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여행 7일 차를 맞이했다. 몸의 피로도가 절정을 달했던 여행 4~5일 차를 지나 7일 차가 되니 오히려 몸이 덜 피곤했다. 몸도 여행에 적응을 했나 보다.
7일 차는 포르투갈의 땅끝(호카곶) 까보다로까 Cabo da Roca로 향했다.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약 40km(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다. 우리나라의 해남 땅끝마을을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유럽대륙의 서쪽 땅끝 마을이고 대서양이 시작되는 곳으로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버스에 오르니 오늘도 가이드님의 부지런한 설명이 이어진다.
포르투갈은 커피와 와인, 코르크가 유명하다. 습도가 높아서 코르크나무와 유칼립투스도 잘 자란다. 기념품으로 포르투갈 받침대가 싸고 좋다. 포르투갈은 국경이 인접한 스페인보다는 영국과 친밀하다. 등등. 가까운 사람들끼리 자주 싸우듯 나라끼리도 친하게 지내는 것이 어려운가 보다.
포르투갈 민요 ‘파두 Padu’에 대해 이야기를 더 해줬는데 파두의 세계적인 가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듣고 파두 같다며 번안해서 불러 세계적인 히트를 쳤다고 한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음성으로 파두를 들으니 쓸쓸함이 묻어난다. 창밖으로 보이는 리스본과 포르투갈의 풍경을 보며 까보다로까로 향하는 길이 애수에 젖는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다'
창밖으로 바라본 리스본 전경과 들판
까보다로까에 도착하니 바람이 불고 바닷가 넓은 들이 펼쳐진다. 키 낮은 초록 풀 사이로 노란 꽃이 피어있다. 겨울에도 꽃을 보고 열매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베리아반도 여행의 장점이다.
아침기온 6도~8도. 바람이 불어 스카프가 날리지 않게 단단히 여몄다. 멀리 십자가가 있는 표지석이 보인다. 우측 언덕 위에 하얀 벽에 적색 지붕의 집들이 있고, 빨간 지붕의 등대가 보인다. 옷깃을 여미며 찬바람이 들어차지 않도록 하며 표지석 가까이에 다가간다. 찬 바닷바람이 날리는 표지석 앞에서 기타리스트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바람이 불어 추운데 어찌 노래를 부르는지 파두만큼이나 처량해 보인다.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 없이 바다로 떠난 애인, 남편, 아버지를 기다리는 여인네 같다. 파두는 뱃사람들의 노래라고 하던데 구슬픈 것이 여인의 음성을 닮았다.
여인들은 십자가 표지석 앞에서 언제 돌아올지 기약 없는 남정네들을 기다린다. 남정네들은 대서양 바다에서 거친 파도, 뜨거운 태양과 사투를 벌인다. 바다가 잔잔해질 때면 뱃사공이 뱃머리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 잊지 못할 고향산천, 사랑하는 여인, 보고 싶은 자식, 그리운 부모님 곁으로 언제 돌아갈지 알 수 없는 날에 항해를 떠난 것을 운명처럼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있건만 여인과 사내가 언제나 만날지 알 수가 없다. 바다에 부서지는 파도는 알고 있으려는지.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하늘인지 모를 풍경, 아름다운데 쓸쓸한 향수만이 가득하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고, 애수만이 가득한 바다.
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뱃사람들은 빨간 지붕을 보았을 때 가슴이 설렌다. 여인네는 표지석 주위에 핀 꽃송이를 모아 꽃다발을 만든다. 멀리서 뱃고동소리가 들리면 곧 사랑하는 사람과 상봉의 시간이다. 푸른 바다가 푸른 하늘과 만났다. 저 푸른 자연에 동화되어 간다.
시시각각 변하는 한 폭의 그림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했다면 인간의 생리적인 문제도 해결해야지. 여행 중 주요 이슈 중 하나는 화장실이다.
서유럽을 여행했을 때는 거의 다 유료화장실이었다. 처음 유료화장실을 들어갔을 때만 해도 무척 낯설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대부분 무료화장실을 사용했다. 유료화장실 이용료는 0.5~1유로. 그렇게 비싸지는 않지만, 공짜로 갈 수 있는데 돈을 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보다로까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일찍이라 가게들도 문을 열지 않았다. 표지석과 등대, 바다를 보고 오니 유료 화장실 문이 열려 있었다. 세고비아에서도 유료 화장실을 이용했다. 새해 아침 안내소도 문을 닫고 상점도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아서 화장실을 찾느라 고생했다.
달리는 버스에서 화장실이 가고 싶거나 화장실을 제때에 찾지 못하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여행 중에 가이드님이 식당과 관광지에서 “화장실 지금 가세요. 여기는 무료 화장실입니다. 지금 사용하세요. 다음은 카페나 유료 화장실을 사용해야 합니다. 3시간 넘게 화장실 못 갑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가끔 조절을 잘못하는 때가 있었다. 화장실은 우리들의 성지? 잘 찾아서 제때에 배설해야 즐거운 여행이 된다.
까보다로까에서 파티마로 이동을 했다. 파티마는 3대 성모 발현지(프랑스 로르드, 멕시코 과달루페, 포르투갈 파티마) 중 하나다.
