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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삶의 조력자들

자서전 함께 쓰기 프로젝트

by 하민영

죽음을 앞두고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인지 물었을 때 많은 이들이 ‘사람’에 대해 말했단다. ‘사랑하는 가족과 더 많은 추억을 쌓을 걸’, ‘그때 그 사람에게 모질게 대하지 말 걸’, ‘아내와 여행이라도 다녀올 걸’, ‘일만 하느라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더 다정하게 대하지 못했어’ 이처럼 관계에 대한 후회가 가장 많다는 거야. 인간관계가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 아닐까?


인간관계에 갈등이 없으면 좋겠지만 늘 갈등이 없는 관계 맺기란 쉽지 않단다. 사람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갖기 때문이야. 아무리 가깝게 지내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단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살 수밖에 없는 거야. 가끔은 내 문제가 아닌 상대방의 문제일 수도 있단다. 그러니 너무 자신을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딸아 행복은 여기에 있단다> 중 -



인간의 삶에서 사람을 빼고 인생을 말할 수 없다. 출생부터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서로 영향을 미치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 안 좋은 쪽으로만 영향을 받은 것 같고 또 어떤 사람을 떠올릴 때면 좋은 영향만이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관계란 일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크든 작든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계가 이루어진다. 단지 어떤 이는 큰 영향을 미치지만 또 어떤 이는 미미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내가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여러 인간관계에서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할 수 있고, 나이가 들어서는 자녀가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이 커지며 역전이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부부는 서로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비등하다고 할 수 있다. 한쪽이 일방적인 힘의 우위에 서 있을 때는 기울기가 기울어지기도 한다. 친구 간의 관계도 부부관계처럼 동등한 관계여야 한다. 하지만 가끔 그렇지 못할 때는 관계가 깨지고 만다. 형제나 자매 관계는 어린 시절에는 부모와 자녀 관계처럼 위가 아래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만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일방적인 상하관계보다는 동등한 관계가 이루어진다. 직장 내에서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관계는 일방적인 관계처럼 보이지만 서로 존중해야 하는 평등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는 갑질이 된다. 갑질은 보통 상사에게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나 요즘은 그 역의 관계도 존재한다. 과거에는 거스를 수 없는 상하관계나 일방적인 권위가 존재했다면 근래에 들어서는 서로 존중하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관계가 대세이다. 나이가 어리거나 부하직원이다고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관계보다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좋은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어머니는 자신을 돌보지 않았으나 자식에게는 헌신적이었다. 어머니는 부지런하고 검소했으며, 생활력도 강하고 경제적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 헌신 덕분에 자녀들은 배울 수 있었고 결혼해서 기반을 닦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쉽게 화를 냈고 마음에 맞지 않으면 사람들과 싸우기도 잘했다. 가끔은 자식들 간 혹은 이웃 자녀들과 비교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들과 딸을 차별이 심했다. 특히 큰아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각별했다. 어머니의 노고에 대해 감사하고 어머니의 삶에 연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머니의 차별은 내가 못 견뎌하는 부분이었다. 딸이어도 부모에게 잘하는데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억울하고 서러웠다.


결혼하고 살면서 자주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곤 했다. 어머니의 영향권 내에서 한참을 벗어난 지금도 어머니는 내 삶에 영향을 미친다. 내 나이대에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는 힘든 시련을 어떻게 견뎠을까? 등의 생각을 하며 내 삶을 어떻게 살지를 생각했다. 긍정적인 면은 본받으려고 했고 부정적인 면은 따르지 않으려고 했다. 어머니로부터 배운 삶의 의지, 목표의식, 긍정성, 근면함, 검소함 등은 살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반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부정적 대물림의 사슬을 끊어내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아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긍정적인 언어로 훈육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부정적인 언어들은 뼈와 살, 혈액과 숨, 영혼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팔 년 정도의 지난한 노력 끝에 자녀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 따뜻한 공감과 부드러운 말투로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자유로워지니 딸과 어머니도 자유롭게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형제들은 이전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4남 3녀인 형제들 중에 심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의 롤모델이고 어린 시절 무척 따르며 좋아하던 언니는 지금도 여전히 본받을만한 삶을 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투닥투닥 자주 싸우던 오빠는 어느 시기부터는 가장 애정하는 형제가 되었다. 형제들 중 큰오빠와 큰 형부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가난하고 어려운 시기를 살다가신 두 분의 명복을 빈다. 남은 형제들은 다행히 갈등 없이 소소한 인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결혼하여 얻은 시부모님과 시형제에게는 원가족에서 받지 못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조카들까지 열네 명의 식구들은 아이들이 어릴 때는 매주 시부모님 댁에 모여서 춤추고 노래하고 담소를 하며 추억을 쌓았다. 여행도 자주 다녔는데 국내에서는 제주와 여수 여행을 갔고, 해외로는 중국과 네팔,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동서들끼리는 대학 선후배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 동서들끼리 가까워서 형제들도 잘 지내는 것 같다.


남편은 인생 최고의 선물이다. 무엇보다 남편과 결혼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남편 덕분에 내가 존중받고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무엇을 하건 지지하고 응원해 준 남편 덕에 용기를 갖고 도전한 일이 많다. 대학원과 책 쓰기는 남편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딸과 아들은 최고의 기쁨이다. 부모로서 준비가 부족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아이들은 넘치는 사랑을 주었다. 부족한 엄마는 마음과 달리 잘못된 말과 행동이 앞선 적이 많았다. 미숙한 엄마가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다. 아이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데 아이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가 되살아나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잘 성장해 준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내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처럼 나도 자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니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노력을 사는 동안 내내 해야 한다.


학교 동창 중에서는 친구관계가 지속되는 사람도 있고 연락이 끊긴 사람도 있다. 친구 들 중 한때는 죽고 못하는 관계였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멀어지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뜻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있다. 친구라고 부르기도 하고 동지라고 부르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지금도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그리운 사람도 있고, 지금은 이름과 얼굴조차 잊어버린 사람도 있다.


친구관계는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삶을 빛나게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다. 오십 이후의 삶에서도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오래된 친구가 있기도 할 것이다. 사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리라. 관계에 얽매이지 않지만 관계를 맺고 사는 동안에는 진심을 다하고 믿음을 쌓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앞으로 사는 동안 수많은 인연을 만날 것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러저러한 갈등을 겪기도 하고 길든 짧든 헤어짐의 시간도 있을 것이다. 인연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관계에 성실하게 임할 것이며 만남에 감사할 것이다. 크든 작든 모두가 삶의 조력자라는 것을 잊지 않으리라.




가족과 함께 본 무지개(2025년 추석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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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무드셀라증후군처럼_간호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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