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6시, 인천 가는 비행기는 밤 12시. 비행기 탑승까지 18시간이 남는다.
이스탄불 힐튼 호텔에서 오전에는 휴식을 하고, 오후 두 시부터 이스탄불 여행을 시작했다. 항공기 결항에 따른 숙소제공은 항공사에서 하지만 여행경비는 별도라서 여행사에서 지불한다고 한다.
이스탄불은 여행 목적지가 아니었고, 항공기 결항으로 진이 빠진 상태라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 같았다. 일행 중 몇 명은 호텔에서 쉬겠다고 했고 나머지는 여행사가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새롭게 만나는 현지 가이드와 이스탄불 여행을 시작했다.
이왕 여행을 하기로 했으니 이스탄불 여행도 열심히 하려고 한다. 언제 이스탄불에 오겠느냐는 생각이다.
옆에 말도 하지 않고 다니는 남편이 신경 쓰였지만, 어쩌랴! 내 남편 내가 챙겨야지. 멀리만 두던 남편의 팔짱도 다시 끼고 말도 시켰다. 남편의 마음을 풀어주려 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내 마음이라도 풀고자 했다.
이스탄불 호텔 아침식사
이스탄불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님은 파란색 옷에 붉은 목도리를 둘렀으며 머리도 약간 길었다. 모습이 독특하여 한국인이 아닌 줄 알았다. 가이드님은 해외에서 40년을 살았고, 이스탄불에서 20년 정도 생활한 한국인이라고 했다. 가이드님이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것도 맞다. 가이드님 이야기를 들으며 이스탄불 여행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갖는다.
가이드님의 인사가 끝나고 튀르키예(구 터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나라와는 돌궐시대부터 연을 맺기 시작하여 지금은 형제의 나라로 불린다.
이스탄불은 튀르키예 북서부, 흑해 보스포루스 해협 어귀에 위치한다. 바닷가 근처 이어서인지 이동 중에 보니 갈매기가 떼 지어 공원이나 사원 주위에 많았다. 이스탄불은 BC 8세기경 그리스인이 비잔티움을 세운 곳으로 324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1세가 수도로 채택했으며 오랫동안 로마가 지배했다. 1453년에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1923년 오스만 왕국이 무너지고 튀르키예공화국이 탄생했다. 현재는 30년 독재정권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스탄불은 튀르키예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로 수많은 유적이 있다. 맨 처음 방문한 곳은 이스탄불의 그랜드 다자르 시장이었다. 19세기 시장으로 6천여 개의 상가가 모여 있는 거대 시장이다.
상점도 많고 관광객도 많았다. 가게 앞에서는 점원들이 호객행위를 했다. 다양한 가게에서 눈구경을 했다. 시장에서 살 때는 최대한 많이 깎아야 한다고 한다. 가능하면 사지 말라는 가이드님의 설명.
시장에서 눈구경을 하고 밖으로 나와서 군밤과 옥수수를 사 먹었다. 가이드님이 도와줘서 샀는데 노점상이 가격을 말할 때 처음과 돈을 지불할 때 달리 말했다. 약간의 다툼도 발생했다. 가이드님 말에 의하면 상인들이 관광객에게는 비싸게 받는다고 한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군밤 가격이 거의 두 배 차이가 났다. 잠깐의 경험으로도 이상했다. 가격정책이나 상거래의 도덕성 형성이 잘 안 된 듯하다.
경전철이 지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도시에는 사원이 많은지 멀리 종소리와 기도소리도 들렸다.
그랜드 다자르 시장 입구/ 블루 모스크 앞 갈매기/ 노점상
그랜드 다자르 시장 내부
그랜드 다자르 시장 잡화
그랜드 다자르 시장 주변
다음은 블루 모스크 Blue Mosque(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술탄 아흐메트 1세 사원)로 갔다.
오스만 제국의 제14대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지시 아래 건축가 시잔의 제자인 메흐메트 아아(Mehmet Ağa)가 1609년 착공을 시작해 1616년 완공했다. 일반적으로 이슬람 사원에는 4개의 미나레(첨탑)가 있지만, 블루 모스크는 6개의 미나레를 가지고 있다. 아흐메트 1세가 ‘황금(알툰)’으로 만들라고 했는데, 건축가가 ‘6개(알트)’로 잘못 알아들어서 6개의 첨탑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푸른색 돔과 황금색 첨탑, 회백색 타일이 조화를 이루며 매력적이다. 이슬람 신자들에게 이곳은 성지순례지이다. 모스크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여자들은 이슬람 여인들이 쓰는 두건을 써야 하는데 후드티 모자를 쓰거나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다. 여름에 민소매 티셔츠나 반바지 차림은 입장이 되지 않는다.
모스크 입구 앞에서는 신자들이 손발을 씻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신자가 아니라서 그냥 입장했다.
