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5일 차가 되니 점점 쌓였던 피로가 절정에 달했다. 그래도 즐거운 여행은 계속된다. 론다에서 맛있는 스파게티를 점심으로 먹고 세비야로 이동했다. 12월 말의 세비야는 낮기온 17도 저녁에도 13도에 이르는 포근한 날씨로 여행하기 좋았다.
세비야 Sevilla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 있는 도시로 과달키비르 강어귀에 있는 내륙 해양 도시다. 인구 70만이 넘는 대도시이다. 711년 무어인(이슬람인)들이 스페인을 지배했을 때 수도였다.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 신대륙을 발견하던 대항해시대에는 무역의 중심도시였다.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콜럼버스(크리스토퍼 콜럼버스, 1992)에 관한 영화를 보여줬다.
콜럼버스(1451.8.26? ~ 1506.5.21.)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지금의 서인도제도를 발견한 인물이다. 그는 이탈리아 항구도시 제노바에서 태어났으며 미천한 신분이었다.
15세기 유럽에서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기원전 320년경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입증되었지만 이런 주장을 하면 미친놈 소리를 듣던 시대였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믿고 서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구축했고, 포르투갈은 유럽과 인도를 잇는 희망봉을 발견한 뒤였기 때문에 콜럼버스 항해를 지지 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 다소 늦은 스페인은 비싼 향신료와 진주, 황금을 찾기 위해 인도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육지는 이미 이슬람 세력이 차지하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에스파냐(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탄탄한 지지하에 항해를 떠나 인도를 발견했다. 덕분에 미천한 신분이었던 콜럼보스는 부왕의 신분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것은 인도가 아니라 아메리카대륙인 지금의 서인도제도였다.
여러 번의 항해에도 부를 안겨줄 후추와 진주, 황금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원주민과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그의 신뢰도 떨어진다.
우리는 콜럼버스를 모험과 탐험의 대가이자 위인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정복자이고 침략자이다. 그는 상당한 출세욕과 오만함도 있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좀 더 인간적인 면을 보여 주었다. 영화를 보는 도중 잠이 들어서 군데군데 보지 못했으나 꽤 흥미로왔다. 집에 돌아가면 영화를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콜럼버스 무역선, 나오 빅토리아 500/ 세비야를 지킨 망루 황금의 탑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세비야의 과달키비르 강어귀
세비야에서는 세비야 대성당 Sevilla Cathedral을 가장 먼저 찾았다. 세비야 거리를 걷는 중에 세기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구애를 했던 집 앞을 지났다. 노란 오렌지가 달린 오렌지 나무가 있고 노란색 벽과 테라스가 있는 작은 집이었다. 약간의 낭만이 묻어난다.
세비야 대성당 입장시간이 있어서 광장에서 마차투어를 했다. 마차투어는 선택관광으로 일행 중 일부만 관광을 했다. 우리 형제들은 남편팀과 부인팀으로 나누어서 마차에 올랐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희희낙락하며 시내 마차 투어를 했다. 마차를 타고 가는 도중 거리의 건축물과 사람들을 보았다. 사람들도 우리를 보는 희한하게도 서로 구경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어느 공원에서는 몇백 년 된 종려나무가 있었다. 나무의 신령이 나올 것 같은 모습이었다.
구도심 시가지를 돌고 돌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목재 건축물인 메트로폴 파라솔 Setas de Sevilla (Metropol Parasol)에 도착했다. 큰 버섯이라고 불리는 건축물이다. 총 3,400여 개의 폴리우레탄 코팅을 한 목재로 2004년부터 8년여에 걸쳐 만들었다. 세비야의 옛 산업인 직물 산업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건축물이다. 건축물이 어찌나 큰지 멀리서 보고 가까이에서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새가 살기 좋고 썩기 쉬운 나무 건축물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해졌다. 새는 어찌하는지 모르겠고, 폴리우레탄 코팅이라 썩지 않는가 보다. 전망대에 오르면 세비야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저녁노을이 지는 때는 더 아름답다고 한다.
메트로폴 파라솔 앞에서 마부들이 잠깐 내리더니 피자를 샀다. 아침 대용인지 간식용인지 모를 피자였는데 맛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광장에서 사진을 찍고 마차를 타고 다시 세비야 대성당 앞으로 돌아왔다.
