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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Feb 20. 2023

영국의 구상화가 프랜시스 베이컨

<삼면화> 탐구 및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 연구>

영국의 표현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 그는 천식으로 고통받았고, 이로 인해 학교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으며, 마구간 소년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동성애적 성향이 싹텄고, 열여섯 살 때 어머니 속옷을 입어 보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그날로 집에서 쫓겨났다. 1927년 파리의 피카소 전시회를 보고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33년 런던의 메이어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에 <십자가에 못 박힘>을 출품하여 처음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스티븐 파딩, <501 위대한 화가>) 미술사학자 허버트 리드가 카탈로그에 피카소의 <목욕하는 여인>을 나란히 수록하여 그 연관성을 칭찬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듬해 개인전을 추진했으나 엄청난 혹평과 마주쳤다. 결국, 15년 동안 그렸던 그림 대다수를 파기한 채 노름에 빠져들었다. 

1961년, 자코메티의 말을 인용하여 “많은 추상작품은 얼룩과 침으로 범벅이 된 ‘손수건 미술’이다”라고 폄하했다. (마틴 게이퍼드, <다시, 그림이다>)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가 유행하던 시절에 던진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추상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바라보았으며, 그만큼 자신의 작품세계에 자신감이 드러낸 말이다. 그러나 추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작가 본인이 이성적으로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모험을 시도해야 한다. 은근슬쩍 넘어가기에는 그의 존재감이 너무 크다. 대신 최소한에 그쳐야겠다. ㅎㅎ (제목 그림; 프랜시스 베이컨의 <자화상(1969)>)


<십자가 책형을 위한 세 개의 습작>

그가 화단에서 크게 성공하는 계기를 만들었던 <십자가 책형을 위한 세 개의 습작(1944)>을 보자. 부유한 사업가이자 뮤즈인 에릭 홀의 도움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르네상스 시대 교회에서 발견되는 세 폭 제단화 형식을 빌려왔다. 친구를 그린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와 같은 형식으로, 평생에 걸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이다. 단순하게 보면, 세 폭은 한 폭으로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조각처럼 자기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려 함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3개의 캔버스에 분리되어 그려진 이미지들을 나란히 늘어놓기를 좋아한다. 작품이 그리 탐탁하지 않아도 ‘삼면화’로 놓으면, 최상의 작품이 된다.” (피에르·아르노 코르네트 드 생 시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그런데 제일 먼저 생기는 의문은 제목을 통해 연상되는 ‘예수’와 ‘십자가’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강렬한 오렌지색으로 칠한 공간에 제멋대로 왜곡하고 변형한 회색 몸뚱어리만 놓였다. 동물인지, 상상 속 괴물인지, 아니면 인간의 어떤 형상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 무신론자인 베이컨 자신도 “예수의 못 박히심과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한 가지 단서,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이아(Ὀρέστεια)>의 3부작(아가멤논, 코이포로이, 에우메니데스) 마지막 편에 등장하는 ‘복수의 여신’ 퓨리스(Furis)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해를 조금 돕기 위해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클뤼타임네스트라가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남편 아가멤논을 살해했다. 그녀는 주인공 오레스테스의 어머니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살인자'란 명분으로 어머니를 죽였다. 그러자 이번엔 자신이 '어머니의 살인자'가 되어 환영에 시달린다. 결국, 퓨리스란 자신의 내면에 똬리를 튼 지옥 같은 정신질환을 말한다.

 

베이컨은 20세기 예술가 중 ‘실존의 비극’을 가장 선명하게 표현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감정, 감각을 들추어냈는데, 그것이 사실주의적 재현보다 훨씬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면모의 사실주의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가정해 볼 수 있다. 서양 역사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가했던 가장 폭력적이며, 극적이고 비통한 슬픔이 바로 십자가 책형이다. 거기서 형상을 제외한 나머지, 즉 공포, 슬픔, 불안, 그리고 비명을 표했다는 분석이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인 1944년, 이성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없는 디스토피아 시대였다. 그러니 당시 절망적인 사회적 현실과 맞물려 표현이 더욱 처참해졌으리라. 어떤 이는 홀로코스트를, 또 다른 이는 핵무기의 공포를 떠올렸다.  뭉크가 그린 <절규>의 현대 버전인 이 작품을 가리켜 평론가들은 회화의 힘을 빌려 ‘비명을 물질화’했다고 멋지게 평가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도를 위한 세 개의 습작> 두 번째 버전(1944)과 세 번째 버전(1988)

