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고비아는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60km 지점에 있는 과다라마 산맥 기슭 해발 1,000m 지점에 있다. 기원전 700년 무렵부터 이베리아인이 거주했으며 기원전 1세기말 로마가 지배했다. 8세기 초 이슬람세력인 무어족이 지배했으나 11세기 후반 유럽인 카스티야 왕국이 지배했다. 13세기말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0세는 세고비아를 수도로 정했다. 16세기부터는 스페인 화폐 주조소가 설치되며 번성하였다. 현재 인구 5만여 명, 면적 163.6㎢로 작은 도시다.
세고비아 전경
세고비아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니 세고비아의 상징인 두 아이가 늑대젖을 먹고 있는 상이 있다. 두 아이는 신 전쟁의 신 마르스와 레아 실비아의 쌍둥이 아들로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다. 훗날 둘은 도시 국가를 건설했으며, 로물루스는 로마를 건설했다. 언덕에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이 청동 조각상은 로마의 상징으로 세고비아가 일찍이 로마가 지배했던 것을 말해준다.
늑대 젖을 먹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 청동상
조금만 이동하면 거대한 돌다리 같은 건축물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수십 개의 돌을 길게 쌓아 만든 다리다.
저건 뭐야? 로마 수도교다. 2천 년 전 로마인들이 17km 멀리에서 물을 끌어온 수로다리다.
로마인들은 멀리서 어떻게 물을 끌어올 생각을 했을까? 의문이 든다.
로마수로교 Acueducto Romano는 로마 트라야누스 황제(98~117년) 때 건설된 물을 끌어오기 위한 길을 만든 다리다. 17km 떨어진 프리오 강의 물을 퍼올려 2층 좁은 수로를 통해 도심까지 끌어왔다. 수도교는 128개의 2층 아치로 이루어졌으며 길이 813m, 높이 30m로 과달라마 산맥에서 가져온 화강암을 사용했다. 20,400개의 벽돌로 이루어졌으며 시멘트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았다. 화강암 하나하나에 구멍이 있는데 아마도 돌을 들어 올릴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어떻게 물을 끌어왔을까? 신기하다. 수평으로 보이는 수도교는 몇 센티미터의 미세한 높이 조절로 1km 미터 밖의 물을 끓어 올 수 있었다고 한다.
2천 년 동안 태풍이나 지진을 이기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는지 감탄사가 절로 난다. 2천 년이 흘러도 남을 건물을 짓고 도시를 건설한 로마인들은 정말 대단하다.
로마 수도교를 앞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 세고비아 관광 전에 보고 관광 후에도 보고, 이리저리 여러 각도에서 여러 시간대에 보아도 신기하기만 하다. 세고비아에 진입할 때 보았던 아침은 아침 회색빛 여운이 가득했다면 나올 때 본 수도교는 파란 하늘에 쌓아 올린 다리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회색과도 어울리고 파란색과도 조화를 이룬 2천 년 전의 로마인의 기술에 다시 놀란다.
로마 수로교
세고비아 하면 기타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나이대를 짐작하게 한다. 세고비아는 한국의 어쿠스틱 기타 제작 업체로 우리 나이대에 유명한 기타였다. 남편과 세고비아 기타에 대해 속닥거리고 있었는데 일행 중 한 분이 세고비아 기타를 가이드님께 물어본다. "하하하. 세고비아와는 관련 없는 기타 업체입니다." 한다. 나중에 보니 창업자의 선배가 구해준 기타 교본의 저자였던 Andres Segovia에서 따서 지었다고 한다.
수도교를 지나 알카사르성을 찾아갔다.
가는 길에 스페인 젊은이들을 많이 만났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밤새워 즐긴 청년들로 술에 취해서 헤실거리며 농을 던진다. 스페인은 가족문화가 중심이지만 연말만큼은 청년들끼리의 파티를 허용한다고 한다.
세르비아 구도심은 구불구불하다. 가이드님이 길을 잃으면 찾기 힘드니 잘 따라오라고 했다. 주택가 골목길에 관광객은 우리 일행만 있었다. 새해 이른 아침 9시에 관광지를 방문할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부지런한 한국인 관광객이다.
골목길을 걷는 재미가 있고, 지나면서 보는 건축물, 성당, 시청사도 하나같이 고풍스럽다. 세고비아에는 12~13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한 유명한 건축물이 많다고 한다. 골목 사이로 보이는 삐죽 내민 성의 모습도 예쁘고, 시청사 앞에 서있는 청동상도 중세의 스페인 왕국을 연상하게 한다. 여행 중 청동상을 많이 보았는데 누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청동상은 철이 많이 나는 스페인의 상징 같다. 무심히 척척 찍어도 분위기 있는 중세풍의 느낌이 살아난다.
