 보내오는 추억의 사진이 튀어 오른다. 몇 년 전에 찍은 주말농장 사진이다. 무성한 무와 배추 사진이다. 예년과 비교하면 올해 가을 농사는 형편없어 보인다. 그래도 도시 농부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야지.

우리 밭의 오른쪽에 밭은 도시 농부가 농사를 포기했나보다. 잡초만이 자라고 있다. 건너편 농부는 일이 주 전에서야 씨앗을 뿌렸다. 이제 겨우 새싹이 자라고 있다. 몇몇 잘 키운 농부의 밭에서는 무와 배추를 비롯한 가을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우리 밭의 채소는 그저그러하다.


지난주 뿌린 해조와 막걸리 영양제가 우리 채소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었을지 기대가 된다. 지난 주 영양제를 뿌리고 몇시간 되지 않아서 비가 왔겠지만 그래도 폭풍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유튜버의 말을 믿고 싶었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긴다.

어머! 밭에 채소를 만나기 전 도랑 입구에 거미가 먼저 집을 지었네. 오늘의 손님은 거미인가.

“거미야 여기 주인이 왔단다. 헤헤헤”

채소를 보며 말을 건넨다.

“어때? 과연 폭풍 성장했나요?”

“글쎄요. 영양제 뿌려서 더 자란 건지. 아니면 때가 되어 조금 더 자란 건지 모르겠네.”

“지난주에 비해 조금 더 자라긴 했네. 영양제 영향은 아닌 것 같지.”

“요거라도 잘 키워보자고요~~~”


작지만 푸르게 자라는 배추가 있는가 하면 반절은 녹아내린 배추도 있고, 완전히 죽은 배추도 있다. 무도 옮겨심은 무는 노랗게 타들어간 것이 반절이다. 이쯤 되면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키울것은 키워보자고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한다. 그런데도 자꾸 포기할 줄 모른다.


쪽파는 푸르름을 자랑하며 잘 자라고 있다. 잘 키워서 파김치 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시금치와 청갓은 기대 수준 이하다. 어쩔 수 없지. 올해는 주말농장 채소가 안되는 해이다.


이번에도 영양제를 준비했다. 막걸리와 설탕을 섞어 하룻밤을 발효시킨 막걸리 영양제에 해조엑기스를 섞어서 영양제를 만들었다. 지난주에 부족했던 것 같아서 이번에는 양을 두배로 늘렸다. 4리터 정도의 영양제를 만들었다.

지나가던 이웃 농부 아주머니가 물었다.

“그것 뭐에요? 농약이에요?”

“아니요. 막걸리에요.”

“우리 배추는 벌레가 다 먹었어요.”

우리 채소는 다행히 벌레는 먹지 않았다. 같은 밭인데 어째 그분의 채소는 벌레가 먹었을꼬.


여기 이웃 농부의 배추와 무처럼 우리 밭의 배추와 무도 알차게 자라기를 기대하면서 정성껏 영양제를 주었다. 머지않아 우리 것도 요렇게 크고 튼실한 배추와 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남편이 영양제를 주는 동안 나는 풀을 뽑았다. 김매기를 마친 후엔 농사가 잘된 이웃 농부의 채소를 보면서 깊은 깨달음이 하나 왔다. 가만히 보니 잘된 농부 밭은 땅을 파준 것이 보였다.

“잘된 밭은 땅을 골라주었네. 나도 땅을 좀 파줘야겠다.”

“그래 땅이 숨 쉬라고 해 줘봐.”

"그래 잘하는 사람 보고 배워야지."

주말농장에서 이웃은 가장 좋은 스승이다. 내가 스승이 되기도 하고 이웃이 스승이 되기도 한다.

김매기를 하면서 저절로 땅을 파헤치게 되는데 이번엔 잡초조차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그러니 일부러 땅을 파헤쳐줘야 했다.


땅을 파는 동안 또 다른 거미를 만났다. 하얀 등에 검은 줄무늬 거미. 얼룩말 거미인건가?

밭의 한 켠에 자리 잡은 고구마도 아직 건재하다.


몇 번 솎음을 한 무 중 일부가 가깝게 자라고 있었다. 몇 개를 뽑아 주었다. 엄지발가락 굵기 정도 무도 있고, 새끼손가락 굵기정도 무도 있다. 이거라도 가지고 가서 무 겉절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금새 침이 고인다.


청갓도 솎음을 했다. 너무 작아서 버릴까 하다가 새싹 채소처럼 먹어보자며 이것도 챙기기로 했다. 청갓의 뿌리는 플라스틱 줄처럼 질겨서 먹을 수 없으니 뿌리는 끊어내고 먹어야 한다.


무는 겉절이를 했고, 청갓은 유자소스를 뿌려 샐러드를 만들었다.

내가 키워 내가 만든 반찬이라니. 건강한 반찬. 맛있는 반찬이다.


농장 한 켠에 자리잡은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었다. 자연은 점점 가을로 깊어가고 있다.



#딸아행복은여기에있단다_하민영

#엄마와딸함께읽기좋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