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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마 Jul 28. 2021

입사 한달 차, 이직을 결심하다.

스타트업 웹디자이너의 고뇌

스타트업에 취직하다.


   나는 원래 사업을 했었다. 사업이라고 하긴 거창하고 그냥 작은 쇼핑몰을 했었다. 프리랜서로 디자인 일도 했었고, 핑계라면 핑계지만 코로나 이후로 운영이 어려워지고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유지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투잡을 해야겠다' 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1.06.14 (월) 첫 출근을 하였다. 무려 스타트업이었다.

   사실 이 회사 면접을 보기 전, 꽤 여러 곳에서 면접 제안을 받았다. 그 중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첫째, 나의 쇼핑몰 운영 기간을 경력으로 쳐주었고 둘째, 경력으로 인정해주다보니 다른 곳보다 연봉 조건도 괜찮은 편이었다. (이건 근데 내 착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면접 시 느꼈던 대표의 '제품에 대한 프라이드'였다. 실제로 제품이 굉장히 좋아보였고, 세계최초였으며 '잘하면 이 회사 꽤 크겠는데? 경력이 되겠어' 라는 느낌이 왔다. 아, 그리고 건물이 새건물이여서 사무실 환경이 쾌적한 것과 집 근처라는 것도 한 몫했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이 회사를 선택했고, 꽤 여러곳의 취업제안을 과감히 포기하며 첫 출근을 하였다. 약 7년만의 타인의 회사에서 다시 시작하는 사회생활이었다. 그리고 입사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예? 웹디자이너가 제안서요?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 회사에서 올려놓았던 구인공고의 제목

[웹디자인을 하실 수 있는 분이 상품 등록 및 쇼핑몰 관리]

   상세 내용도 비슷했다. 제품의 쇼핑몰을 만들고, 제품을 등록하고, 관리하는 것. 나는 약 5년간 쇼핑몰을 운영했었고, 프리랜서로 웹디자인, 편집 디자인까지 해왔기에 딱 내게 맞는 일이라 이곳에 지원을 한 것 이었다. 그리고 근로계약서 내에도 나의 업무는 '웹디자인' 으로 기재되어있다. 사실 이곳은 스타트업이고 아직까지는 중소기업이고, 또 나를 제외하고는 대표,부사장 2명, 부장 밖에 없었던 지라 사실 내 업무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해야할 것 이란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충분히 이해했다.

   그런데 입사 일주일이 되었을때 대표는 내게 '제안서'를 만들어오라고 했다. '제안서? 무슨 제안서?'

제안서를 웹디자이너에게 적어오라는 것 (아니, 적고 디자인까지 해오라는 것)부터 멘붕이었는데 심지어 그 제안서가 대기업에게 보낼 제품 제안서였다. 쉽게 말해 '우리 제품 이런건데 사주세요!' 라고 적어야되는 제안서....몇만대를 제안해야하는 대기업에게 보낼 제안서를 내용하나 없이, 전부 작성을 하라고 시키고, 디자인까지 완벽하게 해오라는 것이 대표의 요구였다.

    우선 제안서를 적으려면 제품에 대한 지식이 다수 필요했다. 우리 제품이 얼마나 메리트가 있는지, 시장성이 얼마나 있는지 등등 입사 일주일차의 웹디자이너가 적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또한 비용절감이나 탄소절감 등 구체적인 데이터가 꽤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대표는 그 어떤 자료도 주질 않았고 심지어 이전 직원이 남겨놓은 파일들을 보고 네가 알아서 만들어 오라는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어쨋거나 입사 후 처음 받은 업무였고, 당장 쇼핑몰을 만들기에는 제품의 가격마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 나는 이 제안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연히 제대로 쓸 수 있을리가 없었다. 사실 제안서를 써보지 않은건 아니다. 쇼핑몰 운영 당시 오늘의x이나 텐바이x 같은 업체에 우리 제품을 입점 시켜달라는 제안서도 써본 적이 있고, 국가 사업에 도전하기 위해 사업계획서도 꽤 써보았다. 그러나 그때 제안서나 사업계획서를 잘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제품이 '내가 만든 내 제품'이기 때문이었다. 제품에 대한 지식이나 시장성, 창업계기 등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입사한지 일주일 된 회사의 제품을, 심지어 세계최초로 개발된 제품을, 단 한번도 내 돈으로 사본 적이 없던 시장의 제품을, 거기다가 웹디자이너가 적으라니? 당연히 잘 써질리가 없었다. 그리고 너무나 중요한 이 제안서를, 고작 입사 일주일차인 웹디자이너가 적는 것 역시 회사 입장에선 큰 손해였다.

   결국 대표는 그 제안서로 나를 일주일 가까이 괴롭혔다. 다시 해와! 이게 아냐! 이건 투자 제안서지! 확 와닿지가 않아! 느낌 알잖아? 딱? 해다며 갈구고 다시 해오라고 돌려보내고 그런 와중에 본인은 단 한문장도 적어주질 않았다. 결국 참다참다 '와 이거 그만둬야겠다.' 싶어질때쯤 대표에게 말했다.

   "대표님 이건 제 업무가 아닙니다. 이건 기획자나 MD가 해야할 일이지 제 일이 아닙니다. 텍스트파일이라도 적어주시면 제가 그거에 맞게 디자인은 할 수 있습니다."

   다소 화가난 뉘앙스로 대표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대표는 내 얘기를 듣더니

   "그럼 디자인이라도 해와. 내가 적어넣을게"

   라는 개소리를 시전했다. 아니.. 제안서 디자인은.. 내용에 맞춰서 내가 해야하는거지.. 어떻게 디자인부터 해오라는 소리를 하는거지? 듣던 중 답답해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대표님 대표님은 설계도 없이 집을 지으시나요? 어떻게 데이터나 내용없이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요? 하다못해 그래프도 그릴 수 없는데요."

  대표는 내 말을 듣더니 한참 만에 쭈뻣쭈뻣 물어봤다.

   "그럼 어떻게 해?...나 이런거 못해"

  와..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대답이었다. 정말로 할 줄 몰라서 나를 시킨거였다니! 머리 속이 온갖 생각들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무능력한 대표, 그러나 제품에 대한 프라이드가 엄청난 대표는, 이 후 생긴 일들로 점점 더 나의 퇴사 욕구를 불러 일으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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