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새로 이사한 집은 동남향이라 이른 아침부터 따뜻한 햇살이 내리쬈다. 남편의 아침을 챙겨주기 위해 거실로 나오면 밝고 찬란한 빛과 마주했다. 주황색의 강한 빛은 아름다웠지만 눈을 찡그리게 만들곤 했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사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몇 년간 남편의 식사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었다.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됐고 따뜻한 햇살과 함께 아침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행복이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맞이한 평범한 주말 아침이었다. 결혼하기 전에 요리라고는 할 줄 아는 몇 가지가 전부였던 내가 식사를 준비한들 뭐 얼마나 거창하겠는가. 맛없기만 해도 다행인 것이다. 그래도 나름 식사다운 식사를 준비한다고 요리 어플을 보며 매번 색다른 음식을 만들어냈다. 남편은 항상 맛있다고 말해줬다. 정말 맛있는지 맛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먹기엔 맛있었다. 그래서 항상 으스대며 말했다. "엄마가 요리를 잘하면 딸도 잘한데도, 하하" 이렇게 겸손이라곤 모르고 우쭐대는 내게 남편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주 보며 함께 하는 식사는 우리에게 행복이었다. 드디어 건강을 회복하고 신혼부부 다운 식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니까. 우리 부부에게는 기념적인 일상의 시작이기도 하니 그에 걸맞게 예쁜 그릇들을 샀었다. 그릇을 고르기 위해 얼마나 심사숙고했었는지, 메뉴가 초라해도 그릇 덕분에 빛을 발하는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릇을 구입할 때 세트로 구입하지만 내가 산 그릇들은 가지각색이었다. 같은 그릇이 한 개도 없었다. 모두 개성 있고 용도가 정해져 있었다. 요리를 직접 해서 함께 하는 식사가 이만치 내게 아주 특별하고 의미가 깊었던 것이다.
몸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았을 것이다. 요리가 얼마나 재밌던지, 거기다 맛까지 있고 남편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보람 있었다. 행복감에 젖어있는 내 모습은 남편의 눈에도 들어왔을 것이다. 이런 내게 보답을 해주고 싶었던 건지 집안일에 관심도 없던 남편이 설거지에 나섰다. 하지만 남편은 주방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바로 사고를 쳤다.
"쨍그랑"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하나뿐인 내 그릇!!'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조심해야지! 그릇을 깨뜨리면 어떻게 해!!" 다그치는 말을 내뱉었다. 내가 얼마나 그릇을 고심하며 골랐는지 알고 있는 남편이기에 미안하다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당신, 그릇이 나보다 더 소중해? 내가 다치진 않았는지 걱정은 안 돼?"였다. '아차' 싶었다. 내가 느끼는 행복은 직접 요리를 해서 함께 하는 식사였지, 그릇자체가 아니었다. 그릇은 단순히 필요에 따른 용도였다. 순간적으로 내뱉은 나의 말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내가 느낀 행복이 그게 맞았나? 내가 왜 그렇게 말했지? 부끄러운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되니 얼른 수습하고 싶어졌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남편을 안았다.
"미안, 안 다쳤어? 내가 생각이 부족했어. 그릇 깨져도 괜찮아. 저거 없어도 돼!"
"서운해.. 나 진짜 서운했다고.. 나 안 다쳤어.."
내가 몸이 아파 남편에게 이해를 바라왔던 순간들이 마음속에 스쳐 지나갔다. 생각해 보니 남편은 물건으로 나에게 뭐라고 한 적은 없었다. 반면 난 물건에 의미부여를 더 많이 해왔던 것이다. 하나뿐인 내 그릇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도 하나뿐인 내 남편인데, 물건이 뭐가 대수겠는가? 이렇게 생각이 드니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물건에 의미 부여하는 것이 지나치면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잊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남편과 나는 직접 그릇 매장을 찾아 새로운 그릇을 구입했지만 각기 다른 개성 있는 그릇이 아닌, 똑같은 그릇 여러 개를 사 왔다. 그리고 같은 그릇에 담아 식사를 했다. 쌍둥이처럼 같은 디자인의 그릇들이지만 여전히 우리 부부의 식사에 도움 되는 예쁜 그릇이었고 함께 하는 식사는 여전히 맛있었다.
때때로 부부들은 이처럼 사소한 것으로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살아가는데 그것은 사실 아무 의미 없다. 그저 내 마음속에 의미 부여하며 만들어진 규칙이나 규율이 존재해서 불편할 뿐인 것이다. 이것은 많이 만들어낼수록 생활 속에 제한이 생겨난다. 그 제한들은 상대방과 부딪히게 만들지만, 상대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뭐든 다 해주고 싶고, 신경 써주고 싶었던 때를 떠올려 보라. 그릇이 뭐가 대수겠는가. 깨져서 없어지면 새로운 그릇을 구입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와 경험을 안겨준다. 그리고 가지각색인 그릇들 사이에 짝이 맞는 디자인의 그릇이 껴있게 된 것도 추억이 된다.
요즘도 가끔 마음이 불편해질 때면 생각해 본다. 그게 정말 상대방을 비난할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더라.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잊게 되면 소중한 것을 잃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기 전에 경험으로 알게 해 준 남편에게 참 고맙다. 결혼이란 역시 해보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