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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Feb 28. 2022

자연철학, 계몽주의를 이끌다

계몽주의란 16~18세기에 경험론과 합리주의를 근간으로 유럽 전역에 일어난 혁신적 사상을 말한다. 사유(思惟)의 중심이 신에게서 인간으로 옮겨온 시대가 르네상스라면, 계몽주의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성의 계몽을 일컫는다. 따라서 합리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인간 생활의 진보와 개선을 꾀하려 한 일련의 움직임이다. 칸트는 1784년 “계몽주의는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하등(下等)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규정했다. 개별적인 개인과 성숙한 시민으로서 주체라는 사실을 스스로 성찰하라는 언명이다. 계몽사상의 최고 기준인 이성은 데카르트의 수학적 이성인 동시에 베이컨의 실증적 이성이다. (노명식, <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꼼뮨까지>) 그리고 이성의 힘과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믿는 시대적인 사조(思潮)에 앞장선 대표적인 인물은 존 로크와 뉴턴이 꼽힌다. 뉴턴이 말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바라본 덕분이었다고. 그럼, 그 거인은 누구일까? 


영국 스콜라 철학자이자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사였던 윌리엄 오컴(William of Ockham, Occam, 1280~1349)이 신앙과 이성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황의 권위와 관련하여 ‘세속의 권력은 세속의 제후에게 있다’고 차별화함으로써 이단으로 몰려 아비뇽에 4년간 유폐되었다. 그의 사상은 17세기 영국의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에게 전이되었다. 홉스는 1610년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 중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가 갈릴레오와 케플러의 이론에 의해 붕괴되는 과정을 목도했다. (<다음백과>) 과거의 인습이나 직관에서 벗어나 자연철학, 즉 근대 과학이 태동하는 현장이었다. 

렘브란트, <호메로스의 흉상을 응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1653)>

지동설에서 시작되었다. 고대의 천문학은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인 천동설(지구중심설)에 기초했다. 천동설에 의하면,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정지해 있고 그 주위에 여러 겹의 천구가 원의 형태로 배열되어 회전한다. 그러나 새롭게 제기되는 천체의 관측 결과를 수용하기 위해 천구의 숫자는 계속 늘어갔다. 최초 26개였던 천구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와서는 55개가 되었고, 프톨레마이오스 때는 80개가 넘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인식의 전환을 촉발했다. 그가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가설을 세우자 천동설의 많은 오류가 쉽게 해결되었다. 그러나 교회의 시선이 두려웠다. 사후 1543년에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발표했다. 마르틴 루터는 이런 코페르니쿠스를 가리켜 ‘벼락 출세한 점성술사’라고 일컬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바보가 천문학이라는 과학을 통째로 뒤엎으려 한다. 그러나 성서에 분명히 쓰여 있듯이 여호수아가 멈추라고 명한 것은 태양이지 지구가 아니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움직인다면, 나무 위에서 돌멩이를 떨어뜨렸을 때 수직이 아닌 이동된 다른 곳에 떨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탈리아 출신 철학·수학·천문학자이자 도미니카 교단의 사제로 있던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가 이 논거에 도전했다. 움직이는 배의 깃대 위에서 돌멩이를 떨어뜨렸음에도, 역시 수직으로 떨어졌다. 따라서 “지구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지구와 함께 움직인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1585년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 대한 고찰>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그러나 8년간 지속한 재판 끝에 ‘신성 모독과 교리에 대한 이단적 해석’이란 죄목으로 1600년 2월 17일 로마 캄포 데 피오리 광장에서 화형 당했다.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는 코페르니쿠스의 오류를 지적했다. 행성이 ‘원운동’을 하지 않고 타원형으로 돌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교회의 입장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였다. 그는 과학적 방법으로 지동설을 보강했기 때문이다. 1610년 토스카나 공국 메디치 가문의 수석 수학자가 된 갈릴레이는 원시적인 망원경을 개조하여 배율을 30배까지 높였다. 그리고 목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여러 개의 위성을 관측했다. 이를 통해 ‘모든 것이’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망원경이 발명되면서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천체의 심장부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후 15년 동안 알아낸 사실은 그 이전에 인류 역사를 통틀어 알아냈던 사실보다 훨씬 많았다. (미치오 카쿠, <마음의 미래>) 그러나 교회는 망원경 근처에도 다가서려고 하지 않았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신이 주신 눈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기구의 도움을 받는 것을 신성모독이라고 여겼다. (리언 레더먼·딕 테레시, <신의 입자>) 갈릴레이는 절친한 케플러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거듭된 노력과 초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행성, 달, 나의 망원경 보기를 거절합니다.”

크리스티아노 빈티, <종교재판정에 선 갈릴레이(1857)>

1615년 갈릴레이의 1차 로마 종교재판은 궐석으로 이루어졌고, 경고 수준에서 마무리되었다. 1632년에 발표한 <두 개의 주요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가 문제였다. 교황 우르바노 8세에게 약속했던 중립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을 지구중심설과 대등하게 취급했다. 교회는 모욕을 느꼈다. 1633년 2월, 2차 종교재판에서 갈릴레이는 가택 연금이 되었다. 그러나 1638년 시력을 완전히 잃기 몇 달 전 <새로운 두 과학에 관한 논의와 수학적 증명>을 저술하여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려 할 때 네덜란드에서 경도를 측정하는 비밀을 알아내려 한 점이다. 안전 항해를 위한 노력이었지만, 지동설과 관련이 있다. 자국민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n Huygens)가 비밀을 밝혀냈다. 하지만 영국의 존 해리슨(John Harrison)은 훨씬 효과적인 방법을 알아냈다. (앤드루 마, <세계의 역사>) 이렇게 지동설은 실제 생활에 스며들었고,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갈릴레오 재판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코페르니쿠스의 조국 폴란드에서는 그가 죽은 지 거의 500년이 되는 2010년에야 장례식이 다시 치러졌다.

하지만 2,000년간 유럽인의 인식을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120년이 지나 뉴턴이 입학한 1661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는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만 가르치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의 운동을 <자연학>으로 설명했다. 오늘날의 역학이자 물리학이다. 그는 물체의 본성을 정지 상태로 보고, 운동은 물체가 각각의 목적에 맞게 찾아가는 과정으로 진단했다. 예를 들어 돌이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은 돌의 존재 목적에 맞는 곳이 땅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뉴턴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중력)으로 물체가 운동하며, 그 힘은 땅으로 떨어지는 사과나, 지구와 떨어져 있는 달에서 똑같이 작용한다고 했다. 천상과 지상에서 같이 존재하는 힘, 만유인력이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이자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의 <아이작 뉴턴(1795~1805)>. 이성을 조롱하고 감성을 강조했다.

케플러와 갈릴레이의 물리학을 통합한 만유인력의 발견으로 대중은 마법과 마녀 없이도 눈에 보이지 현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의 존재 역시 인식함으로써 보건위생이 강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700년 이후 계몽주의가 확산되면서 자연 현상을 수리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은 결국,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사상적 측면에서는 미국 혁명과 프랑스혁명을 인도했다. 

반면 서구 계몽주의는 ‘실용적 이성’만이 강조되었을 뿐이다. 인류 공동의 절대선(善)을 추구하는 ‘실천 이성’은 오히려 허약해졌다. (신정현, <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신>) 그 결과, 이성의 대한 오만은 과학기술의 광신과 제국주의로 이어졌고 훗날 인류는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미학에서 계몽주의의 이상을 실현한 사조는 논리, 조화, 그리고 균형을 갖춘 신고전주의 미술이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이 실패로 끝나면서 인간의 감성이 강조되는 낭만주의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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