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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Oct 28. 2023

잭슨 폴록의 프랙털과 만물 이론

잭슨 폴록의 <No 5(1948)>

잭슨 폴록의 <No 5(1948)>

‘미술계의 제임스 딘’ 잭슨 폴록의 <No 5>다. 1억 4천만 달러(한화 약 1,640억 원), 회화 역사상 개인 작품 최고가를 기록했다. 폴록은 “그림은 왜 캔버스를 앞에 두고 붓으로 그려야 하냐?”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곤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가정용 페인트를 뚝뚝 떨어뜨리며 그렸다. ‘액션 페인팅’ 기법이다. 이렇게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탄생한 새로운 미술 사조 ‘추상표현주의’는 무의미한 혼돈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자 1950년 11월 20일 자 타임 매거진에서도 “빌어먹을 카오스!(Chaos, damn it!)”란 제목으로 혹독한 비평 기사를 게재했다. 플록은 다음 날 같은 잡지에 "No chaos, damn it!"이라는 제목으로 반박 글을 썼다. 

그가 죽은 지 40여 년이 지나 현대 물리학자들이 폴록의 작품을 재조명했다. 그리곤 카오스와 함께 놀랍도록 정교한 프랙털을 발견했다고 한다. ‘프랙털(Fractal)’은 부분과 전체가 동일한 구조(자기 유사성)를 갖고 끝없이 되풀이되는 특징을 말한다. 자연에서 나타나고, 미술과 음악에서도 사용된다. 물론 과학에서도 발견된다. 뉴턴 역학은 사과(지상)와 달(천상)에 작용하는 동일한 구조의 힘을 밝혔다. 또한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를 결합하면서 빛이 전자기임을 수학 공식으로 증명했다. (대문 사진; <가을의 리듬, No 30>을 그리는 잭슨 폴록, 1950년 한스 나무트 촬영)



아인슈타인은 1921년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물리학 전체를 아우르는 힘의 통일, 통일장 이론을 언급했다. 1925년 이후 그는 양자이론과 자신의 일반상대성이론 사이에서 프랙털을 발견하려 애썼다. 여기엔 차원의 문제가 개입됐다. 무명의 독일 물리학자 테오도르 칼루자(Theodor Franz Eduard Kaluza, 1885~1954)가 최초로 제기했다. 1919년 어느 날 그는 아인슈타인에게 논문 한 편을 보냈다. 일반상대성이론을 4차원 버전으로 확장하면서 추가로 얻어지는 방정식이 맥스웰의 전자기 방정식과 일치한다는 내용이다. 중력과 전자기력을 하나로 통합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1926년에 스웨덴 물리학자 오스카 클라인이 아이디어를 보탰다. 여분의 차원이 숨어있는 곳을 구체적으로 가리켰는데, 그곳을 플랑크 길이(1.62×10^35) 정도의 영역이라고 했다. 플랑크 길이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짧은 길이로, 물리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 공간으로서 의미가 없는 영역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굵은 밧줄을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면 1차원 선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한 차원이 추가된 2차원 표면을 갖고 있다. 클라인은 자신의 논리를 우주 차원에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은 칼루자-클라인 이론에서 영감을 받아 통일장 이론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그를 “양말을 신지 않고 다니면서 괴상한 일에만 관심을 갖는 외로운 영감”으로 취급했다. 그리고 그가 심하게 거부 반응을 보였던 양자역학의 ‘유령 같은 원격작용’을 존 스튜어트 벨(John Stewart Bell, 1928~1990)의 부등식과 실험으로 실재가 증명되었다. 학문적 고립감도 깊어졌다. 하지만 생전에 이루지 못한 아인슈타인의 꿈은 193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약한 핵력과 강한 핵력이 발견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두 힘은 일상생활에서 인지할 수 없는 원자핵 내 가까운 거리에서 작용한다. 전자기력과 비교하여 힘이 1,000배 정도 약해서 ‘약력’, 반대로 100배 정도 강한 힘을 가졌기에 ‘강력’이라고 부른다. 강력은 원자핵을 붙잡아 두는 힘이다. 하지만 우라늄이 납으로 변하는 것처럼 특정 원소의 원자들이 입자와 방사선을 내뱉은 후 다른 원소로 변하는(방사선 감쇠) 현상을 설명하지 못했다. 따라서 원자 내부에 또 다른 힘이 존재해야 했다. 약력이다. 힘의 세기는 강력> 전자기력> 약력> 중력 순이다. 이제 네 가지 힘을 관통하는 통일 이론을 찾아야 할 당위성이 생겼고, 그것이 물리학의 성배가 되었다.


