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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ia May 28. 2023

첫사랑 기록

어느 날, 강아지의 눈을 보았다. 그 눈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눈은, 지금 나를 바라보는 이 눈이 사랑이라고 말했다. 다시 가만히 강아지의 눈을 보았다. 강아지의 눈은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절대 변하지 않을, 맹목적인 사랑이 담긴 눈. 더 이상 그 눈을 쳐다보기 어려워져, 눈을 피한다. 나에겐 그 무한대의 사랑을 받을 용기가 없었으므로.

나는 받는 사랑에 익숙하지 않다. 사랑으로 나를 키우신 부모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사랑을 주는 게 받는 것보다 익숙하고 편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동생들과 몸이 약한 엄마, 바쁜 아빠 사이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여느 어린이들처럼 뻔뻔하게 사랑을 요구하기 보다는 어른 하나의 몫을 해내야 했던 한 어린이의 삶.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사랑을 주며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 막내를 낳고 몸이 아픈 엄마를 대신해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엄마를 도왔다. 친구들과 밖에서 놀다가도 부모님의 연락을 받으면 뛰어 들어와 동생들의 밥을 차렸고, 받은 용돈의 대부분은 동생들에게 썼다. 학교에서 받는 간식은 죄다 집에 가져와 동생들에게 주던 탓에, 내 초등학교 선생님 한 분은 얼마 전까지도 내가 사탕을 싫어하는 줄 아셨다고 한다. 사실 나는 실제로 사탕보다 초콜릿을 좋아하긴 한다만, 그래도 내가 받은 좋은 건 무조건 동생에게도 가져다주곤 했다. 나보다 남이 중요했던 삶이었다. 모든 것은 내 선택이었으므로, 10여년을 이렇게 살아온 것에 후회는 없지만, 그 과정이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알아갈 시기에 나는 나를 잃었고, 마땅히 어려야 할 시기에 어리지 못했다. 가족에게 의지할 수 없었던 탓에, 꽤 오랫동안 내가 돌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고, 마음 놓고 기댈 곳은 오직 나뿐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꽤나 지쳐있었다. 물론 이 모든 생각들은 나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내가 챙겨야 할 사람들에게 속내를 얘기하는 건 너무 책임감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한 번 이런 마음을 부모님께 털어놓은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가족들 몰래 가족 관계에 대한 심리 상담을 받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가진 책임감 중 불필요한 부분을 내려놓고, 조금 더 이기적으로 행동해볼 것을 권했다. 어려서부터 시키는 것은 기가 막히게 잘했으므로, 상담 선생님의 말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 때 처음으로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과정은 새롭고 행복했다. 문제는 가족들에게도 내 변화가 새로웠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변한 나에게 적응하지 못하셨다. 당시 부모님은 내가 가족은 안중에도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 생각하셨다. 우리는 매일 이 문제로 다퉜다. 그 날 역시 같은 문제로 부모님과 열렬히 싸우던 중, 어릴 때부터 가족들에게 너무 많은 책임감을 느껴 지친다고 말했다. 부모님에게 속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한 건 처음이었으므로, 나름의 공감과 위로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어떠한 공감도, 위로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돌아온 것은 나에게 단 한 번도 그러한 책임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대답이었다. 사실이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착한 딸이자 언니로 부모님을 돕고 동생들을 챙겼다. 그래도 한 번쯤은 고생한다고, 고맙다고 말해줄 수 있지 않은가? 어느 순간 내가 주는 사랑은 당연한 것이 되어있었다. 그 날, 가족을 위해 살아온 과거는 무너졌고, 나는 가족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시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에게 사랑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결국에는 상처받을 것이 뻔한 두려운 일이 된 건 그 때 부터였다.

