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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영 Jan 30. 2024

투우 함성, 천길 협곡 아찔함 속으로

스페인 여행 5일 차 론다 투우장/누에보다리

  

스페인 여행 5일 론다와 세비야 여행. 오전 오후 두 번으로 나누어서 업로드합니다.      


투우의 본 고장, 천길 낭떠러지 아찔한 다리 위에 건설된 론다


스페인 하면 떠오른 것은 투우경기와 플라멩코다. 필자에게는 투우와 플라멩코와 관련된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60주년을 맞아 큰 축제를 했다. 우리 반은 캉캉춤이라 불리는 일명 플라멩코 춤을 추며 투우 경기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였다. 하얀 블라우스와 빨간 레이스가 달린 치마를 입고 춤을 추었고, 투우 탈을 쓴 소가 파란 운동장을 달렸다. 투우 탈은 두 명이 뒤집어썼는데 필자는 두 명 중 한 명의 투우가 되었다. 스페인과 관련된 이런 추억을 갖고 있어서인지 5일 차 여행이 기대되었다.


스페인 여행 5일 차, 미하스에서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한 시간 반 정도 이동하여 론다로 갔다. 론다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말라가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과달레빈강(Río Guadalevín) 타호 협곡(El Tajo Canyon) 해발 780m 고지대에 세워진 절벽 위의 도시다. 론다 도시에서 바라본 들판이 아찔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찔한 협곡에 세워진 누에보 다리를 보기위해서 론다를 찾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꽃보다 할배' 방송을 타면서 유명해졌다. 스페인 하면 투우가 유명한데, 론다는 투우의 본고장이다. 론다에서는 투우의 본고장답게 투우와 관련된 작품들을 자주 만난다. 론다는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도시로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론다 도시에서 바라 본 아랫마을 전경
안달루시아 평원 전경
론다 관공서
전설의 투우사 페르도 로메로/ 어느 투우사의 레이디/ 소 동상


론다에 도착해서 투우장 Plaza de Toros de Ronda과 투우박물관을 먼저 관람했다.

투우장은 선택관광이었기 때문에 일행 9명만 관람을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유시간을 가졌다. 이번 여행은 선택관광을 강요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시간이 많았다. 어떤 여행에서는 선택관광을 하지 않으니 가이드가 화를 내고 삐져서 꽤 불편했던 적이 있었다. 이번 여행은 가이드가 선택관광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자유시간도 꽤 많아서 좋았다. 여행 일정도 오전 8~9경 시작해서 저녁 7~8시면 끝났다. 이른 새벽에 떠나는 여행은 없었다. 일정 마무리 시간도 저녁 9시가 넘어서 끝난 경우는 두 번 있었는데 지난번 알바이신 지구에서 맥주파티와 오늘 5일 차 세비야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보느라 늦게 마무리되었을 뿐이다.  


론다 투우장은 정사각형으로 1785년 개장하였다. 돌만으로 건축된 신고전주의(도리아식, 로마시대 건축) 양식의 스페인 최초의 투우장이다. 약 6,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2층으로 되어 있다. 매년 9월에는 역대 최고의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를 기리는 축제가 개최된다. 나폴레옹 침략 당시 투우장이 파괴되었으며, 공화정 독재 시절에는 수용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투우를 떠올리면 금과 은으로 장식된 화려한 복장을 입고 우아하고 유려한 동작을 선보이는 투우사가 미쳐 날뛰는 소 앞에서 빨간 망토를 흔드는 장면이다. 그런데 투우는 세명의 투우사가 벌이는 공연이다. 투우는 1회에 총 6번 이루어지고 시간은 약 20분이다.

