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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드로 Dec 10. 2023

EP.04 게으른 완벽주의 남자친구

게으른 완벽주의 INFP

나:"이번에는 동물들을 위한 앱을 하나 만들어보려고!! 어때 괜찮겠지?"


그녀:"아이디어 좋네! 그래서 언제 만들으려고?"


나의 MBTI는 INFP이다.


I:Introversion(내성적인)


N:Intuition(직관적인)


F:Feeling(감정적인)


P:Perception(통찰력 있는)


구글링을 해보니 전체 인구의 4%에 불과한 성격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프피들이 집단활동에 녹아들지 못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한다.


나는 어떤 일을 집중해서 처리하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흐지부지된다는 의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우울한 느낌이 가득 나는 팝송을 들으며 작성을 하는 중이다.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처리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기는 하다. 대부분 이거 아니면 죽겠다,라는 지경에 오면 일을 폭발적으로 처리하는 편이다. 그런 때가 거의 없어서 그렇지...


최근 MBTI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주위사람들은 이제 MBTI에 관심이 사그라질 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인프피답다.


이 글을 에피소드 3편까지 쓰면서 많은 이야기를 한 듯싶어 어떤 이야기를 쓸까 고민하다가 나의 성격 또한 이별에 크게 기여(?)한 듯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적어볼까 한다.


그녀의 MBTI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그녀는 악바리 정신의 소유자였으며, 논리적이고 계산적인 사고에 유능하며, 현실적인 사람이었다는 거, 아마 E와 T와 J를 다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랑 상극이다.


하지만 자석이 그렇듯이 원래 다른 사람들끼리 끌린다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그래서 끌렸을 수도 있다.


그녀는 내가 전역을 하고 나서 가끔 결혼이야기를 꺼내고는 했다. 당시 나는 정말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었고, 군대에서 적금도 들지 않아서 부모님의 용돈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부담스러우니, 내가 자리를 잡고 생각해 보자 라며 미래에 대한 고민을 잠시 유보했다. 거기까지 하고 현실적으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면 뭔가 달랐을까.


이놈의 성격은 그게 안되나 보다. 나는 중간중간 뜬구름 잡는 소리로 그녀의 속을 박박 긁어놓았다. 대학원에 가서 유학을 간다고 하질 않나, 수의대로 유학을 간다고 하질 않나.


이제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면 마치, 결혼식 한 달 전에 좋은 투자상품이 생겼으니, 그곳에 결혼자금일부를 투자하자는 말과 무엇이 달랐을까 싶다.


겨우 운 좋게 붙은 국비교육도 중간에 그만두었다. 적성에 안 맞는 부분도 물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잘하는데 나만 뒤처진 듯한 느낌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힘들다고 그녀에게 말하긴 했지만, 말할 때도 현명하게 말했어야 했다.


나:"나 힘들어... 그냥... 너무 지쳐..."


그녀:"어떤 점이 힘든데? 해결해 보자"


그때는 서운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별을 하고 나니 그것이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 자신이어서 헤어진 듯이, 그녀 또한 그녀답게 대꾸해 주었을 뿐이다.


그녀에게 공감과 위로를 얻고 싶었다면, ~~ 한 점이 힘들다, ~~ 처럼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그 사람에게 맞춰 이야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고, 그렇게 조금조금씩 나 자신이 스스로 쌓아 올린 서운함의 벽이 그녀를 향한 마음을 막아버렸다.


얼마 전 까지는 재회를 간절히 바랐고, R=VD를 믿으며, 나는 된다,라고 재회를 정말 어찌 보면 믿고 있었다. 그녀가 이 글을 보면 기가 차네라고 생각할 정도로.


현실은 그녀는 다른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사랑을 할 수도 있고, 내가 여태까지 봐온 그녀로 판단하기에, 그녀는 충분히 누구든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나 또한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나는 어떤 걱정을 할 때, 상당히 세세하고 자세하게 걱정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녀가 여느 다른 커플들처럼 새로운 사람을 만나 손을 잡고, 입을 맞추는 상상까지 하게 되었다.


너무 아팠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아팠다. 뭐랄까, 눈물은 나지 않는데, 심장이 눈물대신 피를 흘리는 느낌이랄까.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내가 나를 극복하지 못해서, 내가 나임을 좀 더 빨리 받아들이고 나를 잘 알았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임을 이제 알았기에 너무 아팠고 아프다.


내가 나 다 운 것을 부정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내가 INFP임이 좋다.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릴 수 있는 것도, 운동을 하다가 달이 예쁘게 뜨면 잠시 이어폰을 빼고 달에게 홀로 기도하며 걸을 수 있는 것도, 별을 보며 그녀를 상상하며 걷는 것도, 내가 감수성이 풍부한 인프피라서 그렇기에 나는 내가 INFP성격인 것이 좋다.


단지, 그때는 내가 나 자신을 잘 몰랐기에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휩싸여 여러 가지 잘못된 판단과 행실을 한 것이 후회될 뿐이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내가 내 성격을 알고, 나의 단점을 알았다면 그 점을 보완하여 더 나은 미래를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내가 나임을 알고, 조용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내가 약속한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 기다림의 끝에 그녀가 있지 않아도 괜찮고, 내 지금의 삶이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녀가 내 기다림의 끝에 서있기를 바라며 매일 아침 기도하지만, 기다림의 끝에 그녀가 아닌 다른 존재가 서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전혀 다른 길이 펼쳐져 있을 수 있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멀리 바라보지 않고 3,4보 앞에만 보며 천천히 걸어가는 중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혹시 본인의 삶이 너무 힘들다면 지금도 괜찮아,라는 말을 되뇌며 하루를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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