그는 피카소 이후 최고의 실험적인 작가이다. 그리고 그 도전 정신이 높은 점수를 받아 지금 경매에서 그의 작품들이 최고가를 경신한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 제목에 명기한 ‘습작’이라는 표현이다. 이 작품이 작가의 최종 종착지, 혹은 전부가 아니라는 고백이다. 준비 단계의 어느 한 시점에서 자신의 원초적인 감정의 한 단면을 캔버스에 옮겼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그해 곧바로 두 번째 버전을 내놓았다. 이전 작품보다 선과 면이 다듬어졌다. 비명이 잦아들고, 내면이 조금 정리된 듯하다. 그리고 이후 그의 초상화에서 나타나는 둥근 형태의 뭉겨진 표현의 전조가 나타난다. 

1988년, 베이컨은 두 번째 버전을 재해석한 세 번째 작품을 내놓았다. 그런데 작품의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굳이 사물을 구별하려는 본능을 조롱했는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만 강조하자면, 모두 초현실주의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베이컨은 1944년 당시 자신의 원초적 감정을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감정을 회화로 옮긴 것을 일러 '초현실'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후 작품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의 수난, 고립된 인물, 벌린 입, 복수의 세 여신, 신체의 왜곡 같은 요소들은 그의 독창성으로 발전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후 작품인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 연구>를 살펴본다. 원작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당시 “너무나 실물과 닮았다”라는 극찬을 받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베이컨은 바티칸 최고 권력자의 다문 입을 벌려 놓은 채 그의 세속적 욕망을 폭로했다. 신성모독이다.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예술과 색과 심리적 연구에 관한 영감을 주었다. 베이컨은 원작을 실물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원작이 던지는 상상력과 복잡한 감정을 스튜디오에서 반복적으로 그렸다.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1650)>

그가 그린 76세의 교황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공포를 드러낸다. 그것도 자신이 지은 고통에서 비롯된 공포다. 원작의 모체타(망토)와 옥좌, 그리고 배경의 빨간색은 차가운 보라색을 깔고 있다. (스텔라 폴, <컬러 오브 아트>) 빨강은 삼주덕(믿음, 소망, 사랑) 중 ‘사랑(자비)’을 상징한다. 보라는 기독교 전례(典禮)에서 ‘속죄’의 색이다. 여유로웠던 두 손은 이제 옥좌를 부수어질 듯 꽉 쥐었다. 고통이 자신의 몸 전체로 퍼져올 때 나타나는 반응이다. 핵심은 무수한 세로선(혹은 주름)이다. 쏟아져 내린 선들은 그의 몸을 가르고 무릎 아래서 방사형으로 퍼진다. 거꾸로 보면, 아래로 흩어졌던 것들이 위로 치솟는다고도 볼 수 있다. 교황이 마치 황금에 갇혀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려 단말마(斷末摩) 비명을 지르는 형국이다. 외교와 친척 문제로 번민했던 교황의 인간적 내면을 거칠게 표현했다.

 

지금까지의 서술이 작가의 당시 감정에 다가갔다는 확신이 없다. 그리고 그는 1992년 사망함으로써 작품 해석과 관련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이제 작품은 온전히 감상자의 것이 되었다. 보는 이의 개인적인 감성에 집중하면 그만이다. 내재화 작업이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열여섯 살 때 어머니 속옷을 입어 보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그날로 집에서 쫓겨났다. 다행히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유령 같은 그림에서 탈피하여 더 밝은 색을 선택했다. 격변의 시대에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격렬한 삶을 살았던 베이컨의 내면이 많이 정화된 듯하다. 1962년 회고전을 통해 그의 입지는 확고해졌으며 데미언 허스트, 제이크, 다이노스 채프먼 형제 등 영국의 현대 미술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출세 이후에도 그의 삶은 여전했다. 마구간 같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고, ‘잠재적인 시체’처럼 그날 그날을 살았다. 베이컨에 관한 개인적인 분석은 여기까지다. 개인적 무지에 대한 힘든 변명이었다. 그러나 이제 되돌릴 수도 없다. 격려만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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