내부의 벽과 돔은 21,043장의 푸른색과 흰색의 이즈니크 타일로 꾸며져 있고, 250개가 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햇빛이 들어와 은은하다. 스페인의 성당의 색채는 원색의 아름다움이 있고 이슬람 사원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은은한 색채다. 붉은 카펫에 앉아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랍어로 쓰인 현판 글씨는 그림처럼 예쁘다. 기도실 제단이 있었는데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안내가 있었다. 이슬람교의 특색이 그대로 있는 사원이었다.
블루 모스크 외관
블루 모스크
블루 모스크
블루 모스크 내부 기도하는 사람들
블루 모스크 내부
아랍어 글씨가 예쁘다
블루 모스크 앞 손발 씻는 모습
블루 모스크 앞 공원을 지나며 인증숏을 남기고 성 소피아 성당(아야 소피아 대모스크)으로 이동했다.
성소피아 성당은 이스탄불에 있는 가톨릭 성당이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창건하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재건하여 537년에 완성한 비잔틴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1452년 이래로는 이슬람교 사원이 되었으며, 지금은 국립 박물관이 되었다. 1700여년전 성당이라니!
블루 모스크처럼 여러 개의 돔과 첨탑이 있으며 큰 돔은 검은색, 벽돌은 갈색이다. 성소피아성당도 두건을 써야 입장할 수 있다.
내부에 들어서니 천장에 황금색 천장의 장식이 화려하다. 지금은 티르키에 정권이 가톨릭을 인정하지 않고 성당을 훼손했다. 천장의 그림을 석회로 칠을 해 놓았고 성모마리아상을 하얀 천으로 가려놓았다. 종교가 정치적으로 탄압당하는 모습이 문화재를 대하는 관광객으로서 씁쓸하다. 여행 중 어느 곳은 종교가 정치를 탄압하고 또 어디는 정치가 종교를 탄압하는 모습을 만났다. 각자 서로를 존중하면 좋을 텐데.
출구에는 성 소피아 성당의 모자이크화가 있다. 이 벽화는 비잔티움 제국(330~1450년)이 멸망하자 석회로 훼손되었었는데 복원했다. 이 모자이크에는 성모마리아, 아기 예수, 고대 그리스어 등이 새겨져 있다. 모자이크화를 통해 당시의 예술적 감각과 역사적 배경, 종교적 특징을 알 수 있다.
블루 모스크 앞 공원
성소피아 성당
성소피아 성당 내부
하얀 천으로 가려진 성모마리아 상
훼손된 성 소피아 성당 천장
비잔티움 제국 벽화(복원)/ 기도실은 남자만 들어갈 수 있다는 안내
이스탄불에는 오벨리스크가 있다.
오빌리스크ὀβελίσκος(그리스어)란 뾰족한 탑이라는 뜻으로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 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탑이다. 탑은 4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피라미드처럼 끝이 뾰족하다. 오벨리스크는 신전 탑문 앞에 한쌍씩 건립했다. 중왕국시대에 파라오의 위엄을 과시하는 문장이나 모양을 새겼으며, 태양신 라 혹은 호르스 관련된 상징을 새겼다.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룩소르, 프랑스 콩코드 광장, 이스탄불에 있다. 프랑스와 이스탄불의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서 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이스탄불의 오벨리스크는 영화 벤허에서 전차 경주 장면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 한다.
이집트가 선물한 오벨리스크
이스탄불 날씨는 흐리고 바람이 불어서 추워졌다. 오벨리스크를 관람하고 나니 저녁이 되었다.
저녁을 먹고 이스탄불의 핫플 탁심 광장으로 갔다. 탁심은 도시의 번화가로 다양한 상가가 있었다. 밤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거리와 상가를 구경하고 백화점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했다. 커피 한잔에 3,300원 정도였다. 튀르키예 물가가 저렴하다더니 커피값으로 알 수 있었다. 튀르키예 리라 환율은 1리라가 42.78원이다. 튀르키예 여행을 하고 싶다면 지금 저렴한 가격으로 할 수 있다. 튀르키예에서는 유로 사용은 안되고 리라나 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이동했다. 밤 0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는 항공사에 문제를 제기할 법적 소송을 진행하는 동의서를 작성했다. 두 달여 기간이 다 되어 가고 있는 지금도 소송은 진행 중이다.
밤에 보는 블루 모스크/ 탁심 광장
탁심 거리와 밤을 즐기는 사람들
드디어 인천 가는 비행기 탑승
덤으로 얻은 여행까지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반가운지.
우리 집이 얼마나 편안한지.
김치찌개는 어찌나 맛있던지.
한 달 내내 김치만 먹고살아도 될 것 같다.
맨날 먹는 김치찌개가 더 맛있고 오막살이 집조차 더 편안하다.
삶의 휴식이었던 스페인 여행은 멋지고 아름답고 즐거웠다. 비행기 결항은 아쉽지만 그것도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