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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제 Mar 02. 2023

예비시부모님께 첫인사드렸던 날

안 다투고 어떻게 살아요?




결혼을 결심하고 남편의 부모님을 뵈러 갔던 날이었다. 아직 내 세대까지는 부모님들이 고지식한 면을 갖고 계신 경우가 많은데 아버님과 어머님의 첫인상은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어머님은 나를 아주 많이 반가워하시고 좋아해 주셨다. 남편보다 나이가 많은 것에 대해서도 딱 이 정도 차이 나게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자신의 바람대로 되었다며 말씀하셨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만 철없어 보이는 아들에게 연상이 딱이라 여기셨던 것 같다. 그렇다고 아주 많이 차이 나지는 않고 적당하게 차이나는 정도를 원하셨던 것 같다. 내게 질문하시는 것들은 드라마에서 봤던 것과 비슷했다. 사는 곳은 어딘지,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지,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지 그 외 등등.. 대화를 나눠보니 어머님은 가족애를 중요하게 여기셨다.


어머님께서 손수 차려주신 음식은 정겨웠다. 마치 우리 엄마의 식탁을 보는 것 같았다. 화기애애한 대화와 맛있는 저녁식사까지는 좋았지만 식사를 모두 마치고 나니 한가득 생긴 설거지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때부터 시집살이를 호되게 당하는 엄마를 보며 자라왔던 나는'시집살이는 절대 하고 살지 않을 거야.'하고 생각했었지만 현실을 마주하니 갈등이 됐다. 갈등이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가정교육으로 생긴 나의 마음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대가족으로 살았던 우리 가족은 어른 공경을 중요시 여겼다. 가족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잡다한 뒤처리를 나 혼자서 하게 되는 상황은 겪고 싶지 않았는데 이걸 시집살이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지만 내 엄마는 아니더라도 내 또래의 우리 엄마 같은 분인데 혼자 일을 하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비워진 그릇들을 싱크대에 옮기는 일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어머님은 그만 두라며 등 떠밀듯이 나와 남편을 손님방으로 보냈다. 조금이라도 겪고 싶지 않았던 시집살이와 내 마음에 기본으로 장착된 어른 공경, 두 마음속에서 불편했는데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남편은 아무것도 거들지 않는 것이 익숙해 보였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참 다행이다 싶었던 것은 남편은 내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아빠는 하지도 않으면서 엄마에게 떠밀어서 엄마 혼자 고생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남편은 무상무념이었다. 집을 가보면 그 사람을 더 잘 알게 된다고 하던데,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눈에 더 들어오게 됐다. 남편이 이러니 오히려 어머님을 도와드리는 것에 거부감이 덜하게 됐다. 내 선택에 의해서 행하는 일이니 말이다. 어머님은 잠시 뒤에 방으로 직접 과일을 가져다주셨다. 드라마에서는 인사드리러 가는 예비 며느리가 과일을 깎는다는데 내가 마주한 현실은 예쁘게 깎아진 과일 접시였다. 인사드리는 과정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아마 어머님께서 내가 불편하지 않게 해 주셨으리라. 과일을 다 먹어갈 때쯤엔 '이제 집에 가겠구나!' 생각했지만 어머님만 따로 방에 오셔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질문을 하셨다.


"안 다투고 잘 살 수 있겠나?"


질문을 듣고 3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곧장 대답하고 싶었지만 질문이 애매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평생 안 다투고 살 수가 있나? 그러진 못할 것 같아서 "네. 그럼요."하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다퉈도 괜찮아요. 잘 화해할 수 있어요."


어머님은 활짝 웃으시며 "그럼 됐다! 결혼해서 잘 살아라." 하며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정겹게 말씀하셨다. 이것으로 시부모님께 인사드리는 과정은 모두 끝이 났다. 어영부영 "네~"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해서 마음이 편안했는데 마침 어머님께서 얼마나 좋아해 주시던지, 아직도 어머님의 표정이 기억이 난다. 그때 했던 대답과 마찬가지로 남편과 나는 아주 가끔은 다투고 산다. 하지만 다툴 때마다 깊은 대화를 진지하게 하는 기회가 주어져서 한결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게 됐다. 실제로 여러 번 다퉈봤던 부부보다 한 번도 다투지 않다가 딱 한 번 크게 다투는 부부의 이혼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이런 것을 봤을 때 다투는 것에 좋은 점이 있었다. 바로 대화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간다는 것이다. 대화하는 방법이 다툴 때마다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에 큰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대화로 풀어내게 된다. 이런 과정들을 겪었지만 우리 부부는 여전히 노력형이다. 아마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도 인생을 배우며 살지 않을까 싶다. 그때 어머님께 자신감 있게 대답했던 것처럼 매번 정석대로 잘 화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형이니 반은 해내고 있다.


나중에 남편에게 듣게 된 말로는 시부모님은 다투지 않는다고 하시더라. 지금껏 다투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놀라서 “정말?!” 하고 되물으니 어머님은 아버님께 화를 잘 내시고 아버님은 화를 안 내셔서 다투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 화내는 상황이 펼쳐진다고.. 이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안 다툴 수 있냐고 묻던 어머님이 일방적인 화를 내는 분이셨다니! 시어머님이 고생한 우리 엄마 같아서 더 챙기게 됐었는데 아버님도 많이 챙겨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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