투우의 시작은 경기장으로 소가 튀어나오면 주역 투우사 마타도르가 카포테(capote)라는 빨간 망토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소를 흥분시킨다. 소는 성질이 사납고 용맹하며 몸무게 450~600kg 정도의 육중한 황소다. 암흑의 문이 열리면 소가 밖으로 뛰어나온다.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밝은 햇살에 나온 소는 흥분하여 날뛴다. 필자는 소가 빨간색을 보고 날뛴다고 생각했는데 소는 색맹이라 빨간색을 보고 날뛰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밝은 빛으로 나와서 흥분한다고 한다. 두 번째는 마타도르가 퇴장하면 말을 탄 피카도르가 창으로 소를 찌르며 소를 더욱 흥분하게 한다. 세 번째는 작살을 들고 나온 반데릴레로가 등장하며 소의 목과 등에 작살을 꽂는다. 소가 날뛰고 흥분할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흥분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온다. 마지막으로 주역인 투우사 마타도르가 다시 입장하여 소의 어깨에 있는 숨골에 칼을 찔러 죽이면 투우가 끝난다. 투우사는 승리의 기념으로 소의 귀와 꼬리를 선물로 받는다고 한다. 투우사가 실패할수록 소의 고통은 심해진다. 단번에 검을 꽂아 소를 죽게 해야 훌륭한 투우사다.  

소가 살아서 투우장을 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투우사가 단번에 소의 숨통을 끊어놓지 못하면 소의 고통이 심해지고 관중석에서 흰 손수건을 흔들어 소를 살려달라고 한다. 그러면 심판관이 결정하여 투우가 살아남게 된다. 이후 투우 소는 평생 금의 환양하면서 자손을 번식하며 호의호식하게 된다. 식용소는 보통 2살까지 사는데 투우는 3~4살까지 살 수 있다고 하니 소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해야 할까?      


이른 아침 투우장은 많지 않았다. 투우장 정문은 고대 로마 건축양식인 도리스양식(토스카나식) 기둥이 있으며 중앙에는 찰스 3세 통치의 문장이 있다. 투우장으로 입장하기 위해 가이드님과 직원과 어떤 말이 오가고 티켓 바코드를 찍었다. 대기 장소에는 투우 장면 동영상이 돌아간다. 잠깐 동영상을 보면서 투우 모습을 상상한다.

투우장으로 들어서니 고운 황토가 깔린 운동장이 펼쳐진다. 운동장에 고운 햇살이 노란색으로 퍼진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가득하다. 양달과 응달로 선명하게 나뉘는 경기장은 귀족과 평민의 나눔인가?

투우장은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가이드님이 물어본다. “왕가의 자리는 어느 쪽일까요? 왜 그쪽에 자리를 만들었을까요?” 왕가의 자리 로열 박스는 서쪽에 주출입구 2층에 있다. 투우 경기가 주로 오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늘을 만들어주기 위해 서쪽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햇볕이 드는 쪽이 좋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로열 박스에 아침 햇살이 비추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눈을 감긴다.  투우는 주로 귀족들이 즐기던 놀이다. 좌석은 위치마다 가격이 다른데 햇볕이 비추지 않는 곳이 더 비싸다고 하며, 100만 원이 넘는 좌석도 있다고 한다.

로열박스 1층아래에는 주출입구가 있으며 주출입구 옆에는 소가 튀어나오면 투우사가 숨을 수 있는 나무문이 세워져 있고 틈새 공간이 있다. 소가 튀어나올 때 다치지 않도록 투우사는 재빨리 나무 문 뒤로 숨어있어야 한다. 우리도 문 뒤로 살짝 숨으면서 투우사로서의 준비를 한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다칠라. 뚱뚱하면 절대 못 숨는다. 투우사 중에 뚱뚱한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이것 때문인가. 우리네 남정들도 뱃살 쏙 숨 꼭 참고 쏙 들어간다. 다행이지.

어둠에서 밝은 햇살로 튀어나온 소가 성난 표정으로 콧김을 뿜으며 뿔로 들이받는 모습이 보이고 화려한 복장을 한 투우사가 된 자신은 우아하고 유려한 몸동작으로 소를 다룬다. 관중들의 숨죽임과 환호성이 들리는 듯하다.


투우장에 울려 퍼지는 듯한 함성 소리를 뒤로하고 1층에 있는 소의 막사에 들어갔다. 투우 소가 대기하던 막사다. 투우 소가 길게는 24시간 짧게는 3~4시간을 머무르는 곳이다. 막사는 어찌나 좁고 어둡던지 소가 밝은 빛으로 나가면 저절로 흥분될 것 같다. 투우를 기다리는 소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투우 경기를 하고 소를 죽이는 장면을 보며 종국에는 소가 죽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며 즐긴다는 것이 더 무섭고 잔인한 것 같다. 때로는 투우사도 심하게 다치고 죽을 수도 있다. 투우 장면을 직접 본다면 눈살이 찌푸려지고 참아 지켜보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들은 왜 투우를 즐겼을까?

