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배려로 시작됐지만, 나의 배려가 필요한 때
사람들은 간혹 자신이 그렇기에 남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이 착각은 배려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아무렇지 않게 하는 무심한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보이는 느낌만 다를 뿐, 어쩌면 시작점은 같다.
잠에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들던 나는 잠귀가 어두웠다. 아기 때부터 잠이 유독 많았다는 나는 커서도 잠이 많았다. 밤에만 자는 것이 아닌, 낮이건 밤이건 졸리면 잠에 빠져들었다. 여섯 살 땐 부모님 손을 잡고 길을 걷다가 잠든 기억이 난다. 잠에서 깨고 보니 집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때는 집에 놀러 온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잠에 들곤 했다. 깨보니 친구는 이미 가고 없었다. 밥을 먹다가 잠이 쏟아져서 입에 시금치를 가득 머금고 잠든 적도 있다. 유독 잠을 참기 어려워하고 한번 잠들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가끔 잠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 펼쳐지곤 했다. 가족들이 열쇠 챙기는 것을 깜빡하기라도 하면 내가 잠들어있지 않길 바라야 했다. 한 번은 몇 시간 동안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가족들이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와야 했다. 초등학생, 중학생 때는 알람이 울려도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안 해서 어머니께서 항상 깨워주셨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생체리듬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신기하게도 고교 시절부터는 아침이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학교와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됐지만 스스로 일어나 새벽녘 지하철 첫 차를 타고 등교를 했다.
남편은 한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직장인이었다. 아침이 되면 알람을 듣고 벌떡 일어나 씻으러 간다. 남편에게 지각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남편의 알람은 다소 시끄럽고 소리가 컸다. 하지만 시끄러운 알람이 나의 잠을 깨울 수는 없었다. 비몽사몽 한 내 정신 속에서 알람은 아주 작게 들렸다. 난 곧장 깊은 잠에 다시 빠져들곤 했고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찍 잠이 깨게 됐다. 그리고 마주한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남편은 내가 잠이 깰까 봐 방의 불도 켜지 않은 채 스킨, 로션을 바르고 서랍에서 드라이기를 찾아 가장 약하게 해 놓고 머리를 말렸다. 하지만 드라이기를 약풍으로 쓴다고 해도 위잉 거리는 소리가 작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난 지금껏 남편의 드라이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했던 것이지만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배려였던 것이다. 남편은 조심스럽게 행동하면서도 쥐 죽은 듯이 자는 내가 참 신기하다고 했다. 가끔 불을 켜야 할 때면 "잠깐 불 켤게." 하고 말하며 불을 켜지만 이 역시 내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고 난 곧장 깊은 잠에 빠져들곤 했다.
남편이 빛에 민감한 것은 신혼 초부터 조금씩 느끼게 됐다. 하지만 처음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내겐 다소 바른생활의 정석처럼 보이던 남편은 밤 11시만 되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내가 핸드폰 화면이라도 켜서 보면 "이제 자야지.."하고 말했다. 잠을 자라고 권유하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알겠어, 조금만 보고 잘게."하고 말하면 획 뒤돌아 이불을 뒤집어썼다. '부부라서 같은 시간에 동시에 자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같이 안 자서 삐지는 걸까?' 나의 추측 속에 물음표가 둥둥 떠다녔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남편은 "핸드폰 불빛!" 하며 말했다. 그제야 불빛이 잠에 방해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불을 뒤집어쓰는 건 삐지는 것이 아닌 불빛을 막는 행동이었다. 예상하건대 배려심 없게 느껴지는 나의 행동에 약간은 불쾌하지 않았을까 싶다. 난 그때까지 남편이 핸드폰을 보고 있건 졸리면 먼저 잤다. 하지만 남편은 조용하고 어두워야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인 것이었다. 현실을 자각하니 무드등이 떠올랐다. 어둠이 무섭던 나는 무드등을 참 좋아했는데 결혼한 후에는 남편 덕분에 밤이 무섭지 않았다. 무드등의 필요성이 사라지긴 했지만 불빛이 따뜻하게 느껴졌던 무드등을 다시는 켜고 잘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로맨틱하고 세심하게 느껴지던 남편이었는데 내게 해주던 배려가 사실 자신이 그것들에 민감하기 때문 이라니!
남편은 자신이 그렇기에 나도 그럴 것이라 여기며 배려했겠지만 그런 배려는 사실 내게 필요 없었다. 나는 불빛이 있어도 잠에 들 수 있다. 게다가 내가 남편이랑 한 침대에서 잘 수 있는 이유는 잠귀가 어둡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남편은 코를 많이 곤다. 하지만 잠에 들 때도 방해되지 않으며 잠에 든 후에도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방해되지 않는다. 코골이 때문에 각방 쓰는 부부가 많다고 하는데 우리가 각방을 쓰지 않는 것은 순전히 나의 잠귀가 어둡기 때문이다. 잠을 너무 잘 자기에 이런 사소한 것들이 불편을 야기하는지 알지 못했었는데 이 사실을 안 이상 나의 배려가 필요하게 됐다. 밤에는 남편이 잘 수 있도록 모든 불을 꺼야 하고, 남편이 자려고 하는 타이밍에는 스마트폰 화면이 켜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소음이 울리지 않도록 취침모드나 무음 모드로 전환시켜 놓는 것도 필요하다. 주말에 남편이 늦잠이라도 잘 때면 수면에 방해되지 않도록 집안을 시끄럽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혼 연차가 흐를수록 나의 잠귀가 어두운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남편은 현재 드라이기를 강풍으로 해놓고 머리를 말린다. 그리고 잠에 있어서는 내게 예민함이 없는 것을 알았기에 불을 켜고 물건을 찾는다. 남편의 행동에 조심성이 빠진 반면, 나의 행동에는 조심성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방에 불을 켠 것도 아니고 자그마한 스마트폰 화면 불빛인데 이게 그렇게 잠에 방해가 될까?' 의아했다. 하지만 드라이기 강풍 소리에도 잠이 깨지 않는 나를 신기해하는 남편을 보니 '이게 이 사람에겐 신기한 거구나.'하고 나와 다른 부분을 수긍하게 됐다. 결국 나의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 됐지만 그렇다고 불편하지는 않다. 일찍 자면 좋은 것이고, 잠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보는 습관은 좋지 않으니까. 어쩌면 건강한 습관을 갖게 해주는 내 남편이다.
이렇게 우린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행동했고, 이제는 서로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행동한다. 배려라고 하는 행동도 자신의 관점에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나의 관점보다 상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야 진짜 배려를 할 수 있게 된다. 또, 자신의 관점에서 배려해 놓고 배려했다고 생색내는 것이 어쩌면 상대방에겐 '그게 뭐 어때서?' 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남편은 생색내지 않았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일화였다. 내겐 필요치 않은 배려였지만 생색내지 않아서 더 스위트해 보이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