성당 입장 시간이 한참 남아서 성당 외관을 관람하고 주변을 돌며 시내를 관광했다. 앱으로 검색해서 스타벅스를 찾았다. 세계 어디에나 있는 커피숍. 우리도 여느 스페인 사람들처럼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성당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도로 위에 전차도 다녔다. 전차 메트로센트로(Metrocentro)는 세비야의 중심부를 달리는 경전철 지상버전이다. 우리나라 기차처럼 생겼는데 빠르게 달리지 않는다. 전차 타보고 싶다. 다음에 느린 뚜벅이 여행 오면.
카사노바 구애 저택/ 몇백년 된 종려나무/ 마차투어
버섯이라는 이름의 메트로폴 파라솔
타보고 싶은 전차/ 세계 어디에나 있는 스타벅스
세계문화유산인 세비야 대성당 Sevilla Cathedral은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고딕 양식을 지닌 세비야 대성당은 1401년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짓기 시작해 무려 105년 후인 1506년에 완공되었다.
종탑인 히랄다 탑(La Giralda)과 오렌지 정원은 12세기 지어진 이슬람 사원의 한 부분이다. 대성당은 17~8세기에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추가되면서 혼합 건축물이 되었다. 스페인 여행 중 이슬람 사원이나 궁이 있던 건축물을 성당으로 재건한 곳이 꽤 많았다. 여러 문화가 공존하면서 스페인만의 독특한 건축물이 탄생한 것이다. 성당의 면적 11,520평방 미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부분의 길이 약 126m, 너비는 약 76m이며, 첨탑의 최고 높이는 42m, 히랄다 탑은 104.5m의 높이다. 크고 넓고 화려하며 값비싸고 진귀한 작품들이 가득한 성당이다.
세비야 대성당 외관 관람
세비야 대성당 돌며 외관 보기
세비야 대성당 주변
드디어 세비야 대성당 입장. 참고로 입장 시 반바지, 민소매, 슬리퍼, 모자 착용은 제한된다. 보안 검색이 이루어진다. 스페인 여행 중 문화유적지에서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보안 검색이다. 외투를 벗고 허리벨트를 풀고 가방과 휴대폰을 검색대 위에 놓는다. 무기가 될만한 쇠나 라이터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이슬람 양식의 문을 지났다. 성당 마당에 들어서니 오렌지 나무(오렌지 정원, 파티오 데 로스 나란호스)가 줄지어 섰다. 노란 오렌지가 초록잎 나무에 매달려있다. 오렌지색 열매가 초록잎과 어우러져 예쁘다. 스페인에는 겨울에도 오렌지가 한창이다. 정원 바닥은 물을 중시하던 이슬람 문화가 그대로 남아있다. 수로가 있고 작은 분수가 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보았던 작은 분수가 마음을 정갈하게 하며 손을 씻을 수 있도록 한다. 실제로 성당에 들어갈 때 손을 씻지는 않았다. 히랄다 종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오렌지 정원과 교회가 잘 어울린다.
히랄다 탑 꼭대기에는 한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다른 손에는 깃발을 든 바람개비라는 뜻의 ‘엘 히랄디요’라는 여인상이 있다. 종려나무는 야자수처럼 생긴 관엽식물이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이 나와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고 한다. 종은 축제 기간에는 360도 회전하면서 엄청난 소리를 낸다. 히랄다 탑에 오를 수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외관에서만 관람했다. 히랄디요 복제품은 성당 남문에 있다. 뭐가 뭔지 몰라서 여행 당시에는 자세히 보지 못했다. 알고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는 말은 참이다.
히랄디 탑/출구 '엘 히랄디 요' 종려나무와 깃발을 들고 있다
이슬람 모로코였던 대성당 문/ 이슬람 분수
대성당 내 오렌지 정원, 파티오 데 로스 나란호스/ 사진을 찍으면 예쁘게 나온다
성당 내부는 들어가자마자 크고 높고 화려했다. 실내가 모두 황금칠을 한 것처럼 노란색이다. 금칠이 되어있는 왕실의 예배실, 성가대실, 여러 귀족 가문의 전시실의 화려함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눈 돌아가게 화려하고 비싸 보이고 오래된 작품들이 너무 많았다. 화려한 은제 성체 안치대, 페르난도 3세 조각상, 마호가니 원목, 여러 보석이 박힌 왕관, 여러 소성당, 거인 등에 탄 그리스도 그림 등등. 그림, 조각품, 왕관과 장식품, 목조 조각 등이 가득하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건축 양식도 함께 볼 수 있다. 한 편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보는 것 같다.
