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킨 고백ㅡ3
1. 좁고 깊은 터널에서,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원동력 삼아 살았다.
2. 일을 시작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곳에서는 나를 참 많이 인정해 줬다. 실제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매일을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는 곳에서 나를 사랑해 주어서 참 다행이었다고 느낀다. 덕분에 나는 새로운 일에 계속 도전해 볼 수 있었다. 그즈음부터 나는 길거리에 서 있는 나무가 보였고, 집 앞에 매년마다 나를 반겨주었던 흰 꽃을 볼 수 있었다. 그때 사진을 찍었지 그 팝콘같이 조그마하고 하얀 꽃이 너무 예뻐서 손으로 만지기도 하고, 나의 좁고 깊은 터널 끝에서는 바람이 불어왔고 풀 냄새가 풍겨왔고 희미한 빛이 들어왔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세상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그 앞에서는 부정과 우울도 체념되어 버린다.
3.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사람들은 내게 많은 것을 내게 주었다. 아버지가 크림빵을 넣어줬고, 조그마한 아라는 내게 와플을 넣어줬고, S아파트에 거주하시는 어르신은 내게 땅콩잼 크래커를, 어머니는 내 눈이 흐려져갈 때 즈음 작은 항상 작은 선물을 들고 왔고... 친구들은 내게 지속적인 사랑을 주었다. 참 고마운 사람들. 하지만 지금도 완전히 그들의 마음을 그대로 받을 수 없는 내가 미워지고. 엄마에게는 특히 더 웃을 수 없어서 항상 미안하고, 마음을 줄 수 없고 또 닿을 수 없어 애틋하다. 이러다 엄마가 사라지면 어떡하지 나는 사무치게 그리워질 텐데. 이럴 때 즈음 또다시 잡아먹히지 말자고 생각한다. 그늘에 잡아먹혀 사랑과 감사를 잊으면 안 된다. 잊기 쉬운 것들을 가지고 살기로 마음을 먹었으므로.
4. 볼품없는 모습으로 제주에 갔다. 자신 없는 모습으로 다시 찾아갔던 제주에서 나는 한번 더 사랑을 배웠고, 한번 더 사랑할 용기를 얻었다. 조금은 슬프게 갔던 작년 제주와 달리 올 해는 다솜언니의 배웅을 받으며 사랑 가득히 서울로 돌아왔다. 자랑. 제주에서 들었던 말. 어디서 이렇게 예쁜 애가 나타났냐고 언니들이 내게 이야기했던 건, 나를 아직도 기분 좋게 만든다. 우쭈쭈 받는 건 언제나 좋다.
5. 누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살아간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만큼. 나는 그 앞에서 틀리곤 한다.
6. 사실 나는 아직 자신이 없어 여전히. 추운 겨울날에도 목적 없이 걷는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 속에 있고 싶다. 부대끼고 싶다. 사람들'과' 부대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 속에 묻히지 않고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한다. 그렇지만 내 존재는 아직 희미하고, 에너지는 자꾸만 밖으로 흐르고... 나를 혼자 휑하니 내버려 두고 자꾸만 나돌아 댕기고. 그럴수록 나는 더 작아지는데. 그렇지만 나는 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너무너무 잊기 쉬운 것의 목록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것도 없는 것(無)에서 무언가가 생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말이 어떤 행동이 나를 생기고 만드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것에서 덧붙여지는 것이다. 그러니깐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게 되는 것이다.
7.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나는 그 정답을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나는 모르겠지만
슬픔보다 행복을 더 이야기하는... 아니 행복도 슬픔만큼 마구마구 말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키울 것이다. 도망치지 않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목적 없이 걷고 쓰며 좀 더 가벼워질 것이다. 한 걸음 한 단어마다 털어내며, 책 한 장마다 무언가를 버리며, 음악에 어떤 것을 놓아두고 덜어내고 싶다. 내게 끈적하게 붙어있는 것들을
나는 더 자라고 풍부해질 것이다. 더 열릴 것이다. 더 사랑할 것이다. 더 안고 갈 것이다. 그리고 많이 많이 안을 거고 안길거고 사랑하는 사람들 품에 있을 거고. 시들기도 하면서, 그렇지만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그렇지?
우리의 내면은 강할수록 더욱 유연해지고 모든 이로운 것에 마음을 연다. ㅡ [자기 돌봄, 타라 브렉]
2022.12.27