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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늦깎이 대학원생

자서전 함께 쓰기 프로젝트

by 하민영

그녀는 정규 대학을 졸업하고 30대 후반부터 배우기 시작한 것이 많았다. 독서논술 지도사, 속독사, 경매 등을 공부했고, 대학에 편입하여 상담심리학을 공부했다. 삼십 대까지만 해도 공부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사십 대에는 자격증이 아니라 대학원 공부를 하려니 여러 고민이 들었다. 무엇보다 몇백만 원씩 하는 학비가 고민이었고, 다음으로는 대학원 공부가 꼭 필요한지가 의문이었다. 돈을 많이 투자하는 공부가 어떤 이득이 될지, 이후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자고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다. 미래 비전도 없이 무턱대고 공부를 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 '배움에 늦은 때란 없다'는 말은 머릿속으로는 이해하지만 현실에서는 따져보고 재보고 주저했다. 40대에 대학원을 시작하며 들었던 생각과 어떻게 극복하고 공부했는지 <딸아, 행복은 여기에 있단다> 내용을 소개해본다.


"실패는 고통스럽다. 하지만 최악은 성공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엄마도 마흔다섯 살에 대학원 공부를 앞두고 ‘너무 늦은 나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단다. 그런데 ‘궁하면 찾는다’라는 말이 있잖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치매 증상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였어. 치매를 어떻게 이해하고 돌봐야 할지 몰라 가족들이 우왕좌왕하는데, 엄마가 간호사라고 다들 나한테 전화를 하는 거 야. 뭘 알아야 말을 하지. 치매 어머니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모르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엄마도 할머니를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였어. 치매는 그간 접해보지 못했던 영역이었으니까. 그래서 공부를 생각하게 된 거였어. 그런데 고민이 되더구나. ‘내 나이가 대학원 공부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이 나이에 공부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라고 말이야. 그때 네 아빠가 이렇게 말하더구나. “할까 말까 고민할 때 해 보라고 했어.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 보고 후회하는 게 나아.” 그렇게 네 아빠 덕분에 엄마는 마흔다섯 살에 대학원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던 거란다.


대학원 공부가 쉽지는 않더구나. 그저 혼자 책을 읽는 것과는 매우 달랐단다.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수업에 익숙한데, 논문을 읽고 발표하는 수업 방식이 엄마한텐 너무 어려운 거야. 일단 논문 한 편을 이해하고 읽어내는 것도 힘들었어. 분명히 우리말인데 이해가 되지 않는 거야. 대학 때 이런 비슷한 숙제가 있었던 것 같기 는 한데, 그 시절엔 논문 한 편도 제대로 읽어본 기억이 없거든.

대학교수인 친구에게 연락해서 2시간 정도 개인 교습을 받았어. 개인 교습을 받고 나니 논문의 내용 중 반은 이해가 되고, 반은 이해가 되지 않았어. 그때부턴 혼자서 통계 관련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어. ‘논문 한 편만이라도 제대로 읽어보자’라고 마음먹었기 때 문이야. 지도교수님이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100편의 논문을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한 학기 동안 100편을 읽으리라’ 마음먹기도 했단다. 50편쯤 논문을 읽고 나니 논문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겠더구나. 스스로 알아가는 공부에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


대학원 동기 중 어떤 친구들은 교수들이 별로 해주는 게 없다고 불만이 많았어. ‘공부란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것’인데 말이야. 특히 대학원 공부는 본인이 얼마나 열심히 찾아서 하느냐에 달려 있거든.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는 일은 교수의 지도로 진행되지만, 대부분은 학생이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공부란다. 학문에 대한 철학을 새롭게 다지고, 연구를 위한 기초 작업인 논문 작성 기술도 익혀야 해. 한글과 영어 논문 읽기, 논문 프로그램 이용하기, 실험 및 통계 방법, 자료 조사 방법 등 추가로 공부해야 할 내용도 많거든. 이런 건 지도교수가 해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학생이 자율적으로 해야 하는 부분이지. 엄마는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였지만 열심히 해서 논문을 쓰고 대학원 과정을 마쳤단다. 긴 여정을 거치고 나니까 자신감이 생기더구나.


'공부할 때'란 '자신이 마음먹은 때'


공부하기 늦은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자신이 없거나 다른 일로 바쁘거나, 공부하기 싫어서인지 생각해 봐야 해.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서 핑계를 대고 있거나 새로운 도전이 귀찮아서일지도 모르니까. 용기가 부족하고, 게으른 것에 대한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단다. 중도에 포기하거나 잘못되더라 도 네 탓이 아니라 나이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어. 결과가 잘못되었을 때 자기 합리화를 위한 나약함의 다른 표현일지도 몰라. 자신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남의 도움만 바라는 사람도 있단다. 하지만 나이를 더 먹었다고 못 해낼 공부는 없단다. 어린 사람들 보 다 좀 더 노력이 필요할 뿐이야.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이 체력도 좋고 기억력, 이해력, 학습능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나이를 먹었다고 공부할 수 없는 것은 아니거든. 열심히 하다 보면 안 되는 공부는 없어.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다면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거나 절실하게 필요성을 느껴서인 경우가 많아. 그래서일까 나이 들어 시작한 공부에는 누구든 재미를 느낀단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공부를 하는 것이지. 그러니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면 무엇이든 언제든 시도해 보기를 바란다. 될 때까지 하다 보면 못 해낼 일이란 없으니까. 20대인 너는 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는 걸 기억하고.


까막눈 할머니의 소망


전북 군산에 사는 할머니들이 시 90편을 모아서 『할매, 시작(詩 作)하다』라는 시집을 발간했단다. 할머니들은 군산시가 2008년부 터 운영해 온 ‘늘푸른학교’에서 문해(文解) 교육을 받아온 ‘늦깎이 학생’이야. 평생 단 하루도 학교에 다녀 본 적이 없는 분들이지. 동생을 돌봐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다 보니 등교 첫날 아버지한테 끌려 나온 분도 있어. 평균 75세 이상의 할머니들인데 평생을 까막 눈으로 살아오던 분들이 학교에 다니고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거야. 글을 읽고 이해하면서 할머니들의 삶을 담은 시를 쓴 거란다.

시를 쓴 할머니 중 가장 나이가 많으신 분은 93세이신데, 90세가 돼서야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더구나. 배운 내용을 쉽게 잊 어버리지만, 공부하는 것이 기쁘다고 말씀하시더라. 마지막으로 할머니 한 분의 말씀이 엄마의 가슴에 남는다. “이제라도 공부해서 업어 키운 동생들한테 편지 한 장 쓰고 싶어.”





지금 돌아보니 사십 대 공부는 결코 늦은 때가 아니었다. 사십 대에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공부하고 도전하라고 말할 것이다.

육십을 눈앞에 두고 노후라는 인생의 도전 앞에 서 있다. 오십 대인 지금부터가 또 다른 시작인데 손으로 나이를 헤아리고 일의 성패를 가늠하며 주저하고 있다. 예전처럼 나이를 핑계 대며 실패할 것이 두려워 자꾸 뒷걸음친다.

백세를 사신 김형석 작가님은 육십 세부터가 청춘이라고 했다. 칠십 대가 되었을 때 오십 대를 바라보며 '오육십 대에는 무조건 배우고 익히고 도전해야 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십 대 딸에게 말하고, 사십 대에게 말했던 것처럼 오십 대 자신에게도 말해본다. "배움에 늦은 때란 없다"





#하나만 #라라크루

#딸아행복은여기에있단다_엄마에세이

#간호사무드셀라증후군처럼_간호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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