아침햇살에 양달과 응달이 선명하게 나뉜다
아침 햇살이 드는 투우장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다칠라/ 투우사가 몸을 숨기는 문


투우장 외부에는 승마학교도 있다. 16세기 왕실 승마학교 Real Maestranza가 만들어진 이래 마장마술의 전문 기관이 되었다. 투우사의 말 타는 방법을 교육했으며 승마가 스포츠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술을 연마하고 훈련하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투우장 내에는 박물관도 있다. 이곳에는 투우의 역사, 투우 의상과 소품 등을 볼 수 있다. 화가인 고야가 디자인한 투우사와 투우사 레이디의 의상도 전시되어 있다. 넓지 않았으나 가이드님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했다.

투우의 기원은 4천 년 전 로마시대의 크로노스 궁에 황소를 타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투우에 대한 기록은 14세기 중반 이후 16~17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축제로 자리 잡았다.

17세기말부터 지금처럼 투우사가 땅에 서서 싸우는 방식으로 일반화되었다. 무레타(빨간 망토)를 사용하는 방식은 18세기 프란시스코가 탄생시켰다고 한다. 프판시스코의 손자 페드로 로메로 마르티네즈는 로메로 가문의 전설적인 투우사로 6,000여 마리 황소와 대결하여 승리했다고 한다. 투우는 투우사에게도 상당히 위험한 경기이지만 멋진 투우 모습을 보여주면 관중의 환호와 명예를 얻게 되며 고수익이 보장된다. 그래서인지 유명한 투우사 가문이 존재한다.    

현재 투우는 동물 학대 논란으로 금지되었으며 론다에서는 투우 경기를 볼 수 없다. 세비야,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서는 몇 차례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스페인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투우 경기가 동물 학대 논란 속에서 문화로, 축제로, 혹은 스포츠로 어떻게 자리 잡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물관 투우 그림
그리스 크로노스 궁 소타는 사람/ 투우사/ 소 뿔
경기장에 소를 풀어놓아서 사람들과 소들이 뒤어킨 모습
투우 경기 모습
화려한 투우사 복장과 소품
화가 고야가 디자인한 투우 의상

 

투우장 밖에는 오르도네즈 가문의 투우사 부자의 동상이 있다. 아버지 카에타노 오르도네즈는 1917년 투우사로 활동했으며 이후 리스본 투우학교로 재직했다. 그의 아들 안토니오는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투우사로 소와 가까운 곳에서 스릴을 즐기며 다치지 않고 경기를 했으며, 3,000마리의 황소와 대결했다고 한다. 안토니오는 작가 헤밍웨이와 우정을 나누었고 헤밍웨이의 작품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이 모델이 된다. 헤밍웨이는 론다에서 <누구를 종을 울리나>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헤밍웨이 작품을 집에 돌아가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론다를 즐길 때.

투우사 동상 앞에서 남편도 멋진 투우사가 된 것처럼 폼을 잡는다. 나는 투우사의 레이디?   

아버지 카에타노 오르도네즈/ 아들 페르난도 오르도네즈


투우장과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누에보 다리 Puente Nuevo로 이동했다. 이곳은 '꽃보다 할배'에서 방송을 타면서 유명해졌다. 우리나라 스페인 관광의 역사를 다시 쓴 곳이 바로 이곳이다.


