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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Apr 28. 2022

독일 사실주의 화가 아돌프 멘첼

19세기 후반 독일에는 낭만주의 화가 카스퍼 데이비드 프리드리히 시대가 저물고, 사실주의 화가 아돌프 멘첼(Adolf von Menzel, 1815~1905, 제목 초상화는 지오바니 볼디니 작품이다)의 시대가 찾아왔다. 프랑스 사실주의는 저항의 상징이었지만, 독일 사실주의는 사회경제적으로 대중과 시대의 열망을 함께 나누었다. 멘첼은 비스마르크 시대의 독일 과학기술을 찬양했다. 당시 비스마르크는 “당면한 큰 문제는 언론이나 다수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쇠(鐵)와 피(血)에 의해서만 그 문제는 해결되는 것입니다”라며 군비 확장을 주장했다. 철혈재상이란 별명이 붙었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프로이센의 왕: 재위 1861~1888, 독일 황제: 재위 1871~1888)를 도와 프랑스를 물리치고 통일 독일을 완성했다. 그러나 이즈음의 독일인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경고를 잊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승리는 커다란 위험”이라며, 독일 문화가 마치 이 (보불)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보편적 오해를 지적했다. (존 리월드, <인상주의의 역사>) 


<압연 공장, 부제 '현대의 키클롭스들'(1872~1875)>

멘첼은 영감을 얻기 위한 여행을 제외하곤 베를린에서 평생을 보냈다. 그의 죽음이 국장으로 치러질 정도로 대접받았던 예술가다. 역사적 주제를 다루던 그는 산업화를 겪고 있던 독일의 현대인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였다. 적절한 주제를 찾던 그는 1872년부터 3년간 실레지아 지방에 있는 쾨닉쉬테(현 호주프)에 있는 프로이센 국영 철로 공장을 방문했다. 3천 명의 근로자가 있던 이 공장 내부를 2m 95cm 화폭에 담았다. 당시 사회적 변화와 작업 환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압연 공장>이다. 키클롭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외눈박이 거인으로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대장장이다. 어두운 내부에서 가장 먼저 눈길이 닿는 곳은 중앙부 압연기에서 쇳덩어리가 내뿜는 불빛이다. 

여러 명의 노동자가 주물로부터 나오는 달궈진 쇳덩어리를 커다란 집게와 갈고랑이로 바퀴가 달린 수레 위로 집어내고 있다. 작업복을 입은 일꾼들의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몸을 뒤로 젖히는 모습을 보면, 열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가늠할 수 있다. 온도를 가진 물질은 빛을 내며, 그 세기와 색깔은 온도에 따라서 달라지기에(輻射, radiation) 색으로 그 뜨거움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멘첼은 말했다.


“열기, 노동, 소음, 흥분이 그림에서부터 관람객에게 쏟아져 나온다.”


<The Art, 미술의 역사>의 저자 크리스토프 베첼은 과학이 아니라 시적으로 이를 표현했다. “마치 불 뿜는 용과 싸우는 영웅의 모습을 떠올린다.” 훨씬 쉽게 다가오는 말이다. 흥미로운, 아니 안타까운 광경은 그림 오른편 아래 어둡게 처리된 구석에서 발견된다. 열기를 차단하는 보호벽이 친 곳에서 인부들이 도시락 식사를 하고 있다. 몹시 허기진 듯 허겁지겁 음식을 섭취한다. 바구니를 든 어린 여자아이는 도전적인 시선을 관람객에게 던지며 이렇게 묻는 듯하다. “뭐 좋은 구경거리 낳습니까? 밥 먹는 건데.” 정작 화가는 후경 왼편에서 뒷짐 지고 공장을 관찰하고 있다.

<아름다운 시골 여행(1892)>

독일은 영국보다 약 30년 늦게 산업화가 이루어졌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열악한 생활 조건은 농민들의 대규모 도시 유입을 촉발했다. 독일의 산업화 초기 역시 하루 평균 15~16시간 일하는 ‘값싼 노동력’이 근간이 되었다. 1847년이 되어서야 11시간 노동법이 통과되었지만, 사업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화 과정에서 공장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이나 저임금을 사회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다. 1852년과 1855년 흉작으로 인한 식량난과 물가 상승을 겪은 그들은 정기적으로 받는 임금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1871년 통일을 이룬 독일은 1880년대 수공업자들이 전기 모터를 도입하면서 산업화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1914년까지 생산량을 500%까지 끌어올려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독일에는 대량 생산된 제품을 소화할 해외 식민지 시장이 없었다. 대신 중공업을 집중 육성하여 유럽과 신대륙에 수출하면서 탄탄한 경제력을 구축했다. 하지만 카이저 빌헬름 2세(재위 1888~1918)는 독일이 세계 최고의 열강이 되기를 원했다. 1890년 의견이 부딪쳤던 비스마르크가 사임했다. 그러자 카이저는 ‘세계 정책(Weltpolitik)’이란 이름으로 매우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1900년에서 1914년까지 해군 규모를 두 배로 확장하면서 해양대국 영국을 자극했다. 결국, 식민지를 선점한 영국, 프랑스와 일전이 불가피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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