중앙제단은 1480년부터 1560년까지 80년 동안 제작되었으며 높이 27m, 폭 18m 크고 황금으로 만든 어머 어마한 제단이다. 엄청 많은 양의 금이 들어갔다고 한다. 너무 과한 것은 아닌지. 성당을 금으로 발랐네 라는 말을 뇌까린다.
왕이 올 때만 열리는 소성당이 있고, 귀족가문이 사용하는 소성당도 여럿 있었다. 이곳은 특혜 받은 사람만 올 수 있는 교회였던 것 같다. 왕가와 돈 많은 귀족의 교회라고 하지만 솔직히 교회가 이렇게 크고 화려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조금 씁쓸한 마음이다. 한편으로는 세계에서 제일의 교회를 건설하려 했던 왕이 있었기에 그 유산으로 후대가 먹고살 수 있게 되었으니 감탄해야 할 것 같다.
가이드님의 설명을 열심히 들었는데 실내에는 관광객이 너무 많았고, 자세히 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천천히 여유있게 본다면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도 같다.
제일 인상 깊은 곳은 콜럼버스 묘(Sepulcro de Colón)이다. 이런 묘는 처음 보았다. 정말 인상 깊은 무덤이다. 무덤이 동상처럼 세워져 있다. 청동빛 색상으로 세워져 있는데 네 사람이 관을 짊어지고 있는 동상이다. 당시 스페인 4대 왕국이었던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 왕들이 콜럼버스 관을 짊어지고 있다. 앞에서는 콜럼버스 대항해를 지지했던 카스티야와 레온 왕이 관을 들고 있고, 뒤에는 반대했던 나바라와 아라곤 왕이 짊어지고 있다. 앞에 왕의 고개를 들고 있고 밝은 표정인데 뒤의 왕들은 고개 숙인 채 죄스러운 표정이다.
어찌하여 이런 형상을 만들었을까? 콜럼버스는 유언으로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라’라고 했단다. 그의 유언을 지켜주기 위해 이런 묘를 만들었다고 한다. 스페인사람들이 그들의 나라에 부와 영광을 안겨주었던 콜럼버스를 얼마나 귀히 여기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다.
앞에 오른쪽 레온 왕의 발과 왼쪽 카스티야 왕의 발은 유난히 반짝이는데 이들의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세비야에 온다는 속설과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당 안에 무덤을 두는 것도 이상한데(성당에 무덤을 두어야 천국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다고 한다) 전 세계인이 관람할 수 있도록 드러나는 무덤이라니 너무 뜻밖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예배당 중앙/ 예배당 반대편 콜럼버스 묘
황금 색 창으로 아름다운 실내
황금의 제단/ 귀족 가문의 소성당 작품들
후안 데 아르페가 만든 화려한 은제 성체 안치대/ 은제 안치대/ 천사 위 성모마리아
대성당 가득한 그림/ 화려한 왕관
4명의 왕이 지고 있는 콜럼버스 묘/ 뒤에 두명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세비야 대성당을 본 후에는 콜럼버스의 무역선과 적의 침입 시 세비야를 지킨 망루 황금의 탑에 잠깐 들러서 사진을 찍었다. 15세기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과달키비르 강어귀 노을이 아름답다.
다음 여행은 세비야 스페인 궁전 광장 Plaza de España이다. 1929년에 열린 스페인 · 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Aníbal González)가 만들었다. 반달 모양의 광장을 둘러싼 건물 양쪽에 탑이 있으며 광장을 둘러싸고 건물이 있다. 건물 벽면에는 스페인 각지를 대표하는 타일로 모자이크 했고 역사적인 사건을 그렸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4개의 다리는 스페인 고대 왕국의 상징이다. 49개의 벤치는 스페인 지방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광장 끝에 두 개의 높은 탑은 세비야 전역에서 볼 수 있다. 이곳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이탈리아의 스페인 광장과는 다르다. 이탈리아 스페인 광장은 하얀 계단 아래 분수가 있다면, 이곳은 갈색 궁전 앞 탁 트인 넓은 광장에 분수가 있다.
