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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드로 Dec 10. 2023

EP.02 갈등의 시작

그놈의 테슬라

나 : "난 이 사람 싫어, 왜 이 사람이 너한테 하는 행동을 내버려 두는 거야? 네가 이 사람에게 경고했다는 말, 난 믿지 못하겠어"


그녀:"난 이 사람한테 경고했고, 그 이후로 이 사람도 조심하고 있어, 원래 그런 사람이야. 내 인간관계도 소중해"


나는 2019년도에 공군으로 입대했다. 친구가 육군으로 전역했는데, 정말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고 자기는 너무 스트레스받는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육군 만은 피하고 싶었다.


다른 친구 한 명은 의경(현재는 폐지됨)으로 입대했는데, 난 의경시험에 합격하지 못해서 공군 입대를 결정했다.


나:"헌병으로 지원하면 휴가도 많이 받는다고 해, 가서 자주 나올게, 사랑해."


내가 입대를 하는 2019년 8월, 그녀는 학교에서 보내주는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미국으로 떠났다.


훈련소에서의 5주가 끝나고 내 본격적인 군생활이 시작되었다. 밤낮없이 돌아가는 근무가 심장에 무리를 일으켜서였을까. 나는 증상을 보고하고, 일과제 근무로 배정되었다. 몸은 편한데, 근무시간은 좀 더 긴 보직. 그래도 좋았다.


순식간에 일병이 지나가고, 어느덧 상병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OOO상병님 필승!" 소리를 듣자니, 군생활이 점점 빠르게 지나갔다.


일말상초라는 말이 있다. 일병 말, 상병초에 대부분의 군인커플들이 이별한다는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불안감이 엄습했다. 2019년도에는 모든 병사들이 일과 후에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었고, 나는 상병이었기에 일과 후 핸드폰사용에 대해서는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별스타그램에서 그녀의 사진을 보던 중,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떤 한 남자가 그녀의 인스타의 댓글, 게시물마다 죄다 좋아요 표시를 누르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촉'이라는 것은 여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자의 촉도 무시할 순 없다. 짐승의 본능에 가까운 촉같은 느낌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 남자의 게시물에 들어갔다. 군대 내에서는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았는데, 사진을 보자마자 친한 후임에게 흡연장에 가자고 했다.


후임:"무슨 일이십니까?"


나:"... 하... x 같네.... 야, 너 여자친구 남사친 많냐?"


후임:"없습니다. 남자친구가 걱정할 일은 안 만드는 사람이라"


나:"내가 남사친이 신경 쓰이는데... 내가 과민반응일까?...(자초지종 설명)"


후임:"충분히 신경 쓰이실 것 같습니다. 신경 쓰인다고 말하십시오. xxx상병님 전역도 까마득한데 스트레스받아서 되겠습니까ㅋㅋ"


나:"그래... 말해야겠지... 근데 너 며칠 남았냐?ㅋㅋㅋㅋ"


그때는 신경이 많이 쓰였다. 이곳저곳 좋아요 남발하는 것도, 귀여운 말투 쓰는 것도, 그녀와 단둘이 사진을 찍고 자기 게시물에 올리는 것도 역겨웠다. 군인이어서 그랬을까. 정말 죽여버리고 싶었다. 다시는 내 눈에 안 띄었으면 했다.


"휴가 다녀오겠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했던가, 나는 겨우 휴가를 모아서 나올 수 있었다. 휴가를 나와서 그 남사친에 대해서 대화를 많이 했다.


대화를 하게 된 배경은 이랬다. 그녀와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왔다. 하트가 그려진 이모티콘이었다. 그때 나는 욕은 하지 않았지만 폭발했다.


나:"이게 지금 말이 되는 상황이야? 핸드폰 줘봐, 떳떳하면 네가 한번 보여줘 봐"


그녀:"보여줄 수 있어. 근데 이거 보면 우린 헤어지는 거야"


나:"......."


결국 우리는 서로 묵혀왔던 감정을 터뜨렸고, 나는 근처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마무리짓자고 말했다.


나:"도저히 못 참아주겠어. 왜 너의 인간관계만 중요하고 내 감정은 중요하지 않은 거야? 난 네 감정이 최우선인데 왜 넌 날 미뤄놔?"


그녀:" 내게 얼마 없는 소중한 인간관계야. 오빠는 오래된 친구들이 많지만 난 이사를 자주 다녀서 오래된 친구들이 없어. 같이 미국에서 지내서 이 사람들은 내게 소중해. 난 양보 못할 것 같아"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고 내가 이 상태로 부대에 들어가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부대에서 종종 사건사고가 일어나는데, 솔직히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다 알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손쉽게 총, 실탄에 접근할 수 있고, 하다못해 공포탄으로도 사고는 일어난다.


그때, 그녀가 한 번만 더 믿어달라며 부탁했고, 나는 그 남사친을 싫어하는 것과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감정은 별개의 것이고 후자의 감정이 더 소중했기에 나는 그녀를 한 번만 더 믿어보기로 하였다.


그 이후로도 그 사람 또는 그녀의 남사친들은 내 신경을 종종 건드렸다. 큰 일도 있었고, 작은 일도 있었다.


정말 친구들이 이걸 넘어가냐, 이걸 어떻게 믿어주느냐,라고 말할 법한 일도 그녀를 믿고 넘어갔다.


지금에 와서는 그게 믿은 건지 모르겠다. 그때의 심정은 '그래, 난 널 믿는다. 하지만 네가 만일 거짓말한 것이라면 꼭 그에 대한 벌을 받길 바라'라는 마음이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던가. 점점 기억이 옅어져 갔고, 나중에 가서는 단순 해프닝으로 남았다. 내 마음에 난 상처는 아물었지만, 흉은 남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근데, 더 이상 아프지 않으면 우리는 흉 진 것은 자주 쳐다보지 않으니까, 괜찮았다. 상처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남사친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내가 멍청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그녀가 신경 쓰인다고 말한 사람은 그 사람에게 직접 얼굴을 보고 더 이상 우리 연락할 수가 없다,라고 말하며 인연을 끊었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래, 예의. 나는 그녀에게 이건 매너와 예의라고 자주 말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시간 앞에 영원한 것이 없듯이 나의 질투와 그녀의 남사친들에 대한 감정도 점점 사라져 갔고, 우리는 우리의 끝에 이르러서는 행복한 연애를 이어나갔다.


-P.S-


만일 이 글을 남사친, 여사친을 유지하며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본인들이 본인 같은 사람을 만나기를, 그것이 아니라면 한 번쯤 자신을 뒤돌아보기를 바란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지금은 그저 한순간의 장면으로 머릿속에 있는 기억이지만, 나는 그때에는 지금이 글에 차마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나는 내가 힘든 것을 잘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생각 없이 웃는 걸 좋아하는 INFP라 그런가. 하지만 그때는 감정적으로 분명 지친 상태였다.


감정이 체력이라면, 아마 헬스장에서 3시간 동안 운동하고 2시간 동안 비 오는 날 무거운 가방 메고 집에 걸어온 정도? 그 정도로 내 감정은 바닥나있었다.


글을 쓰기 시작 한지 3일 차, 아직도 그녀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지 그녀와 갈등을 겪었던 이야기를 쓰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이 기억도 그녀와의 기억의 일부분이니까.


다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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