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파티마에서 메리다까지 4시간여를 달렸다. 스페인 여행 8일 차 여행은오전 내내 이동했다. 4시간여를 달려 메리다에서 마드리드까지 갔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를 즐길 예정이다. 버스 유리창에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리 팀은 날씨 요정이 많아서인지 관광 중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긴 시간 이동할 때 언제나처럼 가이드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오늘 관람하게 될 프라도 미술관, 미요르 광장, 솔 광장에 대해 설명해 줬다. 가이드님의 설명은 톡에 보내온 사진과 함께 이어지는데 귀에 쏙쏙 들어온다. 궁중화가 고야와 관련한 영화(고야의 유령, 2008) 한 편도 보았다. 영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화가 고야의 모델이자 뮤즈였던 이네스가 부당한 누명을 쓰고 종교재판소에 갇힌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버지 토마스는 딸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구하지 못한다. 토마스의 부탁을 받은 신부 로렌즈는 이네스를 구해주기보다 겁탈한다. 토마스는 그의 의해 강요받은 로렌즈의 고해문서를 종교재판소에 접수한다. 결국 로렌스는 교회로부터 신부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스페인에서 추방된다. 이네스는 감옥에서 딸을 낳았지만 빼앗기고 20년 후에야 감옥에서 나오게 된다. 20년 후 로렌즈는 나폴레옹 정부의 지휘관이 되어 스페인에 오게 된다. 이네스를 찾아 나섰던 고야는 감옥에서 나온 이네스를 만나고, 로렌즈에게 이네스와 그녀의 딸의 존재를 알려준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고 이야기 전개도 탄탄하고 재밌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한 영화다.
점심때 마드리드에 도착해서 식사를 했다.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다. 수도답게 사람도 많다. 한식집도 있다. 점심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집에서 먹었다. 여행 중 한식은 처음 먹었다. 반갑다 반가워. 소불고기에 된장찌개 쌈과 김치, 감자볶음, 양파초절임. 맛있다 맛있어.
마드리드 거리 풍경/ 프라도미술관 근처 한식집
배불리 점심을 먹고 프라도 미술관으로 갔다.
프라도 미술관 Prado National Museum은 카를로스 3세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해서 카를로스 4세, 페르난도 7세에 의해 완성(1819년 개관)되었다. 15세기 이후 스페인 왕실에서 수집한 작품 8,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유럽의 다른 미술관과 다른 점은 왕이 수집한 작품들, 왕실 화가 그림, 왕실 소유의 건물에 걸려 있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스페인 회화의 3대 화가 엘 그레코, 고야,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비롯한 16~17세기 화가의 작품, 네덜란드 화가 플랑드르 파 작품,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 보티첼리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프라도 미술관은 전시실이 있는 19세기 본관 건물과 미술관 뒤편 산 헤로니모 성당 쪽으로 개축한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티켓팅을 하고 검문 하는 검색대를 통과하어미술관으로 입성했다. 미술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고 가이드님의 설명도 금지되어 있다. 가이드님이 버스 안에서 사진으로 설명해 주었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1층과 2층에서 관람을 했다. 가이드님은 그림 앞에서 속삭이듯 입을 벙긋거리며 들리지 않는 말소리로 아주 잠깐 이야기하는 해설을 해주었다. 우리는 그냥 느낌으로 알아들었다. 자유 관람 시간에는 이외에 작품을 보았다.
