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작가의 <희랍어 시간>에 그는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나 이십여 년간 독일에서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한국에도 독일에도 스며들지 못한 그는 한국에 왔을 때를 이렇게 표현한다.
"....... 마침내 비행기가 인천 공항에 도착하고, 오랫동안 익혀 이젠 내 것이나 다름없어진 미소를 머금은 채 비행기를 빠져나왔지요. 누군가와 몸이 가까워질 때마다 실례합니다,라고 독일어로 말하고 싶었어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짓고 싶었어요. 입국장을 빠져나온 순간 깨달았어요. 가족이며 친구들을 마중 나온 한국 사람들의 사이를, 어깨로 헤치며 나아가면서....... 이제야 내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제 모르는 사람에겐 웃거나 인사하지 않는 문화 속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걸."
문화란 익숙해지면 자기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하다가도 낯설게 느껴지면 한없이 불편한 것이 없다.
10여 일 있는 동안 독일문화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고, 한편으로는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우리나라의 어떤 부분은 좋았지만 또 어떤 부분은 못 견디게 불편했다. 여행 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 독일 여행 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어떤 부분에서는 몹시 불쾌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살아갈 사람으로서 즐길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오늘도 우리 문화에 대해 익숙해지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점도 있다.
한국에서는 괜찮지만 독일에서는 주의해야 할 점 혹은 그 반대의 경우를 정리하면서 문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독일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 주의해야 할 점도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1. 식당 문화와 팁문화
우리나라는 식당에서 빈자리가 있으면 아무 곳이나 앉으면 된다. 그러나 독일식당에서는 아무 데나 앉으면 안 된다. 식당의 직원과 눈을 맞추고 자리 안내를 해줄 때 앉아야 한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설 때도 직원과 눈을 맞추거나 직원이 와서 식사를 마쳤는지 계산을 하겠는지 물어와야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나서 계산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직원을 불러서 계산을 하는 방식이 아니다. 직원을 부르는 벨도 없고, 직원을 불러서 계산하지않는다. 키오스크도 없고 식당에 앱으로 주문하지 않는다. 사람과 눈맞춤하고 직원이 계산한다. 우리나라처럼 키오스크나 앱을 설치하면 좋을 텐데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팁은 학생은 주지 않아도 되는데, 성인이라면 팁을 주어야 한다. 음식값의 5~20%를 팁으로 지불하면 된다. 보통은 5%를 주면 되고, 고급식당은 10% 정도 줘야 한다. 카드로 결제할 때 선택할 수도 있고, 현금으로 줄수도 있다. 팁을 주지 않을 수도 있는데, 식당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이다. 팁을 주지 않으면 직원 표정이 좋지 않지만 화를 내거나 다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2. 자전거 도로
독일에서는 자전거 도로로 다니면 안 된다. 자전거 도로로 가다가 사고가 나면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형식적으로 자전거도로가 형식적으로 되어 있거나 중간에 끊기는 경우가 많다. 자전거 인구도 많지 않아서 자전거 도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별생각 없이 자전거도로를 이용하곤 한다. 독일은 자전거 라이딩 인구가 많다. 기차나 길거리에서 자전거 탄 사람도 많이 만난다. 자전거 도로도 잘 되어 있다. 자유여행하면서 길을 걷는 일이 많은데 자전거 도로로 걷지 않도록 주의하자.
3. 대중교통 이용(지하철, 기차, 버스, 트램)
독일의 대중교통은 매우 편리하고 잘 되어 있다. 한 달 이용권을 구매하면 지하철 기차 버스 트램을 한꺼번에 전국에서 이용할 수 있다. 단 고속열차는 제외다. 노후화된 기차와 고속열차는 지연 혹은 결행되는 경우가 있으니 앱으로 수시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지하철 기차 버스 트램 모두 게이트가 없다. 앱이나 역에서 차표를 끊고 탄다. 지하철과 기차는 역무원이 차표를 검사한다. 차표가 없으면 기차표의 20배를 물어야 하니 무임승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독일 지하철과 기차, 트램은 열고 내릴 때 버튼이 있다. 우리나라처럼 운전사가 알아서 열고 닫지 않는다. 승객이 버튼을 눌러서 열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넋 놓고 있다가는 못 타거나 못 내릴 수 있다.
독일 운전자들은 잘 기다려주고 천천히 달린다. 도로에 트램과 자동차가 함께 다니는데 혼란스럽고 교통사고가 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트램이나 버스에서 사람이 내리면 자동차들은 사람들이 내리고 건널 때까지 기다려 준다.
무단횡단도 빈번하다. 건널목마다 신호등이 있는데 빨간불일 때 눌러서 바꿀 수도 있다. 차가 오지 않으면 그냥 건너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교통사고가 나지 않도록 주의는 필요하다.