1970년대 중반, 양성자와 중성자를 이루는 쿼크(quark)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을 완성했다. 전자기력, 약력, 강력 등 세 가지 힘과 자연계의 기본입자 간 상호 작용을 설명해 주는 ‘대통일이론’의 완성이다. 셸던 리 글래쇼(S. L. Glashow, 1932~)와 그의 고교 동창이자 현존하는 최고의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S. Weinberg, 1933~2021), 그리고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의 파키스탄 태생 압두스 살람(M. A. Salam, 1926~1996)이 그 공로로 1979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래서 와인버그-글래쇼-살람 모형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미시와 거시 세계를 하나의 물리 현상으로 이해하기에는 불충분했다. 중력이 빠졌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표준모형과 중력을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만물이론(Theory of Everything)을 찾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끈 이론과 막 이론이다. 그중 끈 이론은 물질을 이루는 최소단위를 입자가 아니라 ‘아주 작은 영역에서 특정 에너지를 가진 채 진동하는 끈(string)’이라고 상정했다. 다만 여기서 끈은 굵기가 없고 길이만 있기 때문에 1차원적 대상이라는 가설이다. 끈 이론은 놀랍게도 질량 0, 스핀 2인 중력자(중력을 매개하는 입자)를 설명하기에 중력과 양자역학을 만족한다. (브라이언 그린, <우주의 구조) 

끈 이론은 초끈(superstring) 이론과 다섯 개의 끈 이론을 통합한 M-이론으로 발전했다. 끈은 특정 차원, 즉 10차원(초끈 이론)과 11차원(M-이론)의 시공간에서 진동한다. (미치오 카쿠, <불가능은 없다>) 그러나 다차원 문제는 3차원에 고정된 우리의 인지로 납득하기 무척 어렵다. 실험을 통한 검증도 불가능하며, 아직은 수학적 기술로만 존재한다.

 

스티븐 호킹은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이 우주 초기 특이점에서는 양자역학과 충돌한다는 점에 집중했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법칙은 다시 블랙홀에서 통하지 않는다. 예측과 달리 블랙홀 안으로 들어갔던 정보가 밖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스티븐은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의 맹렬한 결합이 정보 파괴로 이어진다고 추론했다. 그리고 이 ‘정보 모순’의 문제가 양자중력 법칙을 이해할 수 있는 강력한 열쇠라 판단하고 44년 동안 씨름했다. 스티븐이 연구한 블랙홀은 출구인 화이트홀, 시간여행이 가능한 웜홀 등의 개념으로 이어진다. 

말년의 그의 관심도 다중우주로 이어졌다. 다중 우주 역시 우리의 인지 범위는 물론 상상력을 동원해도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다중 세계의 개념을 처음 제안한 휴 에버레트(Hugh Everett III, 1930~1982)는 “갈릴레오가 지구의 자전을 주장할 때도 사람들은 자전을 느낄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오늘날 물리학자들도 빅뱅이 일어났던 무렵의 우주가 원자보다 작았다는 점을 들어 그의 이론을 보다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자연이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다’고 여겼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인류는 멀지 않은 장래에 간단한 우주의 프랙털을 눈치채곤 무릎을 탁 치는 날을 맞이하게 될 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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