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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마 Jul 28. 2021

입사 한달 차, 이직을 결심하다 Ⅱ

스타트업 웹디자이너의 고뇌

명예 회장의 명함을 만들다


  '스타트업' 이라하면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이미지는 뭘까? 나 같은 경우는 뭐랄까, '젊은 기업' '수평적 조직문화' 이런 것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면접 때 처음 만난 대표님과 부사장님은 뭐랄까? 그동안 상상했던 스타트업의 이미지와는 좀 달랐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노땅 같았다.

  아무튼, 대표와의 제안서 전쟁이 끝나고 두번째로 주어진 나의 업무는 뜬금없는 '명예회장'의 명함 제작이었다. 명예회장이라.. 이렇게 작은 회사에 왜 이렇게 높은 직급이 많지? 사실, 이 회사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경영진이다. '대표이사' '부사장' '부사장2' '지사장(부장)'. 그리고 나 막내 '김대리' 특히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인력들은 내 기준에선 초특급 엘리트(?)들 이었는데, xx전자 임원출신, x웨이 임원출신, 그리고 가장 마지막 부장님 마저 회사의 투자 기업에서 파견 된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회사에 큰 직함들만 많으면 어떨까? 어떨 것 같은가? 나는 이 속담으로 결론지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

  우리 회사가 딱 그 꼴이었다. 우리 대표는 20년 동안 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인생을 쏟은 개발자였고, 부사장 두명은 대기업 임원 출신의 엘리트들이다보니 서로의 자존심과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 났다. 덕분에 우리의 주간회의 시간은 거의 개싸움이었다. 서로 의견을 좁히지 않고 실제로 누군가 맞는 말을 하더라도 '네 말은  틀렸고, 이 분야의 전문가인 내가 더 잘알아!!' 라며 발언권 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회의는 늘 모두 얼굴이 벌게져 씨익씨익 거리며 끝났고 회의 안건으로 올라온 모든 것들은 해결은 커녕 마무리 조차 되지 않는다.

  아무튼 이런 회사에 새로운 명예 회장이 등장했고, 그 이후 제작하게 된 명함들도 대부분 이사, 고문 등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높으신 분들이었다. 문득 그들은 연봉이 얼마일까? 매출 하나 없이 투자로만 운영되고 있는 이 회사에 이렇게 고위직들만 늘어난다면 인건비는 도대체 얼마가 나가는걸까? 하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 추가로 나는 웹디자이너인데 어째서 명함을 만들고 있는거지? 인하우스 웹디자이너는 정말 '디자인 같아보이는 것'은 다 해야한다더니 맞구나


"요즘 여자들은 말이야"


  사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전에 작성한 '제안서 사건' 이라던가 '잦은 경영진들의 싸움' 등은 아니었다. 작은 회사니까 어느 정도 내 업무 외의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이해했고, 부장님이 항상 하던 "경영진이 싸워야 회사가 잘 돌아가" 라는 말에 어느 정도 동감도 했다. (우리 회사는 결론 없는 자존심 싸움이었지만) 그리고 나는 약간 호구 성향이 있는 편이라, '굳이 이 정도로 회사를 그만둬야하나? 대부분 이렇게 일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어쨋거나 이런 호구가 퇴사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대표의 성차별이었다. 회사가 작다보니 다같이 점심을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밥을 먹으러 갈 때마다 대표는 내 앞에 앉아 밥먹는 내내 여자는 어째야하고, 어떻게 살아야하며 등을 떠들었다. 처음 몇일은 그냥 대표가 하는 말에 '네,네' 하며 웃었다. 왜냐면 입사한지 얼마 안되었고, 굳이 밉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자'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지는데! 새로온 직원과 대표, 나, 부장 이렇게 넷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서빙을 하던 여자 알바가 앞에 있고 다소 붙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대표는 그 알바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갑자기 그 자리에서 내게 물었다.

  "아니~여자가 나올 곳 나오고 들어갈 곳 들어가야 한다는게 성희롱이야?"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고 설마 몸매 이야기야? 에이? 설마? 했다. 그리고 답했다.

  "어떤 상황에서요?"

  아니, 뭐 가게 앞에 서있는데 문 열고 들어가야하니까 들어가~ 이런 의미 일 수도 있을테니까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말하면 성희롱일 수 있다. 어감이 이상하니까)

  대표는 너무나 태연하게 답했다.

  "몸매! 나올 곳 나오고 들어갈 곳 들어가야 한다는게 성희롱이냐구??"

  서빙을 하던 알바는 화들짝 놀라며 더러운 걸 봤다는 표정으로 서둘러 우리 자리를 떠났다. 갑자기 밀려오는 두통에 나는 이마를 짚었고 대답했다.

  "당연히 성희롱입니다."

  "그게 왜 성희롱이야? 아무튼 요즘 여자들은 말이야! 지들이 돈 번다고 뭐 되는 줄 알어~!"

  "대표님 요즘 밖에서 그런 이야기 함부로 하시면 안되구요. 신고당해요"

  "엥? 이게 왜 신고가 돼? 어이가 없네~ 아무튼 요즘 여자들 참 이상해"

  "요즘이 이상한게 아니고요, 예전이 무지했던 거죠"

  "예전에는 말이야~ 남자가 첩을 뒀어! 첩을 둬도 네네, 하던 시절이었다고~ 요즘 여자들은 참 복에 겨웠네. 나는 우리 딸한테도 남편을 섬겨야된다고 교육해! 남자는 하늘이라고!!"

  이때부터 약간 눈이 돌기 시작했다.

  "대표님 그런데 지금 이런 얘기를 왜 하시는거에요? 저는 이해가 안가네요. 이런 이야기를 직원들 앞에서, 점심 시간에 하실 이유가 없는데요?"

  내 말 대꾸에 대표는 당황했는지 "알겠어~ 안할게" 하며 깨갱 하는 듯 하다가 5분 뒤, 다시 시작했다. 결국 나는 밥을 먹는 내내 굳은 표정으로 더러운 기분을 팍팍 티냈고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잡코리아를 검색했다. 마침 내게 할 말이 있어 들렸던 부장님이 씩씩 거리는 나를 보곤 말했다.

  "대리님, 대리님은 너무 대표님 말에 덤벼들어. 그냥 대표는 원래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넘겨! 싸우려하지말고"

  아, 원래 대표가 저런 얘기하면 참고 있어야 되는 건가? 그나마 회사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던 부장님께 저런 소리까지 듣고 나니 무언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여기는 아니다.' '당장 그만두자' 라는 생각이 본격적으로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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