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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드로 Dec 10. 2023

Ep.03 내 열등감을 들키기 싫었다.

"더 있다간 내 지독한 열등감을 들킬 것 같아서"  -그해 우리는 中-

그녀:"오빠, 내 회사에서 리조트를 복지로 갈 수 있게 해 준대, 회사동료분 차 타고 같이 갈까?"


나:"음... 조금만 생각해 봐도 될까?"


직장인과 취준생의 간극은 좁혀질 듯하면서도 좁혀지지 않는 것 같다. 물론, 그녀는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오빠는 잘 될 사람이라고, 이대로만 노력하자며, 미래를 그려나가자고 했다.


나는 또 내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고, 주변사람들의 노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면 내 허영심에 내가 지쳐 쓰러진 것 같았다.


나는 내 주위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이 좋았다. 어쨌거나 내 주위사람들이니 그들이 잘 된 것이 좋기도 하였지만, 아무것도 없는 내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 뭐라도 된 듯싶었으니까.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 전문직 시험에 합격한 친구들, 번듯한 IT기업에 다니던 그녀, 그리고 나.


나는 민망하지만 그녀에게 자랑을 참 많이도 하긴 했었다. 그때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만약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듣기 싫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가 됐을 때, 그녀와 나의 간극은 벌어질 대로 벌어졌었고, 나는 ep.0에서 말했듯이, 한방에 역전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다.


비단 그녀와의 간극이 벌어진 것이 문제는 아니었다. 물론 그것이 문제의 시발점은 맞았지만, 간극은 마치 물에 잉크를 빠뜨린 것처럼 급속도로 다른 문제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표면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내 안의 문제였다. 한 번은 그녀가 강릉여행을 가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녀:"오빠, 나 강릉 가고 싶은데 같이 갈까?"


나:"강릉...? 진심이야..?"


그녀:"웅! 왜?"


나:"다른 사람이 강릉 가자고 했다면 절대 안 갔을 거야, 근데 네가 가자고 하니까 가자!

나 군생활을 거기 바닷가에서 해서ㅋㅋㅋ친구들한테는 지겹다고 하곤 했어"


그렇게 강릉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가기로 했으면 그냥 가면 될 일이다. 근데 나는 꼭 속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게 되었다. 그녀의 지인커플들은 남자친구가 차를 가지고 있거나, 렌트해서 가는데 난 뭘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날 집어삼켰다.


후에 위 고민을 들은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친구:"야, 나도 대기업 다니는데 여자친구랑 여행 갈 때 대중교통 잘 쓰는데 뭐 그런 걸로 신경 쓰냐, 신경 쓰지 마"


그렇게 친구들의 위로를 들으며 좀 괜찮아지는 듯했다. 아니,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심어진 열등감의 씨앗은 다시 자라날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녀의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만 열등감의 씨앗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분명 그녀의 지인들이 잘 된 만큼 내 주위사람들도 잘 되었는데 내 친한 친구들이 잘 된 소식에는 그저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것, 그뿐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지인이 잘되면 진심으로 기뻐해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해맑은 아이처럼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말하곤 했다. 그녀의 그런 순수한 면이 좋고, 웃는 모습이 아이처럼 예뻐서, 그 순간에는 열등감의 씨앗이 자라지 않았다.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홀로 집에 가는 길에 그 씨앗은 이때다 싶어서 이파리를 내밀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속의 씨앗은 점점 자라났고, 어느새 내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너무 촘촘하게 내 마음을 가둔 탓에 난 그것이 날 감싸고 있는 줄도 몰랐다.


열등감에 대해서 적는 이유가 나의 잘못된 세 번의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의 신뢰를 저버린 세 번의 결정은 나의 잘못이며, 내 영혼에 새겨진 낙인이다.


그저, 세 번의 결정을 내리게 된 여러 가지 이유들 중에 하나의 원인이었을 뿐이다.


-P.S-


이렇게 적고 보니, 연애를 하는 도중에 그녀에게 여러 가지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한 것들이 떠올라 괴롭기도 하다.


그런데, 너무 완벽함을 유지하면서 연애를 하려고 했다면 그런 모습을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든 게 처음이라 그랬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런 말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나 하는 말이지, 나는 그녀와 내 인생의 1/20을 함께했기에 나는 얼마든지 잘못된 점은 고칠 수 있었다. 고치지 못한 이유는 그녀를 어느 순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으니까.


별 이후로, 그녀의 소식을 어떻게든 확인하려는 마음이 날 유혹했지만 오늘은 그 모든 유혹을 뿌리친 날이다. 


그녀의 소식을 확인하려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녀가 새로운 사람이 생겼을까 봐, 한편으로는 그 두려움을 마주하기가 싫었고, 한편으로는 차라리 나도 빨리 포기하게 다른 사람 만난 소식을 들었으면 했다.


그렇게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든 난 그저 받아들이기로 한 듯싶다.


그런 말을 본 적이 있다.


"만나야 하는, 만나야 했던, 만날 수밖에 없던 사이였다면 언젠가 시간이 흘러서 만나게 되겠지"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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