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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내 안에 백 년이 있다

자서전 함께 쓰기 프로젝트

by 하민영


'나는 건강한가?'


이십 대까지만 해도 감기 한번 앓았으면 하는 소원이 있었다.


서른네 살에 갑상선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무리 완치율 90프로 이상이고, 평균수명을 산다고 하지만 암진단은 마음을 꽤 흔들었다.

'내가 이 나이에 암이라니...'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믿지도 않은 신을 찾으며 암진단을 '신의 계시'로 여길정도였다. 직장을 그만둘 생각만 하던 때인지라 암진단을 '직장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마흔여섯에는 항아리를 씻다가 독이 깨져서 동맥파열과 정중신경 손상을 심하게 입었다. 감각도 둔하고 통증도 심했다. 평생 통증을 안고 살아간다면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했다. 직장에서는 병가 연장을 해줄 수 없으니 더 쉬고 싶으면 퇴사하라고 했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정년까지 다니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회복되지 않은 손으로 계속 일을 했다.


질병이 남긴 후유증과는 별개로 질병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했느냐에 따라서 다른 선택을 했다.





'나의 노화는 어떤가?


오십 대에는 '나는 건강한가?'라는 질문에 더해 '나는 얼마나 늙어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더해본다.

노화는 나이가 들면서 신체 기능이 서서히 퇴화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뜻하지 않은 질병이나 사고에도 심리적 충격이 크지만 노화를 경험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늙는다는 것은 단순히 현상이 아니다. 신체 기능이 약해지고 질병을 유발하며 가끔은 과거에 누렸던 어떤 부분을 잃기도 한다. 노화과정에서 질병을 얻게 되면 때로는 고통과 후유증으로 평생을 살아가야만 한다.


사십 대까지 아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오십 대에는 노화로 질병의 위험은 높아졌다. 젊을 때는 하룻밤만 자고 나면 가뿐하게 일어섰지만 지금은 일 년에도 수차례 아프기를 반복한다. 한 곳이 아프다가 나으면 다른 곳이 아프고, 또 다른 곳이 나으면 또 다른 곳이 아프다. 회복되었다가도 다시 재발하기도 한다. 반복되는 질병 상태는 면역력이 떨어졌다고도 하고 노화과정이라고도 한다. 다니는 병원도 한두 곳이 아니다. 마치 병원을 쇼핑하듯 이곳저곳 다닌다. 안 아프고 싶다. 정말.


노화는 이르면 이십 대부터 느낀다.

스물일곱쯤 되었을 때 거울을 보다 '이제 화장을 해야겠어. 맨얼굴로 다니면 안 되겠어.'라고 생각하며 처음으로 화장을 시작했다. 삼십 대에 아이를 낳고 늘어나는 기미와 탄력이 줄고 검어지는 얼굴을 보면서 그저 출산 탓이라고 여겼다. 그것이 노화였는데.


사십 대부터 조금씩 흰머리가 생겼는데, 어느 날 음모에 난 하얀 털을 보게 되었다. '와우~내가 늙고 있구나' 깜짝 놀랐다. 사십 대부터 안구건조가 심했다. 어느 날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노화과정입니다. 그냥 받아들이세요."라고 말했다. 의사가 환자에게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늙어감을 받아들여야 했다.


오십 대인 지금은 흰머리가 많아져서 머리를 염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머리만 하얘졌다면 좋을 텐데 노안이 심해져 가까운 것은 보이지 않는다. 안구건조증은 안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눈가에 주름은 애교지만 처지는 턱 근육과 팔자주름은 점점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목주름은 더 이상 감출 수 없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의 변화는 더 심하다. 갱년기가 와서 여성호르몬은 바닥에 이른다. 약을 먹기 때문에 그 마마 증상은 덜하지만 피로감, 홍조, 열감 등은 갱년기 여성들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증상들이다. 뱃살이 늘어나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아졌다. 점점 불어나는 체중을 감당하기 힘들다. 관절염이 와서 손가락이 자주 붓고 아프다. 발목과 발바닥, 무릎도 조금만 잘못 놀리면 통증이 온다. 허리는 자주 아프다. 피부 건조가 심해지고 가려움증도 생겼다. 피부건조와 사고의 후유증으로 감각도 떨어진다. 회음부 건조도 심해졌다. 변비도 잘 생기고 걸핏하면 방광염도 잘 온다. 재채기할 때나 밥을 많이 먹은 후 요실금은 사십 대에 치료를 해서 나아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가끔씩 있다. (*참고로 요실금은 노화와 상관없는 질병으로 치료받아야 할 질병이다.)

예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노화는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노화의 한가운데에 있다.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신체 변화는 정신에도 영향을 주고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노화는 처음에는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러다 차츰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계속 못 받아들이면 우울증이 오고, 받아들이면 늙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우울해하지 않는다. 진짜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노화는 사회경제 활동에도 영향을 준다. 직장에서 어떤 일을 예전만큼 빠르고 재치 있게 해내지 못한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경험했다. 노안이 오면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청력도 약해져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다. 둔한 감각과 민첩하지 못한 운동신경으로 행동도 느려진다. 젊었을 때 보았던 나이 먹은 상사나 부모님의 모습을 내가 하고 있다. 에휴 ㅠㅠ





내 몸의 역사는 오십여 년 이루어져 왔고, 지금의 내 몸은 앞으로 오십여 년을 이어갈 것이다. 내 몸뚱이에는 백 년의 역사가 공존하고 있다. 그동안 돌봄 받지 못하고 쓰기만 하고 살아왔으니 여기저기 아프고 고장 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부터는 내 몸에 감사하며 내 몸을 잘 가꾸어가야겠다. 질병에서 마음가짐에 따라 다른 선택을 했듯이 노화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여긴다. 내 몸에 찾아오는 질병과 노화를 건강하게 받아들이며 슬기롭게 극복해가려 한다. 아파도 건강하게, 늙어도 아름답게 살아가길.


나는 건강하고 싶다.

나는 건강할 것이다.

나는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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