1917년 파티마에서 성모 발현이 있었다. 당시 1만 명이 모여사는 작은 도시 파티마. 근처 목초지에서 루치아, 프란치스코, 히아친타 세 어린이가 돌담을 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번개가 치더니 아이들이 놀던 곳 떡갈나무에 성모마리아가 나타났다. 성모마리아는 아이들에게 예언을 말해주고 죄인들은 회개를 위해 고행할 것을 당부했다. 당시 세속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종교를 빙자해 꾸민 일이라고 의심했다.
1910년 포르투갈 제1공화국을 건설한 정부는 가톨릭 교회를 견제하기 위해 정교분리법을 제정하고 교회의 재산이 몰수되고 수도회가 해산되었다. 정치는 왕정시대로 복고하고자 하는 왕정파와 공화정을 이루려는 자유주의자들 간의 갈등으로 내전을 겪기도 했다. 성모 마리아는 매달 13일 아이들에게 나타난다고 했다.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다음 성모 발현일인 10월 13일 수만 명의 사람들이 파티마로 몰려들었다.
기적을 목격했다는 증언에 따르면 시커먼 구름이 뒤덮고 억수같이 비가 오는데 오후 1시경 갑자기 비가 그치고 태양이 구름을 뚫고 나와 묘한 은빛 원반을 그렸다고 한다. 루치아를 비롯한 세명은 아이들은 하늘에서 아기 예수, 성요셉과 여러 성인이 나타나 사람들을 축복했으며, 성당을 짓고 회개와 용서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증언한다. 이후 성모 발현을 목격한 히아친타와 프란체스코는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다. 루치아는 수녀회에 입회하여 수녀가 되어 매주 토요일마다 성모 마리아와 만나는 경험을 했다.
놀라운 것은 성모 발현에서 교황의 암살,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러시아의 공산주의자의 전체주의 등을 예언했다고 한다.
버스로 이동 중에 위 내용을 담은 영화(파티마의 기적)를 보았다. 필자로서는 믿기 어렵다. 그저 영화로 볼뿐이지만 가톨릭 신자들이 파티마 성당을 보러 간다면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필자는 관광객으로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곳에 방문한다는 것에 의미를 새긴다.
파티마 성당은 인구 7천여 명의 작은 도시 파티마에 관광객이 한해 400만 명 넘게 몰려오는 성당이다. 대성당 묘소에는 파티마의 기적을 목격했던 3명(히아친타, 프란체스코, 루치아)의 무덤이 있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파티마의 기적에 관한 내용이 표현되어 있다.
파티마 성당 광장은 엄청 넓었다. 3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광장이라고 한다. 대성당은 신고전주의(고대 그리스 로마양식) 양식이다. 중앙에는 64m 높이의 탑이 있고 좌우 주랑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린 벽화가 그려져있다. 제단 왼쪽에는 성모 마리아 발현을 목격했던 두 어린이의 묘가 있다.
저 멀리 성당의 꼭대기가 보이고 십자가가 보인다. 대성당 앞 중앙에는 탑이 세워져있다. 성당 앞 좌측 건물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마이크를 통해서 마사를 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길의 좌측에는 기도하며 무릎으로 걷는 사람이 보인다. 성모 발현 당신 걷지 못하던 사람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병을 고쳤다고 하여 이런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 일행 중에는 가톨릭 신자가 없어서 봉헌이나 무릎으로 기도하거나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성당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포토존으로 광장 가운데에 서서 사진을 찍고,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성당 광장을 오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관광객으로서 우리는 열심히 사진을 찍는 것이 기도이고 봉헌이다. 성당 내부는 연말이라 관람할 수 없었다. 외관의 모습만 담아도 뭔가 뜻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유럽의 땅끝마을과 세계의 성지가 만나는 오묘한 조화 속의 여행 일정이다.
파티마성당 전경
파티마성당 전경
가까이에서 본 파티마성당
파티마 성당
파티마 성당에서 은혜를 가득 받고 성물(가톨릭 기념품) 가게로 이동했다. 성물 가게에는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성물이 많았다. 필자는 지인과 가족을 생각하며 선물을 샀다. 성모 마리아로부터 받은 은혜를 지인과 가족에게 베풀어야지. ㅎㅎㅎ
가이드님이 강력 추천해 준 코르크 냄비 받침대, 포르투갈의 상징 수탉이 그려진 식탁보, 커피, 와인을 샀다. 남편은 가톨릭 신자 친구에게 줄 묵주를 샀다. 모두 좋은 선물이 되었다. 선물이란 하는 사람도 부담 없고 받는 사람도 쓸만한 것을 사는 것이 좋다. 가끔은 여행지는 모두 잊어버려도 기념품 하나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확실한 증거일 때가 있다.
포르투갈에서 점심은 대구 튀김 요리를 먹었다. 서빙하는 사람이 80은 되어 보이는 여성분이었다. 우리 엄마 할머니처럼 음식을 자꾸 챙겨주었다. 하얗게 머리가 새고, 얼굴이 쭈글쭈글한 나이 든 사람이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도 고령사회가 되면서 일하는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노인의 일자리와 노동 가치에 대해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이라 그런지 자꾸 눈이 간다.
파티마에서 스페인 메리다로 이동(4시간 이동)을 했다. 포르투갈은 내내 을씨년스러웠는데 스페인으로 넘어오니 밝은 햇살이 보인다. 휴게실에서 흑맥주와 커피를 마신다. 노을이 지는 햇살이 드는 휴게실에서 머무른 시간 또한 아름다운 여행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