미술을 잘 모르지만 왕가의 작품을 보면서 300~400년 전의 사람들과 만났다. 주로 전시물은 왕과 왕비, 그의 가족, 성경에 기초 한 작품 등이 대부분이었다. 왕가의 모습을 보니 화려한 그들의 의상이 먼저 들어왔다. 금박과 은장식, 공단이나 실크로 만든 레이스와 드레스, 왕관이나 견장, 장신구 등을 착용한 그들은 온화하고 얼굴은 하얀 분을 바른 듯 지나치게 하얗다. 동성 간 혼인으로 튀어나온 주걱턱과 주걱턱을 가리기 위해 착용했던 프릴 상의가 눈에 띈다. 화려했던 왕가의 모습에 감동은 부족한 것 같다. 가이드님의 설명을 듣고 보았던 몇몇의 그림은 달리 보였다. 예술가는 자신만의 색깔로 자신의 철학을 살려냈을 때 훌륭한 화가로서 인정받는 것 같다. 고야의 작품 두 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고야는 <옷을 입은 마하>, <옷을 벗은 마하> 작품을 그렸다. <옷을 벗은 마하>는 누두화는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그림이었다. 요즘이야 누드화는 흔히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신 이외에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누두화는 금지되었다. 아이러니다. 덕분에 고야는 종교재판소에 서게 된다. 누드화 속의 마하의 모습은 정면을 향하고 있고 성기는 정 중앙에 있다. 손도 머리 위로 추켜올려져 있으며 눈은 당당히 똑바로 앞을 향해 있다. 고야는 누두화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신 또는 남성의 시선이 아닌 소외받고 천시받았던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당당히 세상을 살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했을까.
<카를로스 4세 가족의 초상> 그림도 유명한데, 이 그림에서는 가족들 뒤에 있는 고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울에 비친 가족의 모습처럼 그렸다. 왕비를 중앙에 배치하고 왕과 다른 사람들은 주변에 배치했다. 문란한 왕비와 식솔들, 무능한 왕, 무표정속에 드러나는 우매함과 멍청함을 은근히 표현했다고 한다. 국왕부부와 가족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린 듯하나 어수선했던 정치 상황에서 왕은 가까스로 왕가를 추스르는 중이었다. 후에 카를로스 4세는 아들 페르난도 7세에 의해 강제로 폐위되었으며 페르난도 7세도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에 의해 왕위를 잃었다고 한다.
설명을 안 들었다면 화려한 드레스만 보았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여행 중에 다시 깨닫는다.
프라도 미술관 티켓/ 미술관 입구
프라도 미술관 앞
옷을 입은 마야/ 옷을 벗은 마야
카를로스 4세 가족의 초상
프라도 미술관은 연말이라 2시에 문을 닫았다. 뒤늦게 도착한 한국인 다른 관광객은 입장을 하지 못했다. 전시실이나 성당을 방문할 때는 폐장 시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프라도 미술관을 나와 마드리드 궁전 Royal Palace of Madrid을 보았다. 스페인 국왕의 공식 거처이자 왕실의 상징. '오리엔테 궁전'이라고도 불린다. 원래 9세기 무슬림의 요새였다가 합스부르크 왕가가 궁전으로 사용했다. 펠리페 5세가 베르사유 궁전과 비슷한 왕궁을 건립하라고 하여 세워졌다. 원래 왕의 거쳐이지만 지금은 공식행사나 중요한 의식이 있을 때만 사용한다. 15,000제곱미터의 크기에 2,800여 개의 방이 있으며 그중 50개의 방은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대리석이 멀리서 보아도 화려하다. 내부는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으로 되어 있으며 로열 컬렉션으로 왕의 갑옷과 칼등의 등의 무기고가 있다.
근위대의 열병식이 있다고 하는데 보지 못했다. 문밖에서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마드리드 궁전 맞은편에는 알데무라 성당 Catedral de Nuestra Señora de la Almudena은 일부분만 밖에서 보았다. 알데무라는 아랍어로 성벽을 뜻하는 '알무다이나'에서 유래한다. 성당 안에는 마드리드를 점령한 무슬림에 의해서 파괴될까 봐 성벽에 감추어 두었던 성모상이 300년 후에 발견되었다. 1879년 착공을 시작했지만 100년이 지난 1993년에 완공되었다.
알데무라 성당은 사진을 찍고 지나갔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중에 말을 타고 근위병 복장을 한 경찰이 보였다. 스페인 경찰의 모습이라고 한다.
