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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드로 Dec 10. 2023

EP.0 이별의 원인과 깨달음

깨달음의 대가는 무엇보다 가혹했다.

그녀: "항상 희망고문에 시달려야 하는 나는? 이제 너무 지쳐.... 언제까지 이럴 거야?"


나:"미안하다..."


어느덧 헤어진 지도 3달, 친구와 통화를 하던 중 무심결에 녹음시작을 누른 것을 알고, 혹여나 그녀와의 대화내용이 저장되어 있지 않을까 해서 오디오파일을 검색해 봤다.

역시나, 있었다. 마지막 날짜는 8.1일. 위에 적은 대화내역이 마지막 통화내역이었다.


저렇게 통화를 하고 나서 강남역 카페에서 만나 마무리하자고 했으니, 마지막 통화내역이 맞았을 것이다.


베갯 속에 머리를 파묻고 짐승처럼 울었다. 정말 서글프게 눈물 없는 울음을 울었다. 너무 후회가 되었고, 너무 그녀에게 맞추지 못하고 살아왔고, 살아가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이제는 알았는데, 그녀를 힘들게 했던 내 안의 목소리가 유혹이었으며, 누구에게나 오는 유혹이 나에게는 이렇게 다가온 것임을 이제야 알았는데, 너무 늦게 알게 됐음이 후회됐다.


아직도 그녀가 입고 온 옷이 기억난다. 스트라이프로 색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니트티와 슬랙스와 그리고 스니커즈.


카페에서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죄인이라 유구무언 했던 걸까. 아니면 답이 없다고 느껴서 그랬던 걸까.


그녀는 "오빠랑은 결혼까지 생각했고, 결혼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빠이다. 헤어짐을 이야기한 것도 오빠다. 난 이제 오빠를 차단할 거고, 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거다"라며 떠나갔다.


너무나도 멍청했고, 1+1 = 2를 모르는 편이 차라리 더 똑똑해 보일 정도로 멍청하고 한심한 결정이었다. 난 그일 이후로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남들에게 난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살아왔다. 후회하는 것이 남들 눈에 한심하게 보일까 봐,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 편이 더 멋있어 보이니까.


그녀와 나는 3개월간 보지 못했다. 기간이 3년, 30년이 되지 않길 바라는 걸 보니 아직 난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나 보다.


후회한다. 그때 당시의 결정과 그 결정을 내린 나의 한심했던 판단력을 후회한다.


나는 26살에 군에서 전역하고 방황했다. 


2021년에는 2달 동안 수능을 보겠다고 이별, 2022년에도 수능을 보겠다고 이별, 2023에는 유학을 가겠다고 이별.


결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생각해 봤다. 내가 왜 그랬을까. 두려웠다. 남들은 번듯한 회사에 몸담고 살아가는데 학점은 좋지 않고 대학생활동안 쌓은 것도 없던 나의 미래가 두려웠고, 그 미래를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길에 끌렸다.


마치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경마장과 도박장에 이끌리듯이, 나 또한 그렇게 인생 역전의 꿈에 이끌렸다.


첫해에는 이건 아니다 싶어 포기

이듬해에는 도전해 보고 포기

세 번째 해에는 깨달음을 얻고 포기


그러나 깨달음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날 사랑해 주던 사람을 잃었다.


내가 얻은 깨달음은 "나 자신을 알라"였다. 나는 전문직을 진심으로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래야 아무것도 없는 나 자신이 무언가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으니까.


1%의 가능성에 빠져 99%의 불가능이 도사리는 골짜기로 들어간 꼴이다. 골짜기 밖으로 나오기까지 많은 고뇌가 있었다.


어떻게 나왔느냐고?


골짜기 밖의 빛 말고 다른 길에도 빛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직업 그 자체는 내 인생을 대변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내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과, 꾸준함이 모든 걸 이긴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내 삶은 어느 정도 변화했다.


일상을 기록하고, To_do List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변화는 서서히 찾아오기 시작했다.


막연히 두려웠던 대학원도 논문을 읽고 교수님께 컨택하고, 조교 아르바이트도 새벽에 꾸준히 일어나서 다니는 중이다. 지금은 인턴 합격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나이대가 쓴 글과 미디어에 잠식되어 살아간다.

 

나이가 30,40대가 된 사람들은 사람은 변한다고들 말한다. 사람이 변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드는데, 우리는 그런 시간을 아직 흘려보내지 않았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닐까.


나는 헤어지고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기도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바뀌기를

2. 그녀가 내 곁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돌아오기를

3. 만약 그녀가 그러지 않다면 그녀가 항상 행복하기를


아직까지 Youtube에서 재회주파수 따위를 찾으며 듣고 있는 걸 보니, 난 당분간은 이별을 받아 들지 못하려나 보다.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꿈에 그녀가 나왔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가, 이건 어차피 꿈이고 내가 눈을 뜨면 우린 여기서 사라져"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데, 내 안의 심장은 그녀를 사랑하는데, 내 머리가 그 사랑을 이별의 그 순간에 잠시 멈췄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목숨이 아깝지 않다. MBTI가 N이라 그런가. 지하철에서 우연히 그녀가 칼을 든 괴한을 마주하면 기꺼이 괴한의 칼에 대신 맞아주는 상상도 했었다.


이 글은 그녀와의 추억을 한곳에 담아두기 위해 작성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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