강아지를 만난 건 22년 4월 15일이었다. 우리 강아지는 당근마켓이라는 중고마켓에서 데려왔는데, 데려올 당시 3개월이 채 안 된 아기였다. 어느 공장 뒤편에 있는 개집에서, 아빠는 어미 개 뒤에 숨어있던 까만 강아지를 안아서 나에게 건넸다.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30여분 동안, 강아지는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어미 젖 대신 사람이 남긴 음식물을 먹고 자란 강아지에게서는 왜 인지 모를 순대 냄새가 났고, 어미와 처음 떨어진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강아지는 처음 만난 내 품이 두려운 동시에 나에게 온전히 의지하고 있었다. 나는 좁고 낯선 차 안에서, 기댈 곳이라고는 나 밖에 없는 이 작고 약한 강아지에게 마치 모성애와 같은 책임감을 느꼈다. 그리고, 누군가 사랑하기를 그렇게 경계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강아지를 돌이킬 수 없이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강아지를 데려오고 첫 3일 동안, 나는 여러 모순되는 감정들과 싸워야했다.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하고 싶지 않은 마음. 지켜주고 싶은 마음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 강아지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이를 거부하는 마음. 한 번 사랑하는 마음을 인정하면 걷잡을 수 없이 사랑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가족들을 사랑했을 때처럼 강아지를 사랑했다가 다시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그래서 강아지와 조금 멀어지기로 결심했다. 가능하면 덜 안아주고, 덜 놀아주며 강아지와 거리를 두려 했다. 물론, 기침과 사랑은 숨길 수 없는 법이라, 대부분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때는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나를 지키며 강아지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도 강아지는 여전히 날 따라다니고, 내 옆에서 잠을 자고, 틈만 나면 내 무릎 위로 기어올랐지만 말이다.

강아지와 거리를 두기로 한 지 3일이 넘어가던 날, 강아지는 강아지 집에서 잠을 자고, 나는 그 앞에 있는 안락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햇빛이 창문으로 강하게 들어오던 오후라, 강아지 집에도 햇빛이 들었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잠에서 깬 강아지와, 그런 강아지를 바라보던 내 눈이 마주쳤다. 자다 깨서 비몽사몽한 순간에도 강아지는 애써 눈을 뜨며 나를 바라봤고, 그 날은 이상하게 눈을 피하고 싶지 않아서, 나도 강아지를 바라봤다. 한참을 강아지를 바라보던 중, 문득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후회와 반성, 그리고 감사의 눈물. 강아지는 만난지 겨우 3일이 된 나를 보기 위해 오는 잠을 깨우며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는데, 왜 이 아이를 사랑하기를 주저하는가? 처음 만난 날부터 이 아이를 사랑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왜 내 마음을 부정했나? 지난 3일 간의 노력은 얼마나 헛된 것이었나? 햇빛이 비친 강아지의 눈은 나에게 어떤 것도 바라고 있지 않았고, 그저 사랑만이 담겨 있었다. 강아지와 오래 눈을 마주했던 그 날,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어떠한 대가도 없는 순수한 사랑을 경험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랑받지 못한 과거에 매몰되어서, 가늠할 수 없는 미래가 두려워서 강아지를 사랑하는 지금을 놓치지 않겠다고. 그런 쓸모없는 걱정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으로 나의 강아지를 사랑해주겠다고 결심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했다. 같이 산책을 하고, 바다 바람을 맞고, 비에 젖은 흙냄새를 맡았다. 산책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같이 물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아침에는 같이 사과를 먹었고, 오후가 되어 배가 고파지면 같이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강아지는 껍질을 먹지 않는 게 좋은 관계로, 주로 껍질은 내가 먹고 강아지는 속살을 먹었다. 이렇게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에서는 우리 관계의 주도권에 대해 의심해보곤 하지만, 아무렴, 사랑하는 사이에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첫 날, 품 안에서 순대 냄새를 풍기며 떨던 나의 강아지는 날이 갈수록 뻔뻔하게 사랑을 요구하기 시작했으며, 강아지가 그럴 때마다 내가 제법 괜찮은 사랑을 주고 있는 것 같아 자랑스러워지곤 했다. 강아지와 나는 뜨겁게 사랑했다. 사랑받기 위해 의무를 다할 필요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나를 소모하며 사랑할 필요도 없었다. 강아지를 사랑할수록 나는 더욱 충만해졌고, 건강해졌다. 강아지에게 넘치게 사랑받은 덕분에, 나는 사랑을 시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회복했다. 이제는 가족들에게 적당한 양의 사랑을 주는 방법을 알고, 가족들에게 건강하게 사랑받을 수 있다. 모두, 강아지와 함께한지 1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내 강아지를 만난지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나는 다시 강아지의 눈을 본다.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까만 눈. 이제는 강아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한다. 그리고 말해준다. 더 이상 너를 사랑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나보다 훨씬 작고 약한 너에게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그 시간이 넘치게 행복했다고 말한다. 강아지를 사랑하며 처음으로 현재를 살아보았다. 불투명한 과거나 미래에서 부유하는 불안함에서 벗어나, 탄탄한 현재를 딛는 안정감을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사랑하는 기쁨이 사랑을 시작하기 전의 불안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강력하고 가치롭다는 것을 안다. 강아지는, 내 첫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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