4. 물
독일의 수돗물은 석회수가 많고 수질이 좋지 않다고 해서 먹지 않았다.독일인들이 수돗물을 먹는다는 의견도 있지만 우리는 수돗물은 먹지 않았다.독일 맥주가 발달한 이유가 수질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물갈이도 할 수 있으니 안전하게 사 먹는 것이 나은 것 같다. 물을 고를 때는 'still'이라 쓰여 있는 것을 골라야 한다. 혹은'natural'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물이다. 'sparkling'이라고 쓰인 물을 고르면 탄산수다. 마트에서 물을 고를 때는 탄산수가 아닌지 잘 살펴야 한다.
샤워할 때는 필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샤워필터를 며칠 사용하지 않아도 노랗게 낀 이물질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물이 깨끗한 나라는 없는 것 같다.
식당이나 숙소에 공짜로 물을 제공하거나 정수기가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물은 마트에서 구입하자. 마트에서는 1.25유로 정도이지만 식당에서는 3.5유로 정도로 비싸다. 식당에서 물은 사게 되면 커피나 맥주값과 비슷하여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맥주를 자주 마시는 나라이어서 그런지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술에 취한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독일여행 중 일 년에 마실 맥주를 거의 다 마신 것 같다. 독일에서는 낮술을 마시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고 손쉽게 맥주를 구할 수 있다. 최근 독일 관련 기사를 보면 젊은 층의 알코올 증가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독일에서 오래 생활해야 한다면 알코올 중독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5. 동성애 및 성문화
독일에서 동성애 결혼은 합법화되어 있다. 독일 퀴어축제는 대규모 축제로 많은 사람이 축제를 즐긴다.
최근 독일에서 입법부를 통과했다는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있어서 놀랐다.
독일에서는 부부가 성을 합쳐서 새로운 성을 만들 수 있고(우리나라에서 성을 합쳐서 이름을 짓는 것과는 다르다),14세 이상이 되면 법원의 허가 없이 자기 성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성을 선택하거나 성별 선택(남성·여성·다양·무기재)을 거부하는 것도 가능하다.
성별을 개인이 선택한다는 것은 생물학적인 성을 넘어서 사회문화적 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독일에서 인정되는 다양성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동성애에 대한 논란이 많고 여전히 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독일인들의 생활 속에서 동성애나 남녀평등 문화는 어떤지, 갈등은 없는지, 성차별, 성편견은 없는지 궁금하다. 단편적으로 보면, 식당에서 밥을 먹는 가족을 보았는데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가면서 아이를 돌보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았을 때 여성에게도 담배는 관대한 것으로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엄마가 아이를 안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면 쯧쯧쯧 혀를 찼을지도 모른다. 금연교육과 함께 떠오르는 생각이다.
독일 문화에서 자연 그대로의 몸을 사랑하는 독일인의 특징으로나체 사우나나 나체촌, 나체수영장은독일의 대표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관심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인지 직접 경험하지 않아서 알 수는 없다.
6. 부딪히는 것은 싫어
독일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것을 싫어하고 피한다. 독일에서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는 텅텅 빈 지하철이 아니고서는 사람들이 부딪히고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다른 사람과 부딪혀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다. 때로는 밀치고 들어가도 당당하기까지 하다.
독일여행 후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이런 점이다. 천만이 살아가는 서울과 일이십만이 살아가는 독일 도시와는 다르지만 서울 지하철에서는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미안하다고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워워~ 마음을 다스려 여기 서울은 인구 천만이 살아가는 곳이야. 이해해야지 이해해.' 하면서 다독인다.
추가로 걸어 다니면서 휴대폰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우리는 사람이 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부딪히지 않으려고 했으면 좋겠고, 혹시라도 부딪히면 미안하다고 말하자. 부딪힐 것 같으면 '실례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으면 한다.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는 행동에 대해서 예의를 표하는 문화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7. 여유로운 노후 생활
독일은 노인들은 꽤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보낸다. 최소 5년 이상 가입자로 연금은 65세부터 지급되며 소득 대체율은 실소득의 67% 수준이다.
거리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노인들도 많이 만났다. 건강해 보였다. 할머니들은 할아버지들에 비해서 더 친절했다. 물어보지 않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박물관, 전시회, 음악회, 연극 등을 즐기는 노인들이 많았다.
하루종일 카페에 앉아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종일 지나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도 있다. 노후가 여유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무료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 노인들 중에는 늘 어딘가 부지런히 이동하거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노후에 건강하고 활기차게 생활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의 노후를 생각하며 어떻게 늙어갈 것인지 생각해 본다.
필자가 보고 느낀 것은 독일 문화의 극히 일부분일 거라 여기고 문화에 대한 생각은 각자 사람마다 다르다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