누에보 다리는 뉴브릿지 즉 새로운 다리라는 의미다. 이 다리는 론다의 엘타호(El Tajo) 협곡에 놓인 다리이다. 이 다리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눈다. 협곡은 120m 깊이로 양쪽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고, 한가운데 과달레빈강(Río Guadalevín)이 흐른다. 협곡으로 인해 두 지역의 소통의 장애가 있었다. 누에보 다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건설한 3개의 다리 중 하나다. 마르틴 데 알데우엘라(Martín de Aldehuela)가 총책임자로 40여 년 동안 공사해 1793년에 완성했다.  3개 다리 중 가장 늦게 완공되어 누에보 즉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다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다리가 무너지면서 인부 50여?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건설된 다리이다. 300여 년 전 이렇게 높은 곳에 어떻게 다리를 세웠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구도심에서 신시가지를 바라보며 다리를 건너는 중에 왼쪽으로 천 길 낭떠러지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이룬다. 그 모습이 웅장하고 아찔하다. 투우장의 흥분과 함성 소리가 천길 낭떠러지 아찔함 속으로 빨려들 것 같다. 몬세라트에 있던 톱니모양 바위들을 론다 협곡에 갖다 놓은 듯하다. 깎아지른 거대한 하얀 바위에 이끼가 자라고 풀과 나무가 자라서 군데군데 초록색을 이루고 있다. 협곡 사이에 흐르는 물로 습기를 머금은 바위는 촉촉함이 느껴진다. 천 길 깊이 바위산 아래에 흐르는 물을 보며 어지러움을 느낀다. 절벽 위에는 하얀 집 갈색 지붕 집들이 들어섰다. 다리 하얀 집도 풀과 나무도 아슬아슬하다. 다리 앞에 절벽에 핀 노란 꽃이 애처롭다.


전망대에서 단체 사진 찍게 빨리 오라는 형님과 막내네가 우리 부부를 부른다. 관광객들이 많으니 부지런히 달려서 찰칵찰칵. 다시 다리를 건너올 때는 반대편 다리 아래를 보면서 걸어왔다. 꽃보다 할배에서 출연진들이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던 장소다. 우리는 다리 위에서 반대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꽃보다 할배들이 다리 아래 초원에서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으나 우리는 내려가지는 못했다. 일행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누에보 다리를 건너다
120m 높이 누에보 다리
절벽 위 아슬아슬 한 하얀 집
협곡 절벽 아찔한 모습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누에보 다리 반대편 전경


점심은 론다 소로코 광장 근처에서 먹었다. 소로코 광장에는 스페인의 상징 헤라클레스와 두 마리의 사자상이 있다. 헤라클레스가 늠름하고 당당하게 두 마리 사자를 잡아 손에 쥔 용맹한 모습이다. 이 동상은 안달루시아 자치 공동체의 문장이다. 광장은 1918년 블라스 인판테 Blas Infante(1885-1936)가 디자인했으며, 론다 현대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구호라는 뜻의 Socorro 교회가 있었는데 이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과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과 함께 세워졌다고 한다.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세기 초 다시 건축했다고 한다.

광장 근처 야외 테이블에서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음식을 먹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여유의 상징처럼 보인다.


식당에 들어가니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실내를 꽉 채웠다. 바삐 움직이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식당이라 그런지 앉자마자 음식이 나왔다. 현지식에서 매번 먹던 딱딱한 빵과 오렌지, 샐러드가 나왔고 찐 감자가 나왔다. 스페인 와서 처음 먹는 파스타가 나와서 순싹으로 후후룩 맛있게 먹었다. 감자는 튀기지 않고 쪘는데 부드럽고 담백하며 맛이 좋았다. 스페인에서 감자가 많이 나온다더니 큼지막하고 포근포근 맛있었다.


스페인 엿이라고도 하고 강정과도 닮은 뚜론으로도 유명한 론다에서 엿을 사고 싶었는데 시간이 여의치가 않았다. 나중에 다른 도시에서 살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스페인 여행 마지막 날 마드리드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소로코광장에서 한참을 걸어서 버스가 정차되어 있는 곳까지 이동했다. 중세의 집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론다 시내의 하얀 집과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았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스페인의 흔한 모습이다. 다시 사진을 찍어도 예쁘다.


다음 여행 장소는 세비야다. 대도시 세비야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오후 여행을 기대하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스파게티 / 감자찜 빵 셀러드 올리브오일 소스
야외에서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
소로코 광장 주변 모습/ 안달루시아 상징 헤라클레스와 사자상
크리스마스 여운이 남아있는 론다 거리
미하스에서 론다로 론다에서 세비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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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무드셀라증후군처럼_간호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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