마드리드 궁전/ 알데무나 성당
궁전 문 안 마드리드 궁전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마요르 광장 Plaza Mayor이다. 1619년 세워진 광장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광장 중 하나다. 중세에 시장으로 사용했고 펠리페 3세 때 주요 행사로 왕의 취임식, 종교의식, 투우경기, 교수형등을 치렀던 장소다. 현재의 모습은 19세기 재건축되었다. 커다란 4층 직사각형 빨간 벽 건물이 광장전체를 둘러싸고 있고 9개의 아치문이 있다. 빨간 벽돌의 건물이 인상적이다. 광장을 둘러싼 1층에는 많은 상점들이 즐비하다. 광장 가운데는 말을 타고 있는 기마상으로 펠리페 3세의 모습이다. 펠리페 3세는 합스부르크 왕조 왕으로 네덜란드와 평화협정을 맺고 잉글랜드 왕국과 관개를 개선했으나 치세는 많지 않다는 평가다.
마요르 광장에서 연말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흑인들이 보자기를 펼쳐놓고 축구복이며 아이들의 장난감을 팔았다. 노점상에서는 우리나라 축제처럼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관광객과 시민, 상인들로 북적거리며 활기를 띠고 있다. 광장 근처에는 유명한 뚜론 가게가 있었다. 론다에서 사지 못했던 뚜론을 샀다.
미요르 광장
마드리드 시내
마요르 광장에서 이동하는 중에 마라톤 대회가 있다며 길을 막은 폴리스라인을 보았다. 마라톤 대회가 열릴 때 우리나라 모습과 같았다. 부지런히 걸어서 마드리드 또 다른 광장 푸에르타 델 솔 광장 Puerta del Sol으로 이동했다.
16세기까지 푸에르타 델 솔(태양의 문)에는 태양의 그림이 성문에 있었다 하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솔광장에는 지방청사(카사 데 코레오스 Casa de Correos)가 있으며 시계가 붙은 탑이 있다. 12월 31일 자정이 되면 이 탑의 종소리를 들으며 시민들이 신년을 맞이한다고 한다. 시청사 앞 바닥에는 킬로미터 제로표시가 되어 있는데 수도인 마드리드에서 스페인 각 지역까지 거리를 계산하는 도로의 시작점이라고 한다. 이곳에 발을 올리면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온다는 속설이 있다. 필자는 표식을 찍지 않아서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광장에는 마드리드를 상징하는 소귀나무와 곰의 조각상이 있다. 예전에는 마드리드에 곰이 자주 출몰했다고 한다. 곰의 뒤꿈치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로 색이 바래있다.
솔광장 중앙에 기마상이 있다. 말을 탄 카를로스 3세의 동상이다. 카를로스 3세는 스페인의 계몽군주로 산업을 발전시키고 수공업자가 공직에 오를 수 있도록 했으며 소피아 미술관과 프라도 미술관을 건설했다. 하수처리 및 가로등을 설치하며 마드리드의 환경개선에도 힘을 썼다고 한다. 쾌 치적을 쌓은 왕인가 보다.
솔광장에는 2023년 마지막 날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드리드의 중심지답게 사방에 상점들은 요란하고 번쩍거렸다. 자유시간이 3시간 넘게 주어져서 쇼핑을 즐겼다. 딸의 축구복을 사고 왕관이 달린 볼펜도 샀다. 남편과 같이 입을 마드리드가 프린팅 되어 있는 티셔츠를 사려다가 너무 허접한 것 같아서 사지 않았다. 스페인의 유명한 의류 매장인 망고와 자라를 둘러보고 백화점 구경을 했다. 망고와 자라는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는 매장이라 필요한 것은 돌아가서 사기로 했다. 결국 우물쭈물 망설이다 커플 티셔츠를 사지 못했다.
날이 어두워짐에 따라 솔광장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어둠을 밝힌 거리는 더 화려해졌다.
솔광장/ 소귀나무와 곰상/ 카를로스 3세 기마상/ 찰스 3세 기마상
마드리드 밤거리/ 레알마드리드 축구복
뚜론과 왕관 볼펜
마드리드 시내를 걸어서 이동하는 중에 날은 어두워졌다. 이동 중에 본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 동상은 인상적이었다. 세계의 어린이가 돈키호테 소설을 읽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돈케호테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정작 세르반테스는 가난한 삶을 살았다고 하니 안타깝다. 세르반테스의 엉뚱한 상상력이 세상을 즐겁게 한 소설 돈키호테. 귀국 후에 보아야 할 책이 한 권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