알카사르 성을 찾아가는 중에 세고비아 대성당 앞을 지났다. 노란 황톳빛 성당 외벽이 아침 햇살을 받아 어여쁘다. 대성당의 외관 연한 노란색은 나무집으로 조각을 해 놓은 듯 예스러우면서 세련미가 있다.
앗! 그런데 하늘에 빨갛고 둥근 저것은 무엇인가? 원래 계획이라면 지금 저 하늘에 있어야 할 우리들. 열기구다. 막네가 스페인 여행을 추천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열기구에서 새해 첫날을 맞이하자고 했었다. 우리는 숙소와 세고비아의 거리 때문에 열구기 선택관광을 하지 못했다. 열기구를 타고 싶어 했던 우리 일행은 대성당 보기는 뒷전으로 하고 부러움과 아쉬움에 탄성만 질렀다. 아침해가 떠오르는 세고비아를 열기구를 타고 보았다면 무척 좋았을 것 같다.
세고비아의 대성당은 1525~1768년 고딕양식으로 건설되었다. 모양이 세련되어 ‘대성당 중의 귀부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부속 박물관에는 회화와 보물이 있으며 엔리케 2세의 아들 유아의 묘비가 있다. 유모가 실수로 아이를 창문에서 떨어뜨려 죽게 했다. 유모는 그 즉시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성은 예쁜데 슬픈 이야기다.
세고비아 골목길 투어
무심히 툭 찍어도 예쁜 골목길
세고비아 대성당
세고비아 대성당 위 새해 아침 열기구
세고비아의 알카사르성 Segovia Alcazar에 도착하니 우측으로 넓은 들판이 보였다.
알카사르는 성이라는 아랍어다. 알람브라 궁전에서도 알카사라 불리는 요새가 있었는데 세고비아에도 알카사르라는 성이 있다.
세고비아 알카사르 성은 고대 로마시대 요새가 있던 자리에 12세기 알폰소 8세가 성을 건축했다. 이 성에서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여왕의 즉위식(1474년) 있었다. 이사벨 여왕은 페르난도와 결혼한 뒤 이슬람세력을 몰아내고 스페인을 통합한 통치자이며, 콜럼버스를 후원한 왕이기도 하다. 스페인 전성기에 즉위한 펠리페 2세는 1570년 아나 데 아우스트리아와 이 성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성내부에는 왕들이 사용했던 가구와 유물, 갑옷과 무기, 회화등 각종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탑에 오르면 대성당과 세고비아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성은 세고비아 서쪽 시내를 끼고 흐르는 에레스마 강과 클라모레스 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성너머 강이 보인다. 성의 위치가 전경이 좋은 곳에 있는 것 같다. 이 성은 월트디즈니 만화영화 ‘백설공주’의 배경이 되었던 성이라고 한다.
백설공주가 어디에서 살았을까? 마녀 왕비의 방은 어디일까?
노란 황톳빛 외벽이 있는 직사각형 성에는 백설공주의 행복했던 시절이 보이고, 검은 지붕의 성은 마녀가 음침한 주문을 외우고 있을 것 같다. 검은 성에 갇힌 얼굴이 하얀 백설공주가 독사과를 먹고 어디선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백설공주 애니메이션에서는 초반부에 이 성이 등장한다. 백설공주가 청소를 마치고 우물 가에서 새들과 노래하고 있다. 백설공주의 노랫소리에 이끌린 왕자가 말을 타고 지나가다 성벽을 타고 넘는다. 깜짝 놀란 백설공주는 성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왕자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른다. 그 모습을 마녀가 음침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영화 장면을 떠올리며 잠시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본다.
대성당에서 보았던 열기구가 우리 일행을 따라와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우리들의 시선을 자꾸 끌었다.
연말연시 성은 문을 닫았다. 많은 가게들도 새해 첫날 문을 열지 않았다. 조용한 도심 속 골목을 걷는데 새해 아침 햇살이 골목으로 들어와 반짝인다. 열기구에 대한 아쉬움은 골목으로 비켜드는 아침햇살로 날린다.
백설공주의 성 알카사르 성
알카사르 성 앞 모습
세고비아 시내 모습
새해 아침 세고비아 햇살이 눈부시다
세고비아에서 2천 년 전 로마인을 만나고, 중세 유럽의 여왕을 만났다. 로마인도 되었다가 이사벨 여왕도 되었다가, 백설공주도 된 듯하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순간 이동을 하는 경험은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이리라. 2024년 새해 아침 세고비아. 잊지 못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