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꽃을 보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단번에 마음을 훔치는 꽃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을 주는 마법이 숨어있다. 처음 보는 꽃이라면 홀린 듯 빠져든다.
꽃은 긴 자루(5cm) 모양을 하고 있고, 연한 하늘색을 띠고 있다. 십여 개의 꽃이 한 곳에 모여 피었는데 꽃잎과 이파리마다 빗방울이 맺혔다. 비바람을 맞고 굳세게 서서 은구슬을 달고 있다. 난생처음 보는 꽃이다. 긴 꽃자루에 꽃잎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부챗살을 펼쳐놓은 듯도 하고 요괴가 입을 벌리고 있는 듯도 하다. 물고기의 아가미를 닮은 듯도 하다. 누군가는 합창단이 노래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상의 꽃이라고 하기에는 오묘함이 있다.
꽃 이름은 ‘현호색’이다. 네이버 렌즈 검색으로 알아냈다. 현호색은 산록 습지에서 자라는 다년생 식물이다. 키는 20cm 정도 자라고 땅속에 지름이 1~2cm 정도 되는 괴경(감자나 튤립처럼 저장공간이 있는 덩이줄기)이 있다.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가 길며 1~2회 3개씩 갈라진다. 꽃은 긴 꽃대에 꽃자루(2.5cm)가 있으며, 여러 개(5~10개)의 꽃이 어긋나게 붙어서 밑에서부터 피기 시작하는 총상화서(總狀花序)이다. 현호색의 꽃은 4월에 피고 홍자색, 노란색, 하늘색, 흰색 등이 있다. 여느 야생화와 마찬가지로 약으로 쓰인다. 진통. 진경작용, 혈액순환, 자궁수축, 부인병, 타박상에 효과가 있다.
금대령에서 처음 만난 현호색
현호색을 만난 것은 강원도 대덕산에서다. 대덕산은 해발 1,807.1m로 태백시에 있는 산이다. 강한 바람이 불고 비까지 내리던 날이었다. 초속 몇 미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모자가 날아가고 바람에 비옷이 마구 나부끼며 사라라락 소리를 냈다. 빗줄기는 거세지는 않았지만 강한 바람에 비가 들이치는 듯했다.
지난 4월 친구와 함께 금대령 야생화 트레킹을 떠났다. 여행사를 통해서 떠난 패키지여행이었다. 산행은 용연동굴(해발 920미터,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국내 유일 건식동굴)을 관람(왕복 약 1.7km, 30분~1시간 소요) 한 후 시작했다. 트레킹 코스는 두문동재(해발 1,268m)에서 시작해서 금대봉분지, 고목나무서식지, 분주령과 대덕산을 지나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를 가는 길이었다. 거리는 10.5km로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전국적으로 비가 예보된 날이라 산행을 하는 사람은 우리 팀(20여 명)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이런 날씨에 산행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서 힘들 것 같은 산행이었다.
날씨를 떠나서 산행을 계획할 때부터 걱정이 많았다. 결혼 이후 가족을 떠나 여행하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추위를 많이 타서 기온변화에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고, 체력이 약하여 쉽게 힘들어하는지라 민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아가씨 때는 체력도 좋고 산행도 곧잘 했는데 세월과 함께 많이 약해졌다. 언제나 나를 보호해 줄 남편이 곁에 없다는 것에 많이 긴장하며 떠난 여행이었다.
걱정으로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마음만은 들떴다. 비가 몰아치고 바람이 불고 가족을 떠난 여행이었지만 자연과 마주한 순간 모든 불안감을 사라졌다.
대덕산은 긴 겨울잠에서 이제 막 깨기 시작한 연두색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산의 풍경이다. 산자락에 내려앉은 안개와 오솔길을 따라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무,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신선한 공기는 한껏 마음을 들뜨게 했다.
안개가 짙어 바로 앞에서 걷는 사람만 보이거나 겨우 몇 걸음 앞만 내다보며 걷는 걸음이 구름 위를 걷는 듯도 했다. 마치 신선이 되어 산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누군가 우리를 신비스러운 영역으로 인도하는 듯했다. 산의 기운이 우리를 산속으로 빨려들도록 하는 듯한 신령스러움. 비바람 불고 안개가 낀 날씨가 사람을 신묘스럽게 만들었다.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자연환경에 가슴속 온갖 걱정은 사라졌다. 우리 팀밖에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자연이 전하는 특혜를 받은 것 같았다.
비바람 몰아치는 운무 가득한 대덕산 오솔길
산행 초입부터 만난 야생화는 마음을 한껏 들뜨게 했다. 현호색뿐만 아니라 얼레지, 피나물, 참개별꽃, 왜 미나리아제비, 산괭이눈, 괴불주머니 등등 수많은 야생화들이 우리의 산행을 반겼다. 산행을 하는 동안 야생화의 향연은 계속되었다. 비바람과 깊고 깊은 산중에도 꿋꿋하게 피어 있는 모습에 감동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여리디 여린 꽃들이 펼치는 다양한 모습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보는 듯하다. 숲 속을 걷는 내내 나무와 꽃, 비와 바람, 안개, 꽃, 산이 펼치는 연주에 깊이 빨려 들었다.
곳곳에서 만난 야생화 군락지는 산행의 재미를 더했다. 특히 현호색과 산괭이눈 군락지는 산속에 파란색 노란색 물감을 흩뿌린 듯했다. 고목나무 아래 습지에 가득 피었다. 얼핏 보면 이끼 같은데 꽃이다. 고목이 꽃들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 같다. 자연이 만든 신비이다.
금대령 야생화(얼레지,피나물,참개별꽃)
금대령 야생화(왜미나리아제비,산괭이눈,괴불주머니)
현호색, 산괭이눈 군락지
깊은 산속 맑은 공기, 아름드리나무, 맑고 상쾌한 공기,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은 어느 산에서나 만날 수 있겠지만 안개 자욱한 빗속 산행은 행운이 아니고서는 만나기 힘들 것이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물줄기는 이곳에 와야만 만날 수 있다. 금대봉분지에서 나뭇잎이 바람에 쓰러지듯 울음을 운다. 나뭇잎이 움직이며 펼치는 숲의 모습은 산신령이 도포자락 휘날리며 나는 듯하다. 스스스슥 사라라락 흐르르륵 쉬시시시식 ~~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와 산신령의 도포자락이 보이는 듯한 금대봉분지
은구슬 가득 담은 현호색은 산신령을 만났다는 증거다. 금대령의 산신령님 선물을 잊지 않기 위해 소박하게 그림으로 남겼다.
글력이 부족하여 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시인의 언어로 대신한다. 현호색 그 이름을 알고, 색깔을 알고, 모양까지 알고 나니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었다. 시인(나태주/ 풀꽃 2)은 어떻게 이런 비밀을 알게 되었을까?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현호색玄胡索 정보> : 자료출처 네이버(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학명 : Corydalis remota
속씨식물문-쌍떡잎식물강-양귀비목-현호색과
분포지역 : 한국, 중국 동북부, 시베리아
서식장소/자생지 : 산록의 습기가 있는 곳, 다년초
크기 : 20cm 정도
개화시기 : 4월~5월
玄 현 : 검다, 붉다, 오묘하다, 신묘하다, 심오하다
胡 호 : 되호, 오랑캐의 이름, 수염,
索 색 : 찾다, 탐구하다, 청구하다, 요구하다
한자 풀이로만 보면 현호색은 오묘하고 신묘한 되(곡식을 헤아리는 그릇)를 찾는 꽃인 것 같다. 산신령의 꽃이라고 해야겠다. 이것은 필자의 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