2층에 오르면 광장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저녁 불을 밝히는 궁전의 모습이 갈색과 노란색으로 운치 있다. 저녁노을로 물드는 스페인광장을 보아도 예쁘다. 운하 앞이나, 다리 위, 광장의 분수, 광장 어디에서 보아도 좋다. 광장의 둘레를 따라 515m 운하가 있는데 보트를 타고 유유자적 뱃놀이 하는 사람도 좋아 보인다.
회랑을 따라 걸어도 분위기 있을 것 같다. 광장에서 마차 타는 사람도 있었는데 마차투어는 시내 투어를 했기 때문에 더 하고 싶지는 않았다. 분수 앞 광장에서는 노래와 마술 공연이 있었고, 건물의 한 발코니에서는 플라멩코를 추는 사람도 있었다. 저녁에 플라멩코를 관람할 예정이었는데 미리 맛보기로 본 것이다. LG사이언스 광고(2015년)에서 배우 김태희가 이 광장에서 플라멩코를 추었다고 한다.
입구에서 보는 스페인 궁정과 광장
궁전 앞에 4개의 다리는 4개의 스페인 왕국
세비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탑이 우뚝
보트 타는 사람들이 여유롭다
마차 투어하는 사람들/ 분수가 시원스럽다
분수에서 바라본 전경
저녁 노란 불이 켜지고 하늘이 옅은 미색으로 물든다
2층 발코니에서 바라본 스페인 광장 저녁으로 물들다
어둠이 내리는 스페인 광장/ 이슬람을 상징하는 문
저녁에는 따블라오(플라멩코 쇼를 하는 식당)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보았다. 공연장에 입장하기 전에 맥주, 와인, 샹그리아(과일주), 탄산음료 중 주문을 했다. 좌석에 앉으니 테이블 위에 음료가 차려졌다.
주름진 길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무희가 나와서 부드러운 손동작과 빠른 발놀림을 하며 춤을 춘다. 손과 발, 몸이 함께 만들어 내는 공연이다. 관객의 박수소리와 함성, 타악기, 캐스터네츠에 맞춰 춤추는 무희, 기타 반주와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 흥을 돋운다.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화려한 조명 아래 공연이 이어진다.
플라멩코 flamenco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민속음악과 춤으로 구성된다. 칸테(노래), 토케(기타 연주), 바일레(춤), 팔마스(박수)로 이루어져 있다. 현란한 손동작 마노(Mano)가 있고 사파테아도(Zapateado)로 불리는 발동작은 탭댄스를 연상케 한다. 부드럽고 유연한 몸동작과 레이스 긴치마를 흔들며 살랑거림이 사람을 홀린다. 기타 반주와 영혼의 노랫소리는 공연을 이끌어가는 도구다.
플라멩코는 인도에서 파키스탄과 터키를 거쳐 이베리아반도까지 이주하여 살던 집시들의 전통 춤과 노래라고 한다. 기독교로부터 박해를 받던 이슬람 집시들의 삶의 고단함이 담겨있는 것이다. 화려한 의상과 정렬적으로 추는 춤,빠른 탬포 때문에 밝게만 생각했는데 민족의 한이 서려있다고 하니 왠지 노랫소리가 구슬프게 느껴진다. 세비야에서 만난 플라멩코의 긴 여운이 남는 시간이다.
스토리가 있는 공연인 것 같은데 알 수는 없었다. 공연은 1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처음 볼 때는 신기했는데 내용을 모르고 보니 나중에는 지루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피곤했던지 앞에 앉은 몇몇은 졸고 있다. 나중에 들으니 공연하셨던 분은 플라멩코 학교 교장선생님이며 스페인 최고의 배우라고 한다. 뒤늦게 지루함을 느꼈던 것에 미안함이 찾아온다. 스페인 광장에서 플라멩코를 추었던 배우김태희 사진을 찾아보며 플라멩코의 긴 여운을 갈무리한다. 빨간색이 참 예쁘다.
플라멩코 공연/ 스페인 광장에서 배우 김태희의 플라멩코(2015년 광고 네이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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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는 화요일 금요일과 추가로 한번 더 발행합니다. 방학이라 부지런히 쓰려구요ㅎㅎ
오늘도 방문해 주신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2월 더 힘내